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행복해?" 도망쳐 왔지만, 심장이 울렸다

<도망이 아닌>

by 이두래

"엄마 행복해?" 도망쳐 왔지만, 심장이 울렸다



# “엄마, 행복해?” 아이가 물었다.


숙소 수영장 앞에 앉아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소규모 어학원이라 방은 12개 남짓이었다.


매일 아침과 저녁을 같이 먹고,

아이들이 수영장에서 노는 걸 지켜보면서

엄마들은 금세 친해졌다.


영호가 수영복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며

“우리 엄마 행복해 보인다.

.... 엄마, 행복해?”라고 물었다.


엄마 웃는 거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서.”


그러곤

수영장으로 점프했다.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얼어붙었고

아이 입에서 나온 한마디에

옆에 있던 엄마들도

아무 말도 묻지 못했다.


세부로 도망치기 전에는

영호와 윤호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의 모든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고


그냥 매일 멍하게

스스로 고립된 채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으로 잠에

들다가 깨는,

반복적이고 희망 없는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흐르기만을 바랐다.




도망치고 싶었던 건

나였다는 걸




영호도 알고 있었구나.


...




# 도망쳐 왔지만, 심장이 울렸다


우리가 세부에 도착하던 날.

아이 한 명만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다.


같은 숙소에 2주만 머물다가 갔다.

돌아가는 날 울면서 고맙다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울먹거렸다.

살갑게 대해줘서 고맙다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도

영호, 윤호와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돌아가라고 했다.


내가 없었으면

짧은 세부 여행이 길게 느껴졌을 거라며

갑자기 나를 안고 웃음 섞인

눈물을 보였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던 내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갔던 건

이유가 있었다.


숙소에 처음 도착했을 땐

아무도 없었다.


세부엔 한국인이 많다고 했는데

어?

이 날따라

한국인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옆방에서 누군가 나왔고

반가운 마음에

혹시 마트를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버스를 타거나 그랩을 타면 되는데,

마트가 너무 가까워

숙소 바로 앞에서 버스를 타면 된단다.


그런데 문제는

현지 동전이 필요하다는 것.

지폐는 많았지만, 단위가 컸고,

동전은 없었다.


“동전이 없으면 제가 드릴게요”라며

내 손에 동전을 우르르 쏟아주셨다.


"제가 마트 다녀와서 바로 갚을게요!” 하자

“에이~ 그냥 드릴게요~” 하며

황급히 방으로 들어가셨다.


동전을 손에 들고

아이들과 숙소 앞 길거리로 나갔다.

그런데 지프니, 어떻게 타는 걸까?


우리의 모습을 눈치챈 현지인의 코치로

그렇게 첫 지프니에 발을 올리게 된 거다.


그리고 그날 밤.

바로 옆방에서

여러 종류의 현지 과자를 가져와

“첫날이라 아이들 간식도 없을 텐데 드세요.”

라며 과자와 음료수를 방에 막 쏟아놓고

홀연히 사라지셨다.



아이들은

남기고.


...


영호와 윤호에게

세부에서

첫 친구가 생겼다.


오랜만에

우리의 공간이

왁자지껄했다.



왠지 멋있었다.

나도 해보고 싶었다.


몇 주 뒤

숙소에 새롭게 들어온 가족에게

수줍게 내 마음을 전했는데

갑자기 고맙다며 우셨다.


나와 결은 달랐지만

힘들어서 세부로 여행 왔다며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받아본

오랜만이라,

눈물이 찔끔 났다고 했다.



나도 조금은

멋있어 보였을까?


...


조금은 멋있었기를.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기를.
꼭 그래야만 하는,
짧은 시간 큰 마음을 나눴던
나의
소중한 사람들.



세부 막탄의 햇살은

내 마음에도 살며시 스며들고

있었다.







금전을 요구했던 학부모도 있었다.

영호의 잘못을 숨겨준다는 대가로.

영호가 잘못이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심지어 누가 잘못했는지 알고 있었으면서도.


어쩌면

나는 그때 가장 도망치고 싶었다.

환멸을 느꼈다.


학교에는 단지 체험학습과

미인정 결석을 하겠다고 서약하고

세부로 왔다.

다른 이유는 언급하지 않았다.

교사 역시 물어보지도 않았다.

영호에게는

간 김에

더 오래 있다가

오는 건 어떠냐는 말뿐.

부끄럽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두래야, 괜찮아?

영호는 좀 어때?

세부에서도 누워만 있는 건 아니지?

밥은 잘 먹고 있어?

우리 징징이 윤호는 어때?

안 돌아오는 건 아니지?

거기서도 길 못 찾고 헤매고 있는 건 아니지?

언니 불안하니까 톡 답장이라도 해줘



갑자기 떠난 나에게

드문드문 연락이 오는 지인들.

가끔 심장이 울리기도 했다.






#작가노트

도망이 아니라 쉼이었습니다.

세부 막탄에서 작은 쉼을 기록한

이두래만의 그림에세이입니다.




프롤로그부터 보시려면 요기를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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