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차 여자의 몸이었지
생리는 이전에도 안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주기가 한 달을 넘어가기도 했고, 스트레스를 조금만 받거나 일이 바쁠 때면 밥 먹듯이 월경을 건너뛰는 일도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변칙적인 나의 몸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탓일까. 다이어트가 특히 여성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주의 깊게 듣진 않았다.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해서 그럴 거야', '단시간에 체지방률 10% 초중반 정도를 만들었겠지' 하며, 나와는 관계없으리라 생각했다.
실제로 '수치만 본다면' 나에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다. 10kg를 훌쩍 넘겨 감량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2월부터 6월 초까지, 약 3개월 하고도 절반동안 몸무게 자체는 3kg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체지방률도 마찬가지다. 바디프로필을 찍는 여성들의 체지방률을 보면 10% 중후반대에 많이 분포해 있던데 (15~19%) 나는 체지방률 17.2%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또 유튜브 선생님들의 조언과 후기들에서는 '식이장애'와 관련한 부작용은 많이 봤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마주할 수밖에 없던' 이야기들은 많이 보지 못했다. (어쩌면 자세히 보려 하지 않으려 했을지도 모르고, 유튜브 필터 버블에 가려져 못 봤던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큰 문제는 없겠지-싶었다.
그러나 바디프로필을 찍고 두 달이 넘도록 월경을 하지 않았다. 월경을 하지 않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온 자리엔 어느새 머리카락이 한 줌 쌓여 있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길을 찾기 위해 빵조각을 떨어뜨린 것 마냥 내 흔적은 머리카락으로 남아있었다. 무언가 몸에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바디프로필을 찍고 세 달 뒤가 되어서야 산부인과를 찾았다. 월경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산부인과의 굴욕 의자에 앉아 초음파도 보고, 호르몬 검사를 위해 피도 뽑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검사 결과가 나왔고, 얼핏 들었던 부인과 질환은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판정을 받은 것이다. 의학에 관해서 잘 모르는 나도 알 수 있었다. 초음파 화면에 띄워진 난소에 이상하리만치 많은 동그라미들. 그래서 '다'낭성이구나 싶었다.
물론 다낭성 난소 증후군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진 바 없지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체중 감량 자체가 많지는 않더라도 이미 체지방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더 감량을 하고자 했으니 대사에 문제가 생기게 된 것 아닐까. 이미 예민한 나의 몸이었는데 다이어트는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치료를 하면 완치가 될까? 잘은 모르겠지만 어찌 됐든 다낭성 난소 증후군 판정은 또 다른 변화의 시작이었다. 우선은 이노시톨을 꾸준히 먹어보며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생리유도주사도 맞아보았지만 맞고 나서 겨우 했을 뿐 주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월경을 하지 않았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피임약을 꾸준히 복용해 보자고 하셨다. 매일 같이 같은 시간에 꼭 한 알씩 먹어야 하는-특히 나 같은 변수가 많은 덜렁이에겐-매우 힘든 일이 생겨난 것이다. 누군가는 살이 갑자기 찔 수 있고, 메스껍거나 구토를 할 것 같은 느낌도 든다는데 나는 다행히 그렇진 않았다. 하지만 피임약 복용은 성가심과 귀찮음만을 의미하진 않았다. 또 다른 부작용이 기다리고 있음을, 처음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