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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Feb 21. 2019

당신의 루틴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지금 당신 삶의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나요?


작년부터 루틴을 만들고 있다. 변화와 다양성이 현대인의 운명이라지만, 그럴수록 외부에 휘둘리지 않는 중심이 필요하다. 삶의 루틴은 그 중심을 공공히 해 준다.



1. 루틴 첫번째는 영어 스터디 (English)


성인 열 명이 한 달에 두번을 만난다. 한번 만날 때마다 미드 <SUITS>의 에피소드 하나를 다루는데, 대본을 직접 타이핑 해 오는 게 핵심이다. 어떤 사람은 영어자막을 보면서 필사를 하고, 어떤 사람은 나처럼 딕테이션을 한다. 내 경우, 2분 분량의 대사 작업에 한 시간이 걸린다. 에피소드 하나가 대략 40분이니까, 대사 쓰는 데만도 20시간 정도 걸린다. 현실적으로 매일 공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말에는 반나절씩 하고, 평일에는 잠들기 전에 한 시간 정도만 공부한다. 


나는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이용해서 대본을 딕테이션한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해야 영어를 잘할 수 있냐고 물어보면, 일단은 하루에 2시간 이상을 내라고 말하는데, 아직도 나는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배우는 건 내 몸과 마음이 익숙해지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 물리적인 시간 투자가 필요하다. 


여기에 기억의 원리를 적용한다면, 몰아서 하는 것보다는 최대한 자주 하는 게 좋고, 8시간 이상 잠을 충분히 자면서 하는 게 좋다. 그 다음에는 영어의 원리와 학습법을 꿰뚫고 있는 사람에게 배우는 게 좋다. 1:1 학습이 가장 좋고, 그 다음이 스터디다. 


학습은 학(배우는 것) + 습(익히는 것)의 결합이라,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실력이 늘지가 않는다. 영어의 경우, 단어장을 만들고, 미드에 나온 표현을 사전으로 찾아본다고 해서 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걸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다. SUITS  스터디의 경우엔, 대본을 읽고 들어보는 시간이고,  운동이라면 코치님에게 배운 걸 연습하는 시간이다. 아는 것과 할 줄 아는 것 사이의 커다란 갭이 있는 건, '습'이라는 모이지 않는 시간 때문이다. 



2. 루틴 두번째는 골프 (Golf)


월수금 매일 아침에 골프 수업을 받는다. 20-30분 정도를 코치님이 봐주시고, 이후 한 시간을 혼자 연습한다. 완전 초보라 아직 풀스윙도 하지 못한다. 아직도 몸통을 돌려 한 박자 늦게 스윙을 하는 것이 어색하고 힘들다. 


하지만 골프는 내게 중요한 루틴이다. 약속을 미루더라도 골프 수업은 빠지지 않고, 선약 때문에 월수금 중 하루가 빠지면 코치님에게 주말 수업을 부탁한다. 7번 골프채와 장갑을 준비하고,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차를 몰고, 선생님이 오기 전까지 스윙을 연습하는 그 시간은 일종의 의식이다. 살면서 꼭 필요하지도, 누가 시키지도 않은 일에 자발적으로 내 시간과 돈을 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골프는 나와의 약속이기도 하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목표로 골프를 잡았고, 그걸 위해서 모든 스케줄링을 맞췄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올해는 끝까지 골프채를 놓치 않을 예정이고,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는 핑계를 대지 않을 생각이다. 



3. 루틴 세번째는 가족과의 저녁식사


주말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평일 저녁식사는 집에서 모든 가족과 함께 한다. 부모님과 남동생 그리고 아모리까지 모두 다섯 명인데, 가능하면 7시 반까지 집에 와서 식사를 한다. 



가족 모두 자기 일이 있어서, 저녁에 시간 맞춰 집에 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것도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문화의 일부다. 처음엔 어렵게 느껴지지만, 가족과의 저녁식사가 중요하다는 걸 구성원들이 깨닫게 되면, 자연스럽게 일정이 여기에 맞춰진다. 가능하면 저녁약속은 잡지 않고, 중요한 이야기는 저녁시간까지 기다렸다가 공유한다. 슬슬 가족 메신저에 '오늘 저녁은 닭도리탕 어때요?' 같은 메세지가 올라오고 '오늘 성당 모임이 있어서 늦는다. 미안해' 처럼 가족과의 식사가 당연해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우리 가족은 딱 6개월이 걸렸다. 


집에 들어오면 함께 밥먹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나 역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요즘처럼 바쁘고 정신없는 시대에 더 중요하다. 뭐가 맞는지도, 뭐가 진실인지도 헷갈리는 바깥세상을 견디는 중심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바쁠수록 내 시간이 필요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우리는 다 같이 식탁을 치운다. 아버지는 수저를 모아서 싱크대에 넣으시고, 엄마는 남은 반찬을 처리하신다. 동생은 커피와 차를 만들고, 나는 그릇을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오고간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내가 식기세척기의 '시작' 버튼을 누를 때 즈음이면 가족 모두가 함께 식탁을 떠난다는 점이다. 옛날엔 엄마가 혼자 남아서 정리를 다 하시고 들어갔는데, 이제는 그 일이 '가족의 일'이 되었다. 누구도 소외되는 사람이 없고, 누구도 특권을 가진 사람이 없다. 물론 원하면 먼저 자기 차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도 괜찮다. 가끔 피곤할 때가 있다는 걸 아니까. 



다리 루틴 이야기로 돌아와서, 

영어공부, 골프, 가족식사 - 이 세 가지는 요즘 나의 루틴이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는 나만의 의식, 자발적인 이 의식들이 나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적어도 올해는 이 세 가지 루틴을 끝까지 밀고 나갈 생각이고, 내년에는 또 다른 루틴들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이쯤 되니 슬슬 내 주변 사람들의 루틴이 뭔지고 궁금해진다. 무엇이 지금 당신의 삶의 중심이 되어주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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