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의미

새해에는 낯선 이름과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갔으면

by 소정


이름을 붙이는 일은 이해하려 애쓰는 일. 이름이 있어야 부를 수 있고, 부를 수 있어야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아버지께서 직접 지어주셨다. 평범한 직장인인 아버지께서 한자사전과 책을 뒤져가며 며칠 고민한 끝에 지으셨다는 이름. 딸의 평탄한 삶을 기원하며 이름을 지은 후, 신고하기 직전에 한자를 하나 고치셨다고 했다. 원래는 높을 소(卲)에 고요할 정(靜)을 쓰려하셨다가, 높고 고요하면 내가 너무 외로울까 봐 밝을 소(昭)로 바꾸셨다. 그래서인지 나는 내 이름을 참 좋아한다.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선뜻 들려주기도 한다. 내 이름에 아버지의 사랑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내 자랑거리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위해 붙였던 이름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본래 의미가 퇴색되거나 부정적인 인식이 붙기도 한다. '폐경'이라는 단어가 그 예다. 여성은 약 13세부터 50세까지, 삶의 많은 시간 동안 월경을 치른다. 한 달에 한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그에 수반된 수많은 호르몬의 영향을 끌어안고 마치 아무런 일이 없는 것처럼 일상생활을 영위해야 한다. 그 수고로운 월경을 모두 끝마친 여성에게 '폐경'이라는 단어는 다소 무례하다. 여성의 몸은 생산시설이 아니지 않나. 그래서 '완경'이라는 새 이름이 탄생했다. 이 이름은 안명옥 의학박사가 만든 단어로, 부정적 의미를 걷어내고 자연스러운 발달 과정의 일부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 붙여진 이름이다. 완경을 맞이한 여성은 신체 변화는 물론, 심리적으로도 여러 증상을 겪는다. 그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 그동안 고생했고, 이 변화는 자연스럽고 배려받아야 할 일이라는 마음을 담은 따뜻한 이름은 분명한 위로가 될 것이다.


쓰던 이름에 익숙해졌는데 왜 굳이 새 이름을 붙여야 하느냐고 불만을 표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완경'뿐 아니라 '벙어리 장갑' 대신 '손모아 장갑', '반팔 옷' 대신 '반소매 옷'* 등 익숙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명칭을, 아무에게도 해롭지 않고 기존 표현보다 적확한 표현으로 바꾸는 일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배려다. 무엇보다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이며, 사회적인 속성을 지닌다. 불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변화 직후에는 낯설고 때로 불편할지라도, 역사적 흐름과 사회적 통념에 응하는 새 이름은 빠르게 뿌리를 내린다. 최근 한 보드게임 번역 시 '완경' 단어를 사용해 논란이 되기도 했으나, 해당 게임을 수입한 코리안보드게임즈에서 공식 입장문을 통해 "세상의 모든 어머니와 여성들에 대한 예의로 '완경'이라는 표현을 거두지 않겠다.**"고 입장을 표한 일도 있었다.


2024년 12월 3일 내란 사태가 발발하면서, 12월 내내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지금 시국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이름을 분명히 밝힌 소수자들이다. 그동안 시위의 얼굴은 마치 불변하는 것 같았다. '대학 시절부터 운동권의 명맥을 이어온 노조 소속의 중년 남성'. 뉴스나 신문에 등장하는 운동권의 얼굴은 늘 그런 것처럼 보였다. (물론 여성과 청년은 항상 그곳에 있었다. 카메라에 담기지 못했을 뿐.)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응원봉의 물결이었고, 2030 여성의 물결이었고, 소수자의 물결이었다. 수많은 사람들 앞에 나와 발언한 용기 있는 시민들 가운데 자신을 생소한 이름으로 소개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자신을 '성소수자'라고 칭하기도 했고,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라고 칭하기도 했고, '성 노동자'라고 칭하기도 했고, '장애인'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어쩌면 그 순간을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줄도 몰랐던,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소수자들이 얼굴과 이름을 드러냈다. 의외로 사람들은 금방 낯선 이름들을 받아들였다. 그렇구나, 나와 다르고 잘 몰랐지만 이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고, 나와 뜻을 함께하여 이 추운 날 거리로 나왔구나.


알면 혐오할 수 없다는 말을 믿는다. 우물 안 개구리는 식견만 좁은 게 아니라, 개구리가 아닌 다른 존재는 모두 혐오해도 마땅한 존재로 여긴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르기 때문에, 나와 똑같이 살아 숨 쉬는 생명이라는 사실이 와닿지 않기 때문에, 죄책감 없이 돌을 던진다. 안타까운 일이다. 눈을 마주하고 대화해 보면 미워할 수 없게 될 텐데, 그럴 수 없는 사회가 된 탓이다. 이 좁은 땅에 사람은 너무 많은데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부대끼며 나와 다른 존재를 받아들일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그래서 외계인 대하듯, 아무것도 모르는 데도 자신 있게 미워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부디 낯선 이름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다름을 틀림으로 여기지 말고, 다른 채로 옆에서 같이 숨을 나눠 마셨으면 한다. 나에게는 해가 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부를 때마다 목에 가시가 돋칠 이름들을 함께 바꿔가면서. 인권은 파이 싸움이 아니다. 그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지하철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다. 나는 그동안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휠체어 장애인을 본 적이 없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미흡한 시설과 인식으로 인해 그들이 거리로 나오지 못했고, 그로 인해 목격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노인들, 무거운 짐을 끄는 사람들, 다리를 다친 사람들, 또는 별 이유 없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수많은 시민들을 보았다. 휠체어 장애인은 엘리베이터가 없으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없기에 그들에게 엘리베이터는 인권 그 자체다. 하지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된다고 해서 비장애인의 인권은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함께 늘어난다. 함께 편해진다. 약자가 살기 좋은 세상은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다. 약자의 안전망은 우리 모두의 안전망이 된다. 그러니 안심하고 그 돌을 내려놓기를. 그리고 손을 잡고 함께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 읽어보면 좋을 기사, <반팔티·결정장애…차별이란 것 아셨나요>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118932


**코리안보드게임즈, '완경 논란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입장문

https://www.koreaboardgames.com/magazine/menuDetail?boardCd=news&postNo=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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