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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 Jun 19. 2023

백패킹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물 下

동동

고심 끝에 정한 백패킹 첫 박지는 예봉산 활공장이란 곳이다. 이 곳으로 정한 이유는 접근성과 풍경이다. 서울 근교에 있어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고, 낮에는 팔당대교와 한강이 바로 보이는 풍경, 밤에는 제 2롯데타워가 보이는 도심야경, 새벽에 운이 좋으면 운무도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사진으로 봤을 때 산이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 난이도가 만만해보였다. 팔당역에 도착한 우리는 백패커 선배님이 올려둔 블로그의 루트에 맞춰 산행을 시작했다. 우린 블로그가 없었으면 이 도전을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정말 IT강국 대한민국 만세~ 블로그 선생님들 만만세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타고 있자니, 군대에서 완전군장을 하고 산 타던 시절이 생각이 난다. 그 땐 30~40명이 줄 지어 앞 사람 발만 보고 힘들어도 정신력으로 산을 탔다. 산 고도가 1,250m인 게 어렴풋 기억났는데, 예봉산 정상은 683m였다. 머리는 껌이라고 생각 중인데, 몸에선 땀이 비 오듯 흘렀고, 다리는 후들후들 개다리 춤 추듯 떨렸다. 그 시절(10년 전) 동동은 지금보다 날렵하고, 봐줄만 했겠지. 산을 오르며 여러 명의 산 사람들을 봤는데, 높은 확률로 먼저 인사를 건네주시며 미소까지 한방 같이 쏴주셨다. 어떤 분은 곧 해가 질 건데, 지금 산에 올라가도 괜찮겠냐며 우리의 안위까지 걱정해주셨다.

 ‘산사람들은 다 착하고, 여유가 있구나! 거기에 살가운 미소까지…’ 

동동의 동경이자 사랑하는 대상과 일치한다. 동동도 산사람이 되기 위해 내려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힘들어도  “헉, 헉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건넸다.  

산 중턱에서 내려다 보는 팔당대교, 풍경&바람 굿!


동동과 J는 2시간 반? 3시간 쯤 산을 탔을까, 마침내 예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블로그 선생님들에 비하면 1.5배 쯤 더 걸린 시간이다. 사실 정상에 매점이 있다는 정보를 보고, 막판에 스퍼트를 꽤 올렸다. 달디 단 식혜가 엄청 땡겼다. 정상풍경보다는 식혜가 제대로 동기부여가 됐다. 인간의 기본욕구를 자극하는 완벽한 촉매제랄까. 다행히 매점 문을 닫지 않았고, 시원한 식혜를 한 대접 마시며 정상 풍경을 보고 있자니, 약간의 허무감이 든다. 정상에 오를 때마다 매번 느끼는 감정이다. 산덕후들은 산은 인생과도 같아서 정상에 오르면 많은 생각이 든다고 말하지만, 동동은 풍경 아래 보이는 아파트 한 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속세에 너무 찌들었나보다.   

문 닫았을 때 매점, 원랜 테이블이 펼쳐져있고 인자한 사장님이 계신다!


정상에서 20분 정도 걸어 박지에 도착한 J와 동동은 난관에 부딪쳤다. 지난 가을에  텐트를 산 후로 한번도 안 열어봤다. 텐트 구매 후 보통 평지에서 한번 쯤 펼쳐보는데, 그 과정을 과감히 스킵해버린 것이다. 모니터에서 보던 구성품들을 처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텐트 설치를 시작했다. 원래는 현대 사회 전분야 일타강사 유튜브를 보면서 설치예정이었으나, 정상에 올수록 핸드폰이 먹통이 됐다. 여기서 인생을 다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핸드폰, 인터넷 하나 없다고 사람이 이렇게 바보가 될 수 있다니… 기초교육과정을 마치고, 4년제 대학교까지 졸업한 두 사람이서 그 까짓 텐트 하나 못 칠까 하고, 핸드폰 없이 설치에 덤벼들었는데, 30-40분을 낑낑거리다 도무지 답이 안 나와 결국 유튜브를 켰다. 바람이 무척 불었고, 점점 해가 지기 시작하자, 마음도 조급해졌다. 3g가 겨우 잡히는 곳에서 유튜브 앱을 실행시키고 검색하는데 10여분, 영상을 읽는데 20여분. 느리지만, 결국 유튜브 선생님 도움을 받아 텐트 피칭에 성공했다. 미래에는 컴퓨터, Ai가 인간의 직업을 뺏어갈 거라는데, 지금 동동의 꼴을 보니 틀린 말도 아니고, 먼 미래의 일 같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텐트 피칭 후 드디어 여유를 즐기는 시간.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했다. 잠깐 다른 세계로 온 기분. 오늘 아침 서울에서 짐을 쌀 때와는 다른 사람, 다른 세계같다. 기분좋은 변화다. 시작부터 끝까지 만화처럼 완벽한 순간은 단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덤벙거리는 순간들이 쭉 이어졌다. 저녁거리도 준비 안해서 환승역이었던 왕십리역 내에 있는 매점에서 꼬마김밥을 사왔고, 우천대비를 안 해 새벽에 내린 비바람에 텐트가 날아갈까 마음 졸이며 잔 우리였다. 말 그대로 우당탕탕하며 첫 백패킹을 마쳤다. 다음 산행 때 보완 필요한 것들은 따로 적어뒀다. 근데! 만약 다음에도 준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떠나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그 대답은 언제나 YES!!  


 - 챙겨간 준비물 : 배낭, 침낭, 텐트, 테이블, 등산스틱, 헤드랜턴, 휴대조명, 쓰레기봉투, 티슈, 물티슈, 여분속옷&티, 세면도구, 물, 과자, 김밥 


 - 보완 필요 물품 : 디팩, 무릎보호대, 장갑, 에어매트, 물없이 양치할 수 있는 도구

제 2롯데타워까지 보인다! 

 

우리 텐트(제일 왼쪽)와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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