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만한 마음>
나의 여름, 초강력 꽃잎 딱지 - 그날의 마음
나의 여름은 초강력했다.
단순히 계절의 더위가 아니라,
견뎌낸 시간의 강도였다.
동화를 만들수록 내 마음은 평온해졌고 용기가 생겼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정말 답답하고 힘겨운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몇 년동안이나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누군가는 내게 누명을 씌웠다. 그 이유는 내 직업이었다. 내 직업을 가볍게 입에 올리며 ‘재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직업에 높고 낮음이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나면, 그 사람의 직업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곁을 내주지 않았던, 무례한 사람들이
나를 건들다가
내 아이마저 짓밟았다.
그들의 무지에 치가 떨렸다.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는 자꾸만 상처받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 작가로서의 삶을 내려놓았지만, 내 힘은 역시 글과 말이었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또 다른 아이들이 다칠 테니까.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그전에, 우린 상처를 꺼내고 보내주기로 했다. 나는 아프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외면했다. 심지어 돈을 달라고 했다. 서운함을 떠나, 어떤 딱함과 탁함을 느꼈다. 내 글을 공짜로 이용했던 사람들은 본인에게 해가 될까 피했다.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는, 책을 읽는 것을 허세로 치부했던 그들은 더 이상 내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내 스스로 지키기로 했다. 그랬더니,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이 하나둘 씩 모였다. 우리 집 우편함에 편지를 넣고 간 사람도 있었다.
힘내라고,
본인이 못한 일을 나는 해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꼭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정말이지
초강력했고, 이겼다.
누가, 나를 욕했다고 굳이 내 귀에 속삭이고 메시지를 보내는 소름 돋는 인간도 있었다. 어쩌라는 거지? 본인도 똑같은... 아니, 인간이 아닐지도. 혼자라면 하지 못할 행동과 말. 우린 그런 사람들은 찌질이라고 한다.
초강력 찌질이.
무례한 사람들의 집단지성.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의 같은 생각. 나는 거기서 빠져나왔다. 그때부터 일이 잘 풀렸다. 방송작가 활동에 대한 가치가 어마어마한 돈으로 환산됐을 때 사실 나도 놀랐다. 이게 정말 나일까? 조금, 기뻤다.
드라마에서 그랬다. 영광은 없다고. 그런데 있었다. 그건 딱딱하게 굳은 상처에 내려앉은 꽃잎. 어느 날부터 딱지가 꽃잎처럼 보였다. 내가 그렇게 보려고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다. 꾹 참으면 언젠가는 사라질 딱지. 그런데 못 참고 뜯을수록 아프고 다시 생겼다. 아픔을 인정하고 기다리고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무언가를 열심히 했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내가 가장 잘하는 걸 했다. 역시나, 글이었다. 누군가는 그런 걸 왜 하냐며 비웃었지만, 그는 그대로였고 나는 한 단계 올라갔다. 본인이 이뤄내지 못한 삶이 부끄럽다면 그걸 이뤄낸 사람을 조롱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는 걸 제발 알았으면 한다. 모르면 입을 닫기를.
이제는, 아무도 그 위를 다시는 밟지 못하게
내가 벽이 되고 꽃잎 딱지가 되었다.
나의 동화는 따뜻하다.
하지만 그 배경은 잔혹했다.
아이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면서도 정작 내 자신은 돌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하려고 마음먹었고, 내 마지막 방송 대본을 처음으로 다시 마주했다. 당시 게스트는 <두 시 탈출 컬투쇼> 김태균이었다. 나는 김태균 님의 책에 사인을 받은 게 문득 떠올라 책장에서 책을 다시 꺼냈다. 표지 뒤에는 내 이름과 함께 '누구보다 행복하실게요.’라고 쓰여 있었다. 문득 행복해지고 싶었고, 이런 말을 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표현해야 회복이 되고 힘이 생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쩌면 점점 행복해지고 있는 것도 같다.
《초강력 꽃잎딱지》는 한 공모전에서 우수작품으로 선정됐다. 나의 여름은 뜨거웠고, 마음껏 기뻐했으며 누군가를 꼭 안아줄 수 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