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디프로필 촬영 회고
"네가 살을 뺄 게 뭐가 있다고 다이어트야?"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사실 26년 살면서 마른 체형(이지만 근육이 없어 높은 체지방률을 보유한 마른 비만인)으로 살아왔기에,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나였다. 바디프로필을 준비하며 처음으로 다이어트를 제대로 해 본 셈인 것이다. 다이어트는 이제 그만하겠지만, 몸매 가꾸기는 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요와 식이장애가 두려워서라기보다는, 내 몸을 돌보는 것의 일환이기 때문이다. 인생은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이라는 김종국 씨의 말도 있듯 바디프로필은 하나의 장치일 뿐 만들어진 몸을 조금 더 건강하게 가꿔나가는 데 집중해봐야 할 것 같다. 바프 준비는 그간 한 번이라도 내 몸을 돌봤던 적이 있나, 되돌아보게 된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디프로필로 예쁜 사진이라는 결과물도 얻었지만, 무엇보다도 바디프로필을 준비했던 3개월은 나의 몸을 마주하고 탐색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거울 앞에 서봤던 적이 있었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옷을 걷어내고, 온전히 내 살과 근육과 골격을 똑바로 보았던 적이 있었을까. 매일 같이 거울 앞에 서서 변화하는 나의 몸을 보고, 만져보며 새삼스럽지만 나의 몸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사실 나는 척추측만증이 매우 심하다. 학창 시절엔 보조기를 했었고, 어떤 의사는 수술을 권유할 만큼, 또 장애 판정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나의 척추는 많이 휘어있다. 바디프로필을 찍기 전에는 내 몸이 이렇게 휘어있다는 걸 체감하지 못했다. 크롭 티나 딱 붙는 스타일의 옷도 많이 입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크게 티 나지 않았고, 또 많이 휘어는 있어도 다행히 장기를 누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몸이 유연해 통증이 심하지도 않았다. 다만 놀이동산에서 꽤 긴 기다림을 견뎌야 할 때, 혹은 회사에서 오랜 시간 앉아 있어야 할 때 남들보다 등이나 허리가 더 빨리, 조금 더 아플 뿐이었다.
그러나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며 거울 앞에 섰을 때, 유난히 튀어나와있는 나의 왼쪽 흉곽, 그리고 불룩 나와 있는 오른쪽 등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바디프로필을 보면 아무도 나처럼 흉곽이 튀어나와 있지도, 불룩한 등을 갖고 있지도 않으니까 말이다. 작고 소중한 나의 복근 또한 매우 불균형하게 보였다. 촬영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땐 포징 연습과 함께 여전히 불균형한 내 몸을 보며, 휘어 있는 내 몸을 돌리고자 많이 노력했다.
나의 몸이 인지되기 시작하자 내 몸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살면서 한 번이라도 몸을 신경 써 본 적이 있었던가, 싶더라. 학생 시절엔 밤샘도 많이 하고, 밤샘을 하며 야식도 많이 먹고, 척추 측만을 제대로 인지도 못한 채 휜 내 몸을 더 휘게 내버려 두기도 했다. 학내 방송국이든, 학회 활동이든 내가 정신적으로 성장하는데만 집중했지, 몸이 닳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 몇 번 크게 아팠었는데 그제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았던 건 아닌가 반성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노년을 그리게 되었다. 나는 이대로 나이가 들면 허리를 못 펴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말이다. 바프도 바프였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운동을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특히 필라테스와 근력운동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속근육을 강화해 코어를 잡아 더 균형 잡힌 자세를 유지하고, 더 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마음만큼이나 단단하고 탄탄한 나의 몸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말이다. 하루종일 일하고 성장하는 정신만큼이나 나의 몸을 돌봐야 더 건강한 미래를 그릴 수 있으니까.
바프를 준비하면서 느낀 점 중 또 다른 하나는, 생각보다 내가 굉장히 독하고 목표 지향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몸살로 아팠던 날, 의도한 로딩 데이를 제외하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같이 운동했다. 출근 전 적으면 1시간, 많게는 2시간씩 운동을 하는 게 쉽진 않았다. 심지어 워크숍에 가는 날에도 일찍 일어나 복근 운동을 하고 가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꽤나 독한 사람이라고 느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식단 관리였다. 사실 바프를 처음 한다고 했을 때 내가 가장 걱정했던 부분은 식단이었다. 이전에 말로만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을 때 단 한 번도 식단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5월엔 다양한 유혹들도 많았다. 은사님과의 식사 자리, 팀 워크숍, 친구들과의 많은 약속 등... 그렇지만 나는 뷔페 가서도 샐러드를 먹고, 은사님과의 식사 자리는 최대한 샤브샤브집으로 돌려 야채 위주로 먹고, 친구들과 냉삼겹살 집에 갔을 땐 미리 포케를 먹고 가 냄새 속에서 딱 한 점만 먹고 먹지 않았다. 트레바리에서 책거리를 위해 치킨을 시켰을 땐 단 한 점도 먹지 않고 쫄쫄 굶었다. 생각해 보면 무언가 참고 인내하는 경험을 고등학생 이후로 제대로 해본 것 같다.
무슨 고3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나 바로 헬스장 갔다 출근하고, 먹고 싶은 걸 참고 인내하고, 퇴근하고 나선 주라기(커리어 관련 팟캐스트)를 제작하거나 또다시 운동을 갔던 100일이었다. 강제 갓생을 살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전 하나의 목표가 생기면 그것을 향해 또렷하게 달려가는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스럽지만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기도, 성취감을 느끼기면서 자존감도 올라갔다.
바디프로필 촬영 D-14.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인바디 기계에 올라갔다. 그리고 결과를 보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열심히 식단과 운동을 했는데도 그 전주에 비해 변화가 1도 없었던 것. 오히려 근육량만 100g 빠져있는 게 아닌가! 바디프로필 준비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바로 그날이라고 말하겠다. 다이어트 정체기를 맞았던, 바로 그날.
사실 다이어트 정체기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그 정체기를 바프를 2주도 채 남기지 않고 마주했을 때의 마음이란... 안 그래도 목표한 인바디/눈바디에 근접하지 못했는데 변동이 없는 체지방량, 오히려 빠져버린 근육량을 보았을 땐 눈앞이 캄캄해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운동? 식단? 칼로리를 더 줄여야 하나? 여기서 더 줄이면 못 버틸 것 같은데... 그럼 운동을 늘려야 하나? 운동을 더 늘려도 못 버틸 것 같은데...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마음은 착잡해졌다. 원인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러 유튜브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을 차례였다.
다양한 전문가들은 무리해서 일주일 내내 운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 보라고 했다. 그리고 몸이 현 상태에 너무 적응해 버려 충분한 휴식과 함께 많은 탄수화물을 갑자기 넣어주는, 그런 로딩도 필요하다고.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운동을 쉬면 안 되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쉬고, 탄수화물도 충분히 넣어줬더니 잠깐은 체중이 올라갔지만, 다시 양을 조절하고 꾸준히 운동하기 시작했더니 귀신같이 다시 빠지기 시작했다. 한 번의 쉼이 2보 전진을 만들어낸 셈이었다.
일에서도 그렇듯, 쉼표 찍기를 무서워하는 것이 여기서도 드러났던 것 같다. 앞으로는 조금 더 제게 관대해져보려 한다. 그동안 너무 매몰차게 달리기만 했던 것 같아, 적절한 쉼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 한다. 한 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온전한 휴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으니까 말이다.
다이어트는 나만 고생하는 줄 알았다. 내가 내 살을 빼겠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함께 고생할 거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도시락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제대로 식단 관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했더라도 돈이 너무 많이 들었거나, 맛없는 식사로만 구성했을지도 모른다. 나와 함께 바프를 준비해 준 동생도 고생 많았다. 귀염둥이 동생에게 내가 채찍질도 많이 했지만, 실은 동생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애인을 빼놓을 수도 없다. 나랑 만날 때마다 포케나 샐러드, 혹은 양보해서 샤브샤브 혹은 서브웨이만 먹느라 함께 다이어트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기간에 만났던 친구들 혹은 회사 동료들도 나를 위해 제한적인 메뉴만을 고민하거나, 비싼 소고기를 먹어주며 배려해 주었다. 이렇게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식단에 실패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혼자서 바디 프로필을 준비했다면 어쩌면 포기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에 운이 좋게도 함께 바프를 준비했던 회사 동료들 덕분에 자극도 많이 받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준비할 수 있었다. 밀리그램이라는 어플 안에서 서로의 식단과 운동을 공유하며 으쌰으쌰 했던 게 지속할 수 있었던 힘이 아닐까 싶다. 공동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느꼈다.
약 100일간의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며 느끼고 생각한 게 많아 조금 길게 길게 회고를 남겨보았다. 물론 여전히 건강한 몸 유지라는 장기적인 목표가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이렇게 한 번 바디프로필을 통해 다이어트가 갈무리되지 않을까 싶다. 100일 동안 무엇보다 나의 몸이 고생했던 것 같다. 수고했다 내 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