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대기소에 불시착한 어느 히치하이커의 기록, 프롤로그
인력대기소는 수많은 ‘히치하이커’들의 집합소다. 이런저런 일자리를 전전하다 찾아온 이들이 태반이다. 더러는 이곳을 불시착 지점 정도로 여기지만, 더러는 좀처럼 떠나갈 생각을 못한다. 자신이 처한 위치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각자가 짊어진 생활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그 질량 또한 결코 작지 않다. 이로 인해서 인력대기소에는 ‘만유인력’이 엄존한다.
만유인력의 법칙. 질량을 가진 모든 물체 사이의 중력끌림. 두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만유인력은 각각의 질량의 곱에 비례하고, 가로놓인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 한다... 지구가 태양을 공전하는 이유도,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이유도 만유인력으로 설명된다. 히치하이커들이 인력대기소를 맴도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나는 비약해서 말한다. 이름하여 '만유인력대기소'다.
스물여섯살, 대학교 막학기에 나는 인력대기소를 찾았다. 돈이 필요했다. 시간도 부족했다. 6월 어느날, 남은 반년을 살아내는 데 들어갈 돈을 셈했다. 추가학기등록금, 정장, 생활비, 원룸보증금, 월세 등 차곡차곡 써내려갔다. 구체적인 항목으로 금액이 드러났다. 갑갑했다.
막연히 짐작했던 것보다 액수가 상당했다. 800만원쯤 필요했다. 그중 8월 말까지 들어갈 돈만 400만원이었다. 시급 6030원으로는 어림없었다. 손 벌릴 곳도 없었다. 대출도 안 내켰다. 이미 학자금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웠다. 노가다를 시작한 연유다.
인력대기소를 맴도는 히치하이커, 라고 나는 스스로를 정의한다. 이곳이 정거장일지 종착점일지 아직까지는 모른다. 다만 나를 끌어당기는 그 거대한 생활의 질량이 사라지지 않는 한 어디든 지금 이곳과 매한가지일 것은 분명하다. 영원한 히치하이커로 남게 되는 것이다.
인력대기소에 불시착한 어느 히치하이커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다. 노가다 현장에서 스쳐간 순간순간의 기억을 이 공간에 엮을 생각이다. 안전화로 아로새긴 궤적의 끝에서 나만의 궤도를 찾게 되기를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