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컸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문장들
책장을 정리했습니다. 먼지로 코팅된 낡은 공책을 발견했습니다. 제 초딩 시절의 일기장이었습니다.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자주 틀리고 글씨도 그날그날의 기분 따라 달랐지만, 이런 건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읽는 내내 웃음이 났습니다.
'이제는 다 컸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문장을 세월이 지나고 문득 다시 읽어보는 재미를 무엇에 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지?' 기억나지도 않는 지난 날의 저를 스스로 대견스러워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제게서 실종된 동심을 재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혹시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 지금의 제가 쓴 글을 다시 읽게 된다면, 지금의 제 문장과 생각에서 그 훗날엔 실종됐을 또 다른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제가 쓴 초딩일기 중에서 재밌게 읽었던 7편을 골랐습니다. 이미지파일 아래에 '교열본'을 덧붙입니다. 부디 재밌게 읽히면 좋겠습니다.
오늘 밤에 7시 10분쯤에 그물망을 치러 아빠랑 동생이랑 나랑 같이 차를 타고 나갔다. 그래서 12개를 치고 왔다. 동생이 늦게 와서 힘들게 달려왔다. 동생은 물고기들이 불쌍하다고 하였다. 나도 불쌍하긴 불쌍하다. 그래도 우리가 먹는 거니 할 수 없다.
고모 집에서 석류를 먹었다. 석류는 달기도 하고 시기도 하다. 정중이는 키가 작아서 비타민C를 먹는데 석류를 갖다 주면 얼굴이 어떤 표정일까? 우리 아빠는 석류를 가지고 석류주를 만든다고 하셨다. 나는 말렸지만 석류주를 만드신다고 하였다. 아빠는 왜 하필이면 몸에 나쁜 술을 마시려고 하실까? 나 같으면 석류주스를 만들어서 먹고 말겠다.
어제부터 3000원을 모으기로 하였다. 왜냐면 미니카를 사기 위해서다. 미니카는 원래 2000원이었는데 (가격이 올라서 이제는) 3000원이다. (모은 돈이) 어제는 1900원에서 오늘은 3000원이다. 3000원으로 (미니카를) 사고 200원은 승건이(동생)에게 주었다. 또 1000원을 모아서 건전지를 사고 남은 돈으로 과자를 샀다. 미니카는 잘 가지 않았다. 내가 고치니까 겨우 빨리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미니카 이름은 타이푼매직이다. 이제는 오랫동안 가지고 놀아야지! 자! 달려라 타이푼매직!
나는 문어를 좋아할 때도 있고 싫어할 때도 있다. 좋아할 때는 문어를 먹을 때고 싫어할 때는 내 별명을 문어라고 할 때다. 엄마가 동해안에 가서 말린 문어를 사왔다. 문어는 아주 별미였다. 그리고 나서 오징어를 먹으면 오징어가 맛이 없다. 문어는 먹물을 뿜어내고, 뼈가 없어서 돌 틈도 지나갈 수 있다. 문어는 너무 맛이 있어서 당장이라도 다 먹을 수 있겠는 별미이다.
너는 너는 무얼 닮았니
길쭉한 오이
아니면 둥그런 수박
너는 너는 왜 그러니
하아얀 살에
황토색 점이 있고
나는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될 거야
너처럼 맛있는 것
놓칠 수 없어
주룩주룩 내리는 비
내 마음도 모르고 계속 내리네
주룩주룩 비 내릴 때
만약에 교실이 나룻배
였다면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집에 오는데
주룩주룩 비 내리는 밑에
나는 비 다 맞고 천둥·번개는
성난 얼굴로 소리치고
나는 무서운 마음으로
집에 온다.
집에서 컴퓨터를 하려고 동생과 싸웠다. 원래는 내가 하게 돼 있는데 (동생은) 자기가 먼저 켰다고 자기가 한다고 하였다. 나는 화가 나서 장난하냐며 말을 한 후 살살 약하게 치니 왜 치냐며 더 화를 내고는 사정없이 마구마구 때렸다. 아팠다. 동생이 엄마께 말을 하여 엄마께 혼이 났다. 억울하였다. 난 나의 주장도 하지 못한 채 벌을 받았다. 동생은 컴퓨터를 하고 엄마는 동생이 더 어리니까 양보하라고 하였다. 생각해보니 그래야 할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에 동생과 똑같은 짓을 하였기 때문이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는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양보하며 잘해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