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했던 첫 북토크, 사실은

<콩만 한 마음>

by 이두래

초강력했던 첫 북토크, 사실은



북토크.




아니 가족토크.



《초강력 꽃잎딱지》가 우수상으로 선정되며 북토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나는 지인을 초대하지 않았다. 부를 지인도 없을뿐더러 가족들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한다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내 이야기를 가족 앞에서 하고 싶었다. 용기를 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북토크는 시작됐다.


단 한 명의 지인. 아나운서인 친한 언니가 사회를 봐준다고 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대본을 썼다. 북토크에 참가한 가족을 내빈으로 소개했다. 아나운서 언니의 아이디어였다.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 내빈으로 소개할 때마다 일어나서 인사를 하는데, 그 모습이 정말로 있어 보였다. 시킨 사람도 없는데, 약속이라도 한 듯 한 가슴 앞에 손을 올리고 인사를 했다. 마치 공식적인 자리처럼 느껴졌다. 나는 얼굴을 가리고 웃느라 바빴다.

아나운서인 언니는 나를 멋진 엄마로, 그렇게 다시 일어나야 한다며 내 이력을 소개했다.

"산업도시, 울산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공업탑에도 꽃이 피듯,

풍부한 감성으로 자라난 이두래 작가는

2010년 대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100만 원을 들고 혼자 서울로 올라와

이틀 만에 YTN 과학프로그램의 막내작가로 합격합니다.

대표 프로그램이 셀 수 없이 많지만,

몇 가지만 소개하겠습니다.

2012년 MBC <우리는 한국인-희망충전소>에서,
KBS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에서 연예 코너를 담당했습니다.


아침 생방송 프로그램임에도

시청률 10%를 넘는 작가로 화제에 올랐고

<개그콘서트>의 개그맨들과 아이템을 짜던 중,

한 개그맨은 이두래 작가에게 영감을 받아

‘KBS 미친놈작가’로 이두래 작가의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이두래 작가는,

희극인실에 찾아가 해당 개그맨을

본인의 프로그램에 다시 출연시키고,

해명 방송을 아이템으로 만들어,

시청률을 올리던 그런 방송국 놈이었습니다.

음악가, 미술가, 소설가 등 예술인을 만나고 조명하는 SBS <컬처클럽>

MBN <저녁 8시 뉴스> <엄지의 제왕> 등을 거쳐

2023년, 예능프로그램을 만들며, 예능 작가로도 발돋움했습니다.


곧바로 다큐프로그램 메인작가로 여러 제의를 받았지만,

이두래 작가는 과감히 모든 걸 포기하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이들을 지키다가

이렇게 동화 한 편을 만들어냈습니다.


이두래 작가는 방송작가 계에서는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20대에 아이 두 명을 낳은 유일한 작가,

또라이, 엄마, 아줌마’라는 조합은

정말로 특이했던 작가였다고 “스스로” 말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열했지만 행복했던 방송작가 생활. 다시 돌아갈 기회가 생긴다면, 어쩌면 돌아갈지도. 작가 이력은 내가 썼고 언니가 살려냈다. 허세가 가득 담긴 이력이었다. 동화작가로서의 나의 정체성은 ‘허세’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허세를 좀 떱니다. 제 콘셉트는 ‘허세’입니다. 저를 과장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나를 나 스스로가 강하게 믿고 그걸 작품으로 보여주겠다.'는 하나의 작가 정체성일 뿐입니다. 사실 저는 방송작가를 하면서도 정작 제 진짜 글은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존감은 없습니다. 그리하여! ‘허세’를 흉내 내며 조금씩 저를 세우고 있습니다. 허세는 그 과정의 일부이고요, 그래서 귀엽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을, 아나운서님께 낭독해 달라고 부탁했다. '허세'가 내 정체성인 만큼 나는, 내 작가소개를 읽어달라고 했다.

작가 이두래.

우주만큼 큰 이야기를 가진 사람.

콩알만 한 마음도

우주만큼 소중히 여기고 싶은 사람.

상처와 회복, 조용한 용기와 연결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엄마가 말했습니다.

“그 콩만 한 게, 우주만큼 컸네.”


나는 울먹거렸고, 아나운서님은 눈물을 참으며 덧붙였다.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 진짜 콩만 했거든요. 두래 작가가 24살, 제가 25살 때니까, 인간으로서도, 방송인으로서도 콩만 한 시절에 MBC에서 만나서 일도 열심히 하고, 엄마도 됐고. 그러다가 지금 같이 작가랑 진행자로 한 자리에 있다는 게

말 우주만큼 큰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글 참 잘 썼다!!"


나는, 무엇보다 이런 자리를 내 스스로 만들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모두 웃었고, 행복해했다. 이런 내 모습에 내빈인 시어머니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 아직도 아이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어른이 돼 있다고, 잘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고 우리는 다 같이 펑펑 울었다. 아나운서님 역시 울면서 진행을 이어가지 못했다. 어른이 됐다는 말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있을까.


이어서 "초강력 꽃잎 딱지" 제목 수처럼 일곱 글자로 응원의 메시지를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초강력 두래 3등"이라고 외쳤다.

남편은 "두래는 꽃잎이야"라고 말했다.

아들은 "파이팅 파이팅 예!"라고 말했다.


나는 역시나 허세였고

남편은 사랑이었으며

우리 열 살 아들은 천재였다.


나는

"훌륭한 사람은 되지 못하더라도 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아무나’로, 때로는 작가로 살겠습니다.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내빈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라고 말하며 북토크는 그렇게 끝이 났다.

내 글에서, "나는"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역시, 내가 나를 증명하는 일부이며 자존감을 키워가는 일환이다. 누군가는 "나는"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촌스러운 글쓰기라고 했지만,



내 마음이다.



첫째 아들은 이런 내가, 엄마가 멋있다고 말했고 엄마가, 엄마라서 좋다고 했다. 오랜만에 열두 살 아들의 손을 잡고 걸었다. 우린 삼겹살 10인분을 먹고 육회를 먹고 녹두전을 먹고 그렇게 집으로 왔다.

작가의 이전글나의 여름, 초강력 꽃잎 딱지-그날의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