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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광 Aug 24. 2016

먼지구름 속에서 청소

내 방도 안 치우는데 공사장 청소라니

#'일당하는' 사람들
새벽 5시 40분. 인력대기소 소파에 앉은 어느 아저씨의 통화 내용. "월급으로는 못 받아요. 저희처럼 '일당하는' 사람들은 그날그날 받는 걸 좋아하지, 그렇게 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일당 일은 그때그때 일 끝나면 돈 받아야죠. 다른 사람 알아보세요.“
 
몇 번 일나간 곳에서 월급 줄 테니까 계속 나와서 일하라고 했나보다. 그날그날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일하는 게 더 즐거웠는지, 아니면 하루하루 돈이 필요했던 것인지, 아저씨는 단박에 거절했다.
 
인력소장은 귀를 쫑긋했다. 어떠한 일이든 인력대기소를 통해 소개받은 곳에서 일하게 된 경우라면, 수수료 10%를 내야 한다는 게 인력소장의 지론이다. 용역사용자가 “내일부터는 인력대기소 통해서 오지 말고 바로 여기로 나와서 일해요”라고 말하는 경우라도 예외는 없다. 인력소장의 말에 따르면, “그것도 인력대기소의 소개를 통해 일을 구한 것”이다. 철두철미하다. 때로는 지독하다.
 
 

그나마 정리한 뒤의 모습. 바닥에 시멘트 가루가 수북하다.

 
#청소
‘청소라니. 우리집 청소도 안 한 지 오랜데. 공사장을 청소한다니. 그것도 혼자서. 혼자서 일해본 적 없는데. 잘 할 수 있을까. 욕이나 안 먹을까.’ 이런 생각은 공사판에 도착하고 나서 더 강하게 들었다. 3층짜리 빌라였다. 콘크리트 작업까지 끝난 상태였다. 난장판이었다. 한데 모여 있어야 할 비슷해 보이는 것들도 제각각 아무데나 놓여 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현장소장은 느긋했다. “이따가 2시간 있으면 계단 청소하시는 분들이 오실 거예요. 그 전에 일단 옥상부터 청소하세요. 깨진 타일이나 부러진 목재 같은 것도 마대에 담아서 옮기고요. 그것들을 전부 1층 밖으로 내다 놓으면 돼요. 다 옮기고 나서는 바닥 쓸면 되구요. 양이 얼마 안 돼서 금방 할 수 있을 거예요.”
 
하나같이 무겁고 무서운 것들밖에는 없다. 바닥에 쏟아져 굳은 콘크리트(일명 ‘왈가닥’)은 얼마나 부피가 크고 무겁나. 타일은 또 얼마나 밀도까지 높게 무겁나. 나무엔 무슨 못이 이렇게도 많이 박혀 있나. 쉬운 게 없다. 바닥엔 발자국이 음푹 선명하게 남을 만큼 시멘트 가루가 듬뿍 쌓여 있었다. 이걸 다 청소해야 한다. ‘추노’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추노: 일하다가 중간에 도망치는 행위. 시간과 돈을 모두 매몰비용으로 만들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일이 힘들고 고될 때 주로 일어난다.
 
 

 
#눈삽
눈삽으로 먼지를 모은다. 마치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긁어서 떠먹듯이, 눈삽으로 먼지를 긁어 모은다. 삽질의 세계는 다양하다.
 

 

오전 새참. 게토레이와 땅콩크림소보루빵.

 
#낙하
옥상과 3층의 쓰레기들을 다 마대에 담았다. 가로*세로가 55cm*83cm인 PP마대에 절반씩 담아서 모은 게 30자루는 됐다. 하나당 무게가 20kg 이상이다. 계단에선 북한말을 쓰는 할머니들이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다. “간나새끼”와 “에미나이”가 문장의 마침표처럼 쓰였다. 영화 밖에서 북한욕을 들은 건 처음이다.
 
현장소장이 때마침 올라온다. 나에게 새참을 건넨다. 땅콩크림소보루빵과 게토레이 한 캔. “이거 먹고 좀 쉬다가, 쓰레기 담은 마대자루들을 베란다에서 떨어뜨려요. 옆집 담벼락 망가지지 않게 조심하구요. 이것들 무거워서 일일이 들어서 옮기기도 힘들고, 게다가 계단에서는 지금 청소하고 있어서 오가기도 번거로워요. 저기서 하나하나 떨어뜨리면 돼요. 제가 밑에서 보고 있을 게요.”
 
베란다에서 밑을 내려다본다. 아찔하다. 여기로 20kg 넘는 마대들을 하나하나 떨어뜨린다. 어릴 적 구슬치기하던 때를 떠올린다. 마대자루를 양손으로 잡는다. 낙하지점에 조준한다. 놓는다. 2초 뒤에 ‘쿵’ 소리가 난다.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다친 사람은 없다. 옆집 담벼락도 멀쩡하다.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짓을 30번 반복한다.
 
 

 
#감독
현장소장은 감독 노릇에 최선이었다. 절반은 내게 책임(?)이 있었을 것이다. 어려 보였을 것이다. 일도 제대로 할 줄 몰라 보였을 것이다. 혼자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기에는 못 미더웠을 것이다. 그는 틈만 나면 내게로 왔다. 시킨 일을 제대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가락을 쉬지 않고 움직였다. “저기 저것도 치워요. 이건 저기로 옮겨요. 이따가 여기 바닥도 다 쓸어요. 그건 두고 일단 이것부터 해요.” 그는 하루종일 손가락 끝으로 일거리만 가리켰다. 나도 부아가 치밀었다. 나중에는 그의 말에 대답조차 않았다. 제대로 하고 있는데도 그 옆에서 거드는 말은 간섭으로만 생각된다. 아주 못된 감독이다.
 
현장소장의 행동도 이해는 된다. 옛말을 떠올린다. ‘믿을 수 없으면 등용을 하지 말고, 일단 등용을 했으면 믿어라.’ 소장의 입장에서 보면, 일단 전제부터 확인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을 테다. 인력대기소에서는 정말 아무 사람이나 보낸다. 그러니 나 혼자 일을 보내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간곡하게 말하고 싶다. ‘제발, 사람을 썼으면 좀 믿어라.’


그가 조금이라도 일을 거들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얼른 자신의 옷자락부터 털어내기 바빴다. 그 옆에서 나는 온몸으로 먼지를 마신다. 일부러 그에게 먼지를 날린다. 제발 옆에서 지켜보고 서 있지 마시라고, 나는 떳떳하게 일하러 왔다고, 할 만큼은 다 한다고, 노예처럼 감시받으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다고, 분진에 소리 없는 외침을 실어 보낸다.
 
 

 
#분진
담배는 해롭지도 않겠다. 시멘트 가루를 너무 많이 마셨다. 마스크도 없이 빗자루질했다. 청소하는 줄 알았으면 마스크라도 챙겨 나왔을 텐데. 후회해도 늦었다. 이미 머리도 아프고, 손가락도 부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중에 내가 호흡기질환에 걸리는 날이 오거든, 모두 이날의 청소 때문이다. 눈으로, 코로, 입으로, 땀구멍으로, 머리카락으로, 온몸에 분진이 스몄다.
 
 

 
#요령 1
싸리빗자루로 바닥을 쓸고 있었다. 가까이서 방수작업을 하고 있던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요령이 필요해.” 아주머니는 덧붙였다. “아이고, 먼지. 좀 쉬면서 해. 청소도 요령이 필요해. 봐, 내가 하는 거 잘 봐봐.” 아주머니는 두리번거리더니 30cm 자처럼 생겼지만 조금 더 두꺼운 나무토막을 주웠다. “빗자루로 쓸면 먼지 많이 날리지? 그런데 나무토막으로 바닥을 이렇게 쓱쓱 긁으면, 봐봐, 먼지 하나도 안 나지? 그리고 이걸 삽으로 떠서 마대에 담는 거지. 이렇게 바닥에 무릎 쭈그려앉아서 하면 또 얼마나 편해. 일에도 요령이 필요해.”
 
 

방진마스크. 출처 구글 이미지.


 
#방진마스크
방수작업 하시던 아주머니는 일이 끝났다. 퇴근하기 전에 내게 온다. “아이고, 젊은 친구가 고생하네. 마스크는 없어? 기다려봐. 내가 하나 갖다 줄게.” 아주머니를 따라갔다. 아주머니는 자동차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마스크를 찾는다. 영화 <괴물>에서 방역하던 사람들이 쓰던 마스크처럼 생겼다. 메르스가 한창이던 작년 여름, 뉴스에 나오던 사람들이 쓰던 마스크처럼 생겼다. 아주머니가 내게 건넨 것은 방진마스크다. “공사장 먼지가 얼마나 해로운데. 다음부터는 꼭 마스크 챙겨 다녀. 나중에 골병 든다. 그리고 담배는 끊고! 다른 취미를 알아봐. 아직 살 날이 창창한데 무슨 담배야. 알았지?”
 
 


쓰레기더미. 이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요령 2
폐기물차가 왔다. 쓰레기들을 수거하는 차다. 공짜는 아니다. 내 일당보다 몇 배 많은 돈을 받는다. 때문에 현장소장은 하나라도 쓰레기를 더 실으려 한다. 작은 왕릉처럼 쌓인 쓰레기들을 차에다 일일이 싣는다. 1.5톤트럭 적재함에도 쓰레기가 수북해진다. 마대를 들어올리기가 점점 불편해진다. 폐기물차 아저씨가 말한다. “차에 짐이 많이 실려서 이제부터는 마대를 높이 들어올려야 하니까 땅바닥에 ‘다이’라도 깔고 하는 게 편할 거야. 발판이 있어야 힘도 덜 쓰지. 일하면서도 머리를 써야 돼. 요령이 있어야 돼.”
 
 

 
#퇴근
언제 끝나나 싶던 일도 끝난다. 눈으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손은 무던히도 제 할 일을 한다. 퇴근하기 전, 씻고 나서 옷을 갈아입는 그 상쾌함은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찬물의 청량함! 새사람이 되는 숭고함.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를 씻겨내는 개운함. 하루 종일 먼지구름 속에서 지내던 기억을 씻어내고 수건으로 말끔히 닦는다.
 
 

 
#용서
현장소장이 아무리 미워도 일당을 받고 나서는 다 용서가 된다. “고생 많았어요.” 그가 12만원을 건넨다. '당신을 용서합니다.'
 
 

 
#결산
일당 12만원
수수료 1.8만원
순이익 10.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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