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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 Nov 28. 2023

외삼촌과 일본 패키지 여행 떠나는 이런 조카 어떤데?

부제: 먹는 입과 말하는 입은 같은 입이다. 

외삼촌에게 해외 여행지를 알아보라는 압박을 받은 건 9월 초쯤이다. 외삼촌은 이전부터 해외여행을 한번 다녀오는 게 좋겠다며, 나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해 왔었는데, 당시 나는 애써 그 제안을 흐지부지되게 하려고 노력했다. 그 이유는 친구와 둘이서 여행 가도 싸우고 돌아오는데, 52세 외삼촌과 여행할 거라고 생각하니 지레 걱정이 앞섰다. 어른이 되고선 부모님과도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가보지 않았다. 그런데 외삼촌과의 해외여행이라니! 부장님을 모시고 단둘이 하는 여행의 느낌이랄까? 며칠, 몇 주가 지나면 삼촌의 여행 생각도 사그라들 줄 알고 시간을 질질 끌었지만, 삼촌은 오히려 슈퍼 J가 되어 나에게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까지 정해주며 알아보라는 명령을 하달했다. 삼촌이 정해준 가이드 라인은 다음과 같다. 날짜는 10월 안, 국가는 대만, 일본, 베트남, 괌 중 하나를 선택해 패키지여행일정을 알아볼 것. 부장님께 구체적 가이드 라인까지 받은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외통수였다. 거절하기엔 너무 늦었다. 이 여행, 꼭... 가야 한다. 그렇게 알아본 일본 여정의 시작은 한 달 뒤인 10월 말! 날씨는 선선해지기 시작해 집에서 넷플릭스 보기 딱 좋은 날, 우리 여행은 시작됐다. 


우리가 타려는 후쿠오카행 비행기 시간은 오전 7:50. 여행 가이드와의 미팅 시간은 인천 제 1여객 터미널에서 오전 5:20. 워낙 새벽 시간 집합이라, 삼촌과 나는 전날 밤에 공항으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부장님과 같은 삼촌을 맨 벤치에 재울 순 없어서 공항 부대 시설을 찾아보니, 역시 공항 내에 캡슐호텔, 찜질방(스파온에어)이 있었다. 굉장히 쾌적해 보이는 환경인만큼 경쟁도 엄청나게 치열했다. 캡슐호텔은 이미 진즉에 예약 마감이고, 찜질방은 제한 인원을 두고 선착순 입장인데, 밤 시간대는 보통 줄을 서다가 입장한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도 들어가기만 한다면 편안한 잠자리가 보장되니, 우리는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찜질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이게 웬걸! 알고는 있었지만, 공항이 넓어도 너무 넓다!!! 블로그에 설명된 위치를 따라가기 급급한데, 삼촌은 이미 벌써 앓는 소리다. 

“너 어딘지 알고 가는 거냐? 무릎 아픈데, 잠깐 쉬었다 가자. 배고프다. 뭐 좀 사 먹자. 식당 문은 왜 이렇게 빨리 닫아?”

걸어가며 불평 4단 콤보 작렬에다가, 내가 잠시라도 길을 헤매는 듯하면, 불평이 5단, 6단 콤보까지 쭉 이어졌다. 혼잣말을 끊임없이 하는 스타일인 삼촌의 푸념을 하나 하나 다 듣고, 되받아치면 귀도, 입도 아플 것 같아, 왼쪽 귀를 닫은 채 가까스로 찜질방을 찾았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에 문 앞에 일곱 팀 정도 기다리고 있었다. 내 마음 같아서는 줄 맨 뒤에 앉아서 기다리고 싶었지만, 부장님 생각은 달랐다. 

“언제 기다리고 있냐, 배고픈데, 뭐 좀 사 먹고 오자.”

삼촌 입에 뭐라도 들어가면 예민함이 좀 사그라지지 않을까? 입은 하나이니, 거기 뭘 채워 넣으면 말을 못할 것이다. 일단 입을 막는 게 편안한 잠자리보다 훨씬 낫겠다 싶어서 삼촌 말을 따랐다. 다행히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삼촌은 더 이상 배고프단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삼촌의 잔소리가 시작되려고 하면, 난 일단 근처 식당, 편의점 등을 먼저 찾아 그의 입을 막았다. 간단 야식 시간이 끝나고서 다시 찜질방으로 내려가 봤지만, 아직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때 시간이 새벽 한 시쯤 됐으려나, 집합 시간이 5시니, 우리는 안락한 찜질방은 포기하고 4시간만 벤치에서 눈을 붙이기로 했다. 삼촌도 나도, 인생 첫 공항 노숙이다. 부장님껜 죄송하지만, 결국 우린 맨 벤치에서 각자의 외투를 덮고 잤다. 

오전 5시 조금 넘은 시간, 2박 3일간 스케줄을 담당해 주실 가이드님을 데스크에서 처음 만났다. 날카로운 인상이었는데, 말 안 들으면 혼을 아주 잘 낼 것 같은 엄한 상이셨다. 삼촌의 명령으로 나도 이번에 패키지여행을 처음 가게 됐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처럼 가족 혹은 여러 명의 친구와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완전 추천이다. 항공권-숙소-식사-일정-차편, 그리고 이 모든 걸 어레인지 해 줄 가이드까지 한꺼번에 책임져주니, 편안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여행 가서 많이 싸우는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 서로 의견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패키지처럼 대기업에서 일정을 짜주고, 인솔자가 관광지마다 부족함 없는 설명까지 해주니 굉장히 만족스럽다. 그리고 동행인들과 함께 다니는 게 의외로 재밌을 수 있다. 우리 패키지팀은 총 세 팀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팀은 4인 가족, 2팀은 60-70대로 보이는 남녀 동창생(10인 정도), 3팀은 나와 삼촌(2인) 이렇게 총 16-18명 정도 되는 인원이 항상 붙어다녔는데, 동창생 팀의 파이팅이 너무 좋아서 웃음이 피식피식 나올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슬하 자녀들을 결혼까지 시켰을 나이지만, 동창생들끼리 있으니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아이처럼 노셨다. 특히, 그들의 주된 대화 토픽 중 하나는 야한 얘기다. 여행 중 있었던 일을 예로 들자면, 관광버스로 장시간 이동하는 일정이 있어서 모두 수면을 취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자꾸만 뒤에서 속닥속닥하는데, 그 내용이 흥미로워 내 도파민을 아니 자극할 수 없었다. 

“니들, 진짜 상대방을 만족시켜 줘 봤어? 연기하는 거 말고 말이여~ 상대방이  진짜 만족하고 있는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아?”

“…”

“중간에 소리를 질러 보면 돼. 으아아~”

소리를 질렀는데, 상대방도 함께 호응하며 소리를 질러준다면 만족하고 있는 중인데, 크면 클수록 100% 만족에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옆에 친구들은 만족하는지, 호응했다.

“이야, 길수 진짜 명강의하네, 명강사여~”

“야, 그렇게 매일 소리 지르면 밑에 집에서 올라와, 안 돼, 안 돼. 하하하.”

“우리 집은 그래서 단독주택에 살잖여~”

TV에서는 못 듣는 명강의가 관광버스 가장 뒷편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60대 남, 녀가 말하는 29금 性이야기는 위트와 현실감 넘쳤다. 이처럼 관광 외에 덤으로 얻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낯설지만, 가끔 모르는 사람과의 동행도 여행의 설렘일까…?!


(뒷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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