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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광 Aug 28. 2016

내가 곰방이라니

40kg짜리 시멘트 포대를 옮겨야 한다니

#곰방
 
현장소장: 그라인더 사용할 줄 알아요?

 
나: 아니요. 기계는 사용할 줄 몰라요.

 
현장소장: 그러면 ‘곰방’해요. 타일은 저쪽에 옮기고, 시멘트는 저기서 여기로 옮겨 쌓으면 돼요.

 
나: 예, 알겠습니다... (왜 이런 시련을...)

 
*곰방: 운반의 총칭. 주로 벽돌, 타일, 시멘트 등의 자재를 운반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그때 작업복으로 갈아입은 ‘왕눈이아저씨’가 등장한다.
 
현장소장: 아저씨는 그라인더 쓸 줄 알죠?

 
왕눈이: 알죠.

 
현장소장: 벽면에 보면, 시멘트가 안 예쁘게 덧붙어서 굳은 것들이 있어요. 그것들 다 갈아서 매끈하게 보이게 만들어요. (나를 가리키며) 자네는 방금 말했던 것처럼 곰방하면 되고.

 
왕눈이: 차라리 내가 곰방하면 안 돼요?

 
현장소장: 이분이 그라인더를 다룰 줄 모른대잖아요.

 
왕눈이: 아... 알았어요.
 
곰방이라니. 곰방만 따로 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내가 곰방이라니. 시멘트 40kg을 어떻게 짊어지고 옮기나.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타일
 
타일이 이렇게 무거웠나. 맨날 밟고만 다니느라 몰랐다. 10장씩 20장씩 묶음으로 된 박스채로 들고 다니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크기도 제각각이다. 어떤 타일은 가정집 화장실 바닥에서 자주 보던 크기라면, 또 어떤 타일은 두 장 깔면 한 사람이 거뜬히 누워 잘 수 있을 만한 크기였다.
 
이곳은 빌라 공사현장일 텐데 이런 타일들은 다 어디에 깔리려나. 타일이라고 하면 맨바닥과 동의어 정도로 여겼는데, 아직 포장된 상태로 놓여 있는 타일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거대한 조립품 같았다.
 
 
 
#시멘트
 
40kg. 시멘트 한 포대의 무게는 만만치 않았다. 내 몸무게보다 적게 나가는 것에 끙끙댔다. 땅바닥에 놓인 시멘트 포대를 내 어깨로 옮기려면 세 단계가 걸렸다. ①시멘트 포대를 들어서 허벅지로 지탱한다. ②가슴팍까지 들어올린다. ③꾸역꾸역 오른쪽 어깨로 밀어올린다. 이렇게 해야지만 겨우 40kg을 어깨에 안착시킬 수 있었다. 이 40kg짜리를 계단으로 옮기는 일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5m 정도만 옮기는 일이었다. 시멘트 포대가 비 맞는 일이 없도록, 바깥에 있는 것들을 안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100포대를 옮겼다. 팔에 힘이 없었다. 울고 싶었다.
 
나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미장작업팀의 일원인 어떤 아저씨도 시멘트를 옮겼다. 아저씨는 자세를 낮춰서 시멘트 포대의 양쪽 끝을 잡더니 베개를 다루듯이 한쪽 어깨에 휙 올렸다. 내가 세 단계로 나눠서 꾸역꾸역 안간힘을 써가며 하던 일을 아저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아저씨는 가뿐하게 짊어지고 가면서 휘파람까지 불렀다. 아무리 젊게 보더라도 50살은 넘어 보였다. 감탄하는 동시에 억울했다. 나는 26살인데, 내가 더 젊은데, 저 아저씨보다도 힘을 못 쓴다. 아저씨가 보기에 나는 젊은 게 아니라 그냥 어린 거겠구나, 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충고
 
점심을 먹으면서 왕눈이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 일은 좀 할 만하세요?
 
왕눈이: 죽겠어. 차라리 곰방하는 게 낫지. 그라인더로 벽 갈고 다니는 일은 도저히 못 하겠다. 먼지 날려서 죽을 맛이야. 너는 절대로 먼지 많이 먹는 일은 하지 말아라. 차라리 곰방은 몸만 잠깐 힘들고 말지, 먼지 많이 마시면 그게 다 몸에 쌓인다고. 그게 쌓이고 쌓이다 나중에 폐병 걸려.
 
아까는 자기가 곰방하겠다더니, 이런 이유 때문이었구나. 잠깐이지만, 아저씨가 나 대신 힘든 일을 하겠다는 의미인 줄로만 알았다. 알고 보니, 먼지 날리는 게 싫어서 그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둘 중에 한 명은 먼지를 마셔야만 했다. 아저씨는 이제 와서 내게 절대로 먼지 들이마시는 일은 하지 마라고 충고를 한다.
 
 
 
#기술을 배워
 
왕눈이: 노가다는 왜 하는 거야?
 
나: 아르바이트로 하고 있어요.
 
왕눈이: 학교는?
 
나: 이제 곧 졸업하죠.
 
왕눈이: 몇 살이랬지?
 
나: 스물여섯이요.
 
왕눈이: 내가 말이야, 가만히 생각을 해봤는데, 너도 얼른 기술을 배워. 요즘에 보니까 대학 나와서는 힘들잖아. 요즘 뉴스 봐봐. 다 취업 안 된다 그러고 힘들다 하고 핀둥핀둥 놀기만 하잖아. 겉만 번지르르 한 곳들 가고 싶어서 안달이지, 실속 없는 곳에 취업해봤자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벌어. 너도 얼른 생각 고쳐먹어. 지금부터라도 기술을 배워. 정수직업훈련원(지금의 ‘한국폴리텍 I 대학’)이라는 곳이 있거든? 박정희의 ‘정’과 육영수의 ‘수’에서 한 글자씩 따서 만든 덴데, 지금이라도 거기에 등록해. 거기서 기술 배우면 취업이 얼마나 잘 되는지 알아?
 
나: 아저씨도 거기 다녔어요?
 
왕눈이: 그랬지. 나도 다녔지. 거기 나오면 먹고 사는 데 아무 문제가 없어. 큰 회사들에 얼마나 잘 들어갈 수 있는데. 뭐, 너가 아는 회사들 다 갈 수 있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대우조선소, 뭐 이런 데는 다 갈 수가 있어. 요즘 잘나가는 회사들을 한번 봐봐. 전자, 자동차, 조선 다 기술 가지고 있는 회사들이잖아. 이런 곳들은 절대 망할 일이 없어. 그런 델 가야 먹고살아. 너도 정수직업훈련원 나와서 조선소에 취업하는 길을 알아봐.
 
나: 조선소요? 요즘에 힘들다던데요? 잘못하면 망한다는 소리도 있고.
 
왕눈이: 그건 네가 몰라서 하는 말이야. 지도를 펼쳐 놓고 봐봐라. 땅이 넓냐 바다가 넓냐. 땅보다 바다가 훨씬 더 넓다. 이 바다가 있는 한은 말이야, 조선업은 절대 망할 일이 없어. 해운업도 마찬가지야. 언제 그 많은 물건들을 땅으로 옮기고 있겠냐? 비행기로도 어림없지. 바다로 옮길 수밖에 없어. 그걸 어떻게 옮기겠어. 배에다 실어야지.
 
 
 
#이제 뭐 할까요?
 
타일도, 시멘트도 다 옮겼다. 쉬고 또 쉬다 현장소장에게 가서 말했다.
 
나: 시키신 일 다 했는데, 이제 뭐 할까요?
 
현장소장: 4층에 가면 마대에 쓰레기들 담아져 있어요. 그것들을 여기 1층 밖에다 옮겨요. 쉬어가면서 천천히 해요.
 
4층에서 계단에 주저앉았다. 쓰레기가 무거워봤자 얼마나 무겁겠나 싶었다. 콘크리트 덩어리도 쓰레기로 취급된다는 사실을 잊었다. 괜히 쉬어가면서 하라고 말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 아직 창문이 설치되지 않아서 구멍이 뻥 뚫린 벽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배려
 
공사판 격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자기가 한 게 아니면 어느것도 믿지 마라.”
 
배려가 없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언제나 안전사고가 도사리고 있다. 다들 자기 편한 대로 작업하기 때문이다. 오늘만 일하는 사람은 내일 일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명심해야 한다. 자기가 한 게 아니라면 어느것도 믿지 않아야 한다. 자칫하면 얼마 안 되는 일당 벌러 왔다가 저승으로 가는 수가 있다. 아마 저승에서도 억울할 것이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받아보지도 못하고 죽어버렸다니.
 
노가다판 격언에는 이런 말이 있다.
 
“마대에 많이 담지 마라.”
 
이것은 자신을 위한 말이기도, 타인을 위한 말이기도 하다. 이 격언의 의미를 실제 노가다 아저씨들의 말로써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마대에 많이 담아봤자 옮기는 사람은 결국 본인이야. 오늘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뭐해? 내일은 일 안 할 거야? 오늘 하루 힘들게 일하고 내일 앓아누워 있으면 얼마나 손해야. 그리고 자기가 옮기는 게 아니더라고 막 담으면 안 돼. 누군가는 옮길 거 아니야. 담기는 쉬워도 그거 옮기는 사람은 죽어. 다른 사람도 생각해야지.”
 
4층 계단에 앉아서, 누가 저렇게 무식하게 콘크리트를 담았나, 라고 생각하며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있었다.
 
 
 
#건물주
 
공사장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의 세 사람이 나타났다. 나조차 알아볼 수 있는 유명브랜드의 핸드백을 왼쪽 팔에 걸친 70대 할머니, 하얀 드레스와 검은 구두를 신고 사뿐사뿐 계단을 오르는 30대 후반의 여성, 그 옆에서 천진한 얼굴로 공사장 물건 이것저것을 만져보는 6살 정도의 꼬마애. 건물주 가족이다. 현장소장은 건물주네를 따라다니며 묻는 말에 곧잘 대답했다. 현장소장은 고분고분하고 상냥했다. 갑과 을의 관계. 나는 콘크리트 담긴 마대를 오른쪽 어깨에 짊어지고 이들 옆을 지나간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나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굳은살


4시 30분, 퇴근. 장갑을 벗었다. 손에 콩알만한 굳은살이 생겼다. 야들야들하던 손바닥에 거칠고 딱딱한 것이 들어섰다.
 
 
 
#결산
 

일당 13만원
수수료 1.3만원
순수익 11.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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