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이 아닌>
내 앞에서만 웃고, 또 내 앞에서만
영호와 병원에 갔다가 집에 가는 길.
가방을 두고 온 걸 알았다.
“귀찮다, 어쩌지?”
영호는 웃으며 말했다.
“엄마 또?”
며칠 전엔 식당에 가방을 두고 왔다.
약 먹이는 걸 깜빡하고,
카드는 두고 나오고,
양말은 뒤집어 신고 있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마다
아이는 오히려 웃는다.
나의 허둥댐이, 아이에겐 일상이다.
역시 우리 엄마가 확실해.
난 엄마를 닮았어!
난 김영호가 아니라, 이영호야.
엄마는 늘 완벽하진 않지만,
아이는 그런 엄마를 가장 잘 알고,
내 앞에서만 웃고
또
내 앞에서만 운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휴대전화 화면에 ‘학교-교무실'이라고만
떠도 이젠 트라우마다.
하.
영호가 다쳤는데 많이 운단다.
넘어졌는데 크게 다친 건 아니고
놀라서 많이 우는 상태.
집에 가고 싶어 한단다.
다행히
병원은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보건 선생님 전화였다.
나는 곧바로 집으로 보내달라고 했다.
영호는 내 앞에서만 운다.
힘들어도 참다가
내 앞에서만 우는데,
학교에서 울 정도면
나는 안다.
진짜 아프다는 걸.
집에 오는 길에서도 영호는
팔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돌에 걸려 넘어지면서
데굴데굴 굴렀다고 말했다.
너무 아프고 놀라서
보건 선생님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넘어졌다고만 했다고.
(그래서 모르셨던 것...)
나는 바로 영호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검사 결과
팔이 똑 부러져 있었다.
나는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정말 놀라서 우는 거예요.
아이니까 그럴 수 있어요.”
라는 말을 듣기를 바랐지만,
파쇄골절.
빠른 발견 덕에 수술까진
가지 않아도 되지만
4주 동안 고정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영호는
“엄마 나 진짜 아픈 거 맞았지?
학교에서 아프다고 했는데
안 믿어주니까 그래서 울었어.
믿어줘서 고마워.
역시 우리 엄마야”
너
진짜
이렇게 얘기할 줄 몰랐다.
그러면
엄마 또 눈물 나잖아.
나는 완벽하지 않다.
자주 실수하고,
자주 미안하다.
하지만 영호와 윤호는
그런 나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잘 웃고 또 운다.
세부 한달살이를 다녀온 후
사람들은 비용을 가장 궁금해했다.
우리가 무슨 이유로
그렇게 급하게 떠났는지는
그다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돈이 아깝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해볼 용기는 있을까.
경험의 가치를 모르는 게
안타까웠다.
헤매기만 하는 날들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창문을 열고 싶은데
커튼마저 닫고 싶은 순간.
이기적인 마음으로
상처를 주기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가 없는
따뜻한 온기, 손길도 있다는 거.
헤매던 시간을 나와
닫혀 있던 문을 열 수 있다는 거.
그리고
엄마는 강하고
아이들은 더 강하다는 걸.
따뜻하게 기다리고 있는
아빠가 있다는 걸.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것까지.
우린 다 알고 있다.
완벽하다는 건 아니다,
늘 말을 잘 듣는 천상 착한 아이들도 아니다.
짜증을 부리고 말을 안 듣는
순간이 몇 배는 더 많다.
오늘도 나는 몇 번이나
"엄마 무서운 줄 모르는 구만!"
으르렁 시동을 걸었다.
아이들은
"어이쿠, 무서워라." 하며
장단을 맞췄다.
오늘도 우리는 별 탈없이
한 뼘 더 가까워질 뿐이다.
#작가노트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당신도 분명 잘 살아낼 수 있어요.
저는 여전히 싹을 틔우고 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