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기록될 2017년 3월 10일, 그날의 단면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주문(主文),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결론의 근거는 헌법 제1조였다.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누구도 헌법 위에서 군림할 수 없다는 엄정한 선언이었다.
같은 날,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에 반대하는 집회가 열렸다.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되고, 집회는 파면에 반대하는 집회로 성격이 바뀌었다. 집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고, 급기야 사망자가 발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정한 애국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무절제한 표현의 자유는 헌법조차 부정했다.
현장이 궁금했다. 이른바 '태극기집회'라고 불리는 그 자리를 지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직접 소통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겠으나 언론에 매개되지 않은, 현장의 生장면을 보고 듣고 싶었다. 안국역 주변에서 보고 들으며 걸었다. 스치다 문득 눈과 귀에 들어온 장면을 이곳에 기록한다.
저편과 이편을 분별하여 알아봄.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이분법적 인식체계.
#안국역이 가까워진다
2017년 3월 10일 오후 5시 40분. 멀리서 목 끓는 소리가 길거리에 퍼진다. 점점 안국역이 가까워진다.
#입당원서 @운현궁 앞
“박근혜 대통령을 살립시다, 여러분! 입당해주시고 여러분의 힘으로 우리 박근혜 대통령을 살려주세요! 우리의 대통령을, 이제 우리가 구해줍시다!”
#헌법재판소로부터 200M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많이들 자리를 떴나보다. 연단에 오른 사람은 흉부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올라오는 목소리를 토해내며 사람들에게 뭐라고 외친다. 무슨 내용인지는 들리지 않는다. 다른 소란스러운 소리가 연단 아래서 터져 나온 때문이다.
#“이 새끼 죽여!”
경찰 바로 앞에서, 살의가 가득한 목소리가 거리를 찢는다. 누군가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꼼짝도 못하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뒷짐 진 채,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이 모습을 지켜보고 서 있을 뿐이다. 아무도 말리려들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 부추긴다. “다시는 못 오게 만들어!” 또 한 사람이 동조한다. “저런 놈은 당해도 싸지.”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은 무심할 따름이다. 낯선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무관심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다. 또 다른 살의가 누군가에게 날아가 꽂힌다. 뒷짐 지던 그들이 뒤를 돌아본다.
#“저 새끼 잡아!”
별안간 20대 남자가 뛰기 시작한다. 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린다. 그를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뒤쫓는다. 사방에서 한 명의 청년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황당한 추격전을 그저 멀찍이서 지켜본다. 흡사 아수라장이다. 왠지 불안하다. 난데없이 살(殺)이 내게 꽂힐지도 모른다. 손에 쥔 스마트폰은 얼른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녹음기를 켠다. 내가 어떤 불합리한 상황에 처해도 이것이 증거로 사용될 수 있기를 바라며.
#“어디에서 왔어?”
누군가 나를 지목한다. 까만 선글라스를 쓰고 옷에는 태극기 문양이 선명한 아저씨(이하 ‘썬글’)가 내게로 걸어온다. 그리고 경고한다.
썬글: 여기 있지 말고 얼른 가셔. 어서 왔어? 어? 여기 와서 괜히 쓸데없는 소리하고 있다가는 죽어. 괜히 맞아서 죽어.”
어디서 왔냐니, 그게 무슨 말인가. 피아식별이다. 내 옷가지엔 리본도 태극기도 붙어 있지 않다. 선글라스 아저씨는 회색지대 인간처럼 보이는 나를 경계하는 것이다. 뭐라고 대답하면 좋은가. 잘못 말하면 나도 추격의 대상이 된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ㅡ학교 가는 길인데요.
썬글: (의외라는 듯) 그래? 아, 그런가? 그러니까 가라고.
ㅡ(반드시 이 길을 지나야 한다는 의미로) 학교 가는 길이라니까요.
썬글: 그니까, 돌아서 가라고. 빨리 가라고. 여기 있다가는 큰일 나.
ㅡ큰일 나요?
썬글: 에, 그럼~. 왜냐면 여기는 위험하니까 가라고. 이렇게 살벌해.
ㅡ저기로 가야 되는데. 학교 가려면.
썬글: 그러면 돌아가든지. 오늘은 저기로는 못 가. 빨리 가라고. 빨리 가라고! 어? 빨리 좀 가!
ㅡ이 앞은 막혔어요?
썬글: 어어. 빨리 가라고. 학생들은 여기 있으면 좋은 게 하나 없어. 빨리 가. 여기 있으면, 잘못했다가는 죽어, 그냥 죽어. 응? 지금 악에 받쳐가지고 맞으면 죽잖아. 안 그래?
ㅡ아까 누굴 쫓아가던데, 뭐예요 그건?
썬글: 사진 찍으러 왔으니까.
ㅡ그래요?
썬글: 여러 사람이 패면, 맞으면 죽는 거 아니야.
ㅡ그렇죠.
썬글: 그치? 그러니까 가라고. 빨리 가. 빨리 가. 서로 눈 도는 거여. 빨리 가! 가~! 학생들은... 학생들은 가! 빨리 가! 학생들은 가라고, 글쎄~! 쭈물쭈물하지 말고 가라고!
점점 멀어지는 선글라스 아저씨의 목소리. 떠나가지 못하고 자꾸만 뒤돌아보는 나를 보며 아저씨는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는 나를 쫓은 걸까, 구해준 걸까.
경찰1: 아, 여기는 지금 다들 독이 잔뜩 오른 상태라 뭔 짓 할지 모르니까 얼른 가세요.
경찰2: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봐도 막 달려드니까, 그냥 가세요.
방법이 없다. 뒤돌아가는 수밖에는. 일단은 다시 낙원상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창문 너머 새어나오는 목소리
낙원상가로 이어지는 길가에 위치한 어느 허름한 호프집. 서너 명의 70대 남성들이 술자리를 갖는다. 한 명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소리친다. 울분과 격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목소리가 굳게 닫힌 창문 너머로 선명하게 새어나온다. 술 때문에 발음이 꼬인 데다 울음이 뒤섞인 말소리지만 분명하게 들린다.
“오늘! 나라가 망했어! 우리가 어떻게 세운 나란데, 우리가 어떻게 일군 나란데! 빨갱이 새끼들 때문에, 그 개새끼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다 무너지게 생겼어. 오늘은 우리 대한민국이 망해 자빠진 날이라고! 오늘 우리는, 나라를 잃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대통령을 끌어내린 새끼들, 다 찢어 죽어야 돼. 어쩌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아! 아아!”
테이블에서 뭐라고 떠들든 울든, 주방에서 아주머니는 말없이 안주를 요리한다.
#헌법재판소로 가는 길
헌법재판소 앞을 가보고 싶다. 2010년부터 학교를 다니는 동안 마을버스 타고 지나가며 매일같이 본 탓에 내게는 너무도 익숙한 그 풍경이 지금은 어떠한 모습인지 두 눈으로 보고 싶다. 낙원상가 부근에서 인사동 거리를 지나, 풍문여고 앞 안국동사거리에서 직진하여 다시 나타난 안국역사거리(2·3·4·5번출구)에서 좌회전하면 헌법재판소다. 아까 그 아수라장에서 발걸음을 되돌리지만 않았더라면 3~4분 걸릴 거리를, 15분 넘게 걸려서 우회한다.
#학교를 못 가
헌법재판소로 이어지는 길에는 경찰의 경비가 더욱 삼엄하다. 차벽이며 병력이며 엄밀하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도, 그럴 수 있는 사유도 없어 보이지만 일단 다가간다. 길목을 지키고 선 경찰이 묻는다. “어디로 가시죠?” 학교에 가는 길이라고, 나는 대답한다. 학교에 간다는 말은 헌법재판소 앞을 지나가고픈 이유로 지어낸 핑계다. 되돌아오는 대답. “보시다시피 오늘은 여기로 다니실 수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현대건설 건물 방향으로 돌아서 가시기 바랍니다.”
#“오늘 집에 갈 수 있겠지?”
의경들이 길바닥에 앉아서 대기 중이다. 길바닥은 차가울 것이다. 그나마 3월의 햇살이 따뜻해서 다행이다. 부드러운 석양이 그들을 감싼다.
반면 차벽 너머 안국역 4·5번출구 쪽은 여전히 소란스럽다. 군가가 묵직하게 길바닥을 메운다. 곡목은 <최후의 5분>. 익숙한 가사가 낯설게 들린다. 왜곡된 결심이 비장하게 차벽을 넘는다.
‘숨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 승리의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라.
우리가 밀려나면 모두가 쓰러져 최후의 5분에 승리는 달렸다.
적군이 두 손 들고 항복할 때까지 최후의 5분이다 끝까지 싸워라.’
길바닥에 앉은 의경들 중 누군가 말한다.
“우리, 오늘 집에 갈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