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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Dec 18. 2019

스트레스는 내가 어떤 일에서 손을 떼야할 지 알려준다

6년 전인가, 전문 통역사 지인의 소개로 위스퍼링 통역을 요청받은 적이 있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미국에서 온 귀빈의 옆자리에 앉아서 한국어를 영어로 통역하는 일이었는데, 1시간 조금 넘는 행사에 페이가 백만원에 가까워서 고민할 것도 없이 수락을 했다. 그 전에도 파트타임으로 통역과 번역을 몇번 해봐서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행사날이 다가올수록 나는 급격하게 초조해졌다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를 못하면 어쩌나? 모르는 단어가 나오거나, 번역할 한국어가 주구장창 길어지면 어쩌나? 내 영어 발음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으로 밤잠을 설치다 행사 이틀 전에는 돈은 필요 없으니 행사가 취소되면 좋겠다는 말도 안되는 기도까지 했다. 심지어 그날 밤, 나는 행사장이 폭발하는 꿈까지 꿨다. 스트레스가 상당했던 모양이다.


그런 내 불안감이 전달된 걸까, 행사 전날 통역사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지금이라도 못한다고 솔직히 말할까. 안 돼, 그런 무책임이 어디있어. 그래도 이대로 통역을 하면 망칠 게 뻔한데. 전화벨이 울리는 그 짧은 순간에 별의 별 생각을 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그랬더니 지인의 말,


"커뮤니케이션 미스로 그쪽에서 통역사를 직접 데려 왔어요. 두옥씨 그날 안 와도 될 것 같아요. 행사 전날 캔슬이라 페이는 다 갈 거예요"



깜짝 놀랐다!


페이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신이 내 마음을 가엾게 여겨 기적을 행했나 싶기까지 했다. 여튼 그날 밤 오랜만에 나는 편안한 잠을 잤다.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통역 일에서는 완전히 손을 뗐다. 통역가로서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었지만, 통역의 긴장감이 내겐 엄청난 스트레스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과 통역자로서 전달을 하는 것은 책임감이 천지차였다. 아무리 많은 돈을 받는대도 그 몇 배로 수명이 단축될 것 같았고, 이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위해서 하지 말아야 일이 뭔지를 알게 된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최근, 수년 전의 충격을 기억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


다소 선을 넘는 요청 때문에 본의 아니게 지인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밖에서 모르는 맘고생과 시간소비가 많았던 일이었다. 나름 공적인 영역에 도움이 되고자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공과 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담당자는 언제나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그걸 수습하는 건 우리의 돈과 시간이었다. 


업무를 마무리하며 나는 결심했다. 오늘을 기점으로 이런 프로젝트에서는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이런 형식주의를 견디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 내겐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와 주변사람들을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뭔지를 알게 된 또 한번의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돈과 시간이 꽤 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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