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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oookong Jul 03. 2018

여중생 A

이 글을 쓰기 십 여 분 전에 인터넷 뉴스에서 비보를 접했다.

'노원구 여고생 두 명, 동반투신 사망' 

타이틀마저도 입에 올리기 힘든 끔찍한 사건이다. 꽃보다 싱그러운 여고생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어두운 그림자가 아이들 발 끝을 따라다녔을까. 그 묵직한 그림자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왜 방치했을까, 이 아이들은 이제 편안할까? 혼자서 많은 질문과 추측을 해봤다. 그저 노트북 작은 화면으로 접하는 비보에 내가 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애도는 잠시 그들을 헤아려보고 숙연해지는 것이 다였다.



공교롭게도 영화 <여중생 A>의 인트로 장면이 하필 주인공 미래(김환희)의 투신 장면이었다. 웹툰을 원작으로 제작한 이 영화는 첫 장면부터 청소년들의 극단적인 상황을 제시한 것 같았다. 충격적인 인트로는 어떤 내용일까 기대했던 관객들의 숨을 한 순간에 멈추게 했다. 모두가 팝콘을 씹는 소리도 콜라를 삼기는 소리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살았을까?' '끝에 죽나 보다' '꿈이면 좋겠다'. 관객들의 머리 위부터 천장까지 몇 가지 겹치는 희망사항이 줄줄이 리스트업 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영화가 시작되고, 이 이야기는 소설가를 꿈꾸는 여중생 미래의 현실과 이상을 통해 비슷한 처지의 청소년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것이구나 짐작했다. 또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교실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잘못된 관계와 우정이 어떤 상황인지 여실히 보여주며 '실제를 들여다 보라' 채근하듯 했다.  


폭력적이고 가난한 가정으로 인해 위축된 채 겨우 살아가는 미래는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모든 것을 게임을 통해 만족한다. 그나마도 괴물 같은 아빠가 없는 시간에만 숨어서. 현실도 이 게임 세상처럼 용기 있고, 당당하게 살 수 없을까? 소설가가 꿈인 미래는 헛헛하고 억울한 마음을 기록해 간다. 그렇게 힘들게 자신 만의 평화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외로운 미래에게 낯선 우정(백합)이 다가오고, 조심스레 열어 본마음에 더한 배신과 상처로 덧나고 만다. 과연 미래는 이름처럼 내일이 기다려지긴 할까? 답답하고 화가 났다. 죽고 싶은 미래의 심경이 고스란히 공감이 됐다. 악이 오면 동시에 선이 온다고, 그런 미래에게도 어깨가 되어주는 친구가 있다. 무거운 탈인형을 쓰고, 용서받고 싶은 친구를 기다리는 재희(수호)다.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것들을 적어놓고 하나씩 지워내며 누군가 기다리는 재희에게 죽고 싶은 미래의 고백이 시작되고, 둘은 서로를 위로하며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된다. 사람으로 괴롭고 결국 사람으로 위로받는 이 아이러니한 관계가 지긋지긋해질 때쯤 영화 속의 미래는 조금 더 성숙해져 갔고, 관계의 의미보다 관계로 인한 굳은 살을 반기며 현실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갖추게 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시구절이 있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속고 속이고 속아주며 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거짓말처럼 부모가 되고 거짓말처럼 어른이 되는 모든 과정 속에 촘촘히 박혀있는 삶의 속임수들. 모르고 속고 모를 것 같아서 속이고 모르는 척 속아주며 살다 보면 현실도 꼭 우리가 바라고 기준한 현실일 필요가 없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러니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것 없이 건강하게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 시절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감상을 덧붙인다면, 아역배우에서 폭풍성장한 배우 김환희의 연기력을 재확인할 수 있었던 영화 <여중생 A>를 특히 동시대 또래들과 그의 부모, 학교 선생님이 꼭 봤으면 좋겠다. 대처와 처신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곡성 (나홍진 감독)> 중에서 _ 배우 김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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