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장가 조기교육
격주 화요일, 우리 팀은 전국 시장으로 답사를 간다. 시장 근처 맛집 섭외가 우리의 가장 큰 목표! 수도권이든, 지방이든 맛집과 시장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서 간다. 사무실에서만 일하는 개발자 친구는 이런 걸 보고 낭만이 있는 곳이란다. 맞다. 업무시간에 KTX 타고~ 비행기 타고~ 전국을 누빈다니… 콧바람 쐬는 건 언제나 오케이인 나도 답사 스케줄에 대해서는 썩 불만은 없다. 그렇지만 섭외가 잘 안되는 날이면 미치고 환장한다.
여느 때와 같은 화요일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부는 9월, 낭만 있는 시장-러버(lover)들은 대구에 등장한다. 오늘의 답사지는 대구 원고개 시장. 이름처럼 고개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고개를 올라가며 벌써 상인들에게 섭외를 까였다(거절당했다). 시장-러버들은 거절에 익숙하다. 협조를 구걸해야 하는 우리로선 마음의 문을 닫은 사장님들이 밉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렇게 헐떡이며 고개를 오르내리기를 몇 번, 근데… 가만있어보자… 어딘가 낯익다. 시장 입구 생김새, 그 옆으로 나 있는 4차선 도로, 그 주위로 있는 가로수와 풍경까지. 카카오맵에서 동 이름을 보니 더욱 친숙하다. 평리동, 비산동… 엇… 어릴 때 내가 살던 곳이네…?
2000년도 초반, 내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 집은 경북 의성군에서 대구광역시로 이사를 왔다. 모르긴 몰라도 대구보다 시골인 의성에서 살던 엄마와 아빠의 ‘시티 드림’ 때문에 이사하지 않았을까? 직업이 바뀐 엄빠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겠지만, 적어도 내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친구들을 부지런히 사귀었고, 이따금 친구네를 놀러 가기도 했고, 주말이면 엄마 손을 잡고 원고개 시장에 갔다.
엄마와 시장에 갈 때면, 나는 자연스럽게 짐꾼이 된다. 엄마는 조기교육을 중요시했다.
“요즘엔 남자가 시장도 보러 같이 나와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장가간데이. 알겠제?”
엄마는 뽀뽀도 한번 안 해본 초딩에게 장가가는 팁을 전수 중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내가 장가를 못 간 걸 보면 엄마의 ‘장가 조기교육’은 아무래도 실패인가 보다. 나는 구루마를 끌고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엄마가 산 물건들을 싣고 다니며 짐꾼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상인들은 그런 나를 보며 묻는다.
“아들인교? 착하네~”
엄마 “예~ 우리 애들은 어릴 때부터 시켜서 이제 잘해요”
엄마는 초딩 짐꾼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럴 때면 초딩 동동도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기분이 좋아진 엄마는 그 자리에서 수다를 떨다가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도 종종 샀다.
엄마와 장보기 마지막 코스는 늘 정해져 있었다. 바로 내 최애였던 설탕과 케첩이 잔뜩 올라간 핫도그 먹으며 집으로 퇴근하기. 돌이켜 보면 엄마는 핫도그로 많은 걸 해냈다. 장보기 짐꾼 역할 시키기는 물론, 치과 보내기, 병원 진료받기, 예방접종 주사 맞추기 등 초딩 동동이 하기 싫은 모든 것에 조건부로 ‘핫도그’를 걸면 동동은 귀신에 홀린 듯 그 일들을 척척 해냈다. 그야 말로 ‘핫도그 매직...’ 동동이 핫도그를 먹는 날이면 언제나 어깨에 힘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가 있었다.
한편, 어른 동동은 섭외를 대차게 까이고 까여 자신감이 바닥이 났다. 그 시점에서 발견한 핫도그 포장마차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핫도그 주문 후 괜히 먹고 있는 아이를 본다. 반죽을 먼저 먹고 가운데 햄을 마지막에 먹는 게 꼭 초딩 동동 같다. 자신감도 넘쳐 보인다. 부럽다... 초딩 동동은 그동안 무수히 많은 핫도그를 먹으며 미션을 수행했고, 결국은 지금의 어른 동동이 됐을 텐데, 처지가 많이 달라 보인다. 말이라도 한번 걸어본다.
동동 “안녕.” / 초딩 “안녕하세요.”
동동 “맛있어?” / 초딩 “네.” /
동동 “...” 말은 걸었는데, 할 말이 딱히 없어 대화가 바로 끊겼다. 핫도그를 다 먹은 초딩은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난다. 자신감 넘치는 초딩에게 왠지 진 느낌이다.
어른 동동은 축 처진 어깨를 쭉 펴본다. 자신감 넘쳤던 초딩이 동동을 자극했다. 핫도그를 문 어른 동동은 다시 카카오맵을 켜 다음 장소 주소를 공격적으로 찍는다. 쭈구리처럼 행동하는 순간, 미래의 동동이, 과거를 만났을 때 하찮게 볼 것이란 결론을 냈다. 핫도그를 먹기 전 찌질이 같던 모습을 미래의 동동에게 안 들키려고 재빨리 다음 장소로 자리를 옮긴다.
/ 동동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