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설치기사는 땡볕에서 일한다
#어려운 일은 아니고
인력소장에게는 어려운 일이 없다. 일을 보낼 적마다 “어려운 일은 아니고”라는 말을 덧붙인다. 어렵지 않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별다른 기술이 없어도 괜찮다, 죽을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 고되지는 않지만 다소 짜증나는 일이다... 이런 정도의 속뜻일 것 같다. 결국은 힘들다.
#보조/어시스트/데모도
에어컨 설치 보조. 가장 ‘보조’다운 일이다. 에어컨설치기사가 사다리에 올라가 있는 동안 나는 그 밑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집어서 건네면 된다. 일하는 시간의 대부분을 나는 구경만 했다. 재주는 에어컨 기사가 다 부린다. 나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므로.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임무는 말동무를 해 주는 것이라는 생각까지도 들었다. 이런 일만 한다면 얼마나 편할까.
#짧은 단어
일하면서 가장 짜증스러운 경우는 이때다.
“그거.”
“그거 어딨지?”
“그것좀 갖고 와 봐.”
“저기 저것좀 줘 봐.”
“아니 그거 말고 저거, 저거!”
본인만 100% 이해하는 짧은 단어로 일을 시키는 경우. 말하자면, 지시대명사 위주로 명령을 내리는 때다. 못 알아먹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당한다. 이때, 보다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 발화자의 책임은 전혀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자신이 내뱉은 지시대명사에 권위를 실어주는 핵심은 무엇일까.
#보물찾기
에어컨설치기사는 틈만 나면 보물찾기를 했다. 보물이 묻힌 장소는 자신의 카니발 차량. “여기에 있었는데... 어디 갔지? 아, 그때 봤는데... 희한하네.” 운전석과 보조석을 제외한 나머지 좌석에는 물건들이 빼곡했다. 갖가지 자재들이 정신없이 뒤엉켜 있었다. “매직블록이 분명히 여기 어디에 있는데...” 자동차 앞유리에는 ‘ㅇㅇ인테리어’ 명함이 붙어 있었다. 인테리어 업자들의 자동차는 다 이런 풍경일까.
#실외기
에어컨설치기사는 땡볕에서 일한다. 특히 실외기를 설치하는 경우는 고역이다. 실외기의 무게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20kg~50kg 정도다. 실외기가 설치되는 장소가 주로 벽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다. 게다가 부피까지 상당하다. 벽면에 실외기 거치대를 붙이고, 여기다 실외기를 낑낑대며 올린다. 땡볕에 땀이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실내에 설치된 에어컨과 바깥에 놓인 실외기를 호스로 이어야 한다. 실외기가 만들어낸 차가운 공기를 실내로 옮기는 관이다. 이 호스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일단 벽에다 구멍부터 뚫어야 한다. 에어컨설치기사가 실수했다. 실내 벽면에서 바깥 벽면 쪽으로 구멍을 뚫는다고 뚫었지만 방향이 빗나갔다. 애꿎은 도시가스관에서 불꽃이 튀었다. 가스관이 강철처럼 단단해서 다행이었다. “가스관이 왜 여기에 있고 그러냐.” 에어컨설치기사는 언제나 제자리에 있던 가스관을 나무랐다.
#현장지식
구멍이 빗나간 것을 에어컨설치기사는 어떻게 대처할지, 나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구멍을 새로 뚫다가는 미관이 많이 망가질 터였다. 그럼에도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 에어컨설치기사의 선택은 내 예상을 빗나갔다. 실수로 낸 구멍에서 방향만 틀어서 다시 구멍을 냈다. ‘V’ 모양으로 구멍이 생겼다. 안에서는 하나의 구멍이지만 바깥에서 자세히 보면 두 개의 구멍인 것이다. “어차피 밖에서는 보이지도 않아. 밖에 구멍난 거는 대충 막으면 괜찮아. 책으로 배운 사람들은 이렇게 못 하지. 정석대로만 하려고들 하니까. 이게 바로 ‘현장지식’이라는 거야.” 에어컨설치기사는 의기양양했다.
#냉풍
에어컨 설치가 끝났다. 시원한 바람이 잘 나오는지 에어컨을 작동했다. 최저온도의 강풍으로. 소슬한 바람이 불었다.
#결산
일당 11만원
수수료 1.1만원
순수익 9.9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