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며 살지어다

'인간의 본능은 폭력'이라는 말

by 소정


나는 인간이 선하게 태어난다고, 인간의 영혼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고 믿는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도울 때 기쁨을 느끼고, 악을 행할 때 불편함을 느끼는 걸 보면 분명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세상이 잔혹한 이유는, 세상이 잔혹하기 때문이다. 폭력이 남아있는 한, 인간은 생존을 위해 공포라는 도구를 버리지 못한다. 두려우니 폭력을 저지르고, 폭력이 있으니 두려움을 느끼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이기적인 생존 본능과 이타적인 영혼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간다.


문화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인류에게 문명이 시작된 기점을 '치유된 대퇴골 화석'이라고 보았다. 사냥과 이동이 생존의 필수 요건이던 아득한 옛날, 폭력과 야만이 만연하던 그때, 부러진 다리뼈가 붙을 때까지 자신의 식량을 나누며 타인을 돌봤다는 것을 증명하는 화석. 그러므로 이 화석은 인간이 이기적인 생존 경쟁을 딛고 타인을 도운 이타심의 발견이었고, 영혼의 승리였다.


그렇게 문명이 시작된 후 수만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폭력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합리화를 켜켜이 쌓아 영혼의 존재마저 잊어버린 겁쟁이들이 불필요하게 큰 목소리를 낸다. 폭력이 인간의 본능이며,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면서. 하지만 여전히 모든 인간에게는 영혼이 있다.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무리 비인간적인 사람도 결국 자신을 직면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른 척 회피하고 있을 뿐이다.


평생 도망치며 산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저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멈추지 못한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느낄 죄책감이 너무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한 사람을 보면 자신의 불안을 외면하기 위해 공격성을 드러낸다. 모든 인간이 자신처럼 한심하기를 바라면서, 그가 끝내 지쳐서 무너질 때까지 끌어내리는 일에 매진한다. 그러나 누군가를 무너트리는 데 성공해도, 이런 삶을 살면 평생 행복할 수 없다. 아무리 합리화로 덮어도 영혼이 있기에 늘 불편하고 괴롭다.


사람도 물도 흐르던 길로 흐른다. 흐름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인간은 결국 영혼을 따를 때, 즉 사랑하며 살 때 비로소 행복하다. 오래 흐른 물길일수록, 오래 다닌 길일수록 깊고 단단하게 파여있을 것이다. 그래도 용기 내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기를 바란다. 방법을 잊었을지라도, 아주 깊은 곳에 묻혀있더라도, 모든 인간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사랑이 곧 영혼을 따르는 일이니까. 늦은 때란 없다. 영혼은 언제나 그들이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말

'오징어게임'이 굳이 속편을 냈다. 작품의 만듦새와 별개로, 나는 그 작품이 폭력을 합리화하는 점이 싫다. 작품 자체로도 그렇지만, 미성년자 성매매*나 음주운전, 마약 등의 범죄를 저지른 배우들을 데려다 쓰면서 면죄부 주듯 말한 감독 인터뷰**까지 보고 나니 광화문에 세운 '오징어게임' 조형물을 부디 치워달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동시에 서점에는 폭력을 거부하고 사랑을 고찰하는 한강 작가의 책들이 한 달 넘게 베스트셀러 코너를 빛내고 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전쟁으로 날마다 주검이 실려나가는 중'이라며 과도한 축하를 사양했고, 수상자 강연에서 세상의 잔혹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며 사랑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처음에는 '힙'해 보여서 책을 펼쳤지만 "읽다 보니 책의 참맛을 알게 되었다"며, 문학을 향유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봤다. 그러니 어쩌면 '오징어게임'을 재밌게 본 집단과, 『소년이 온다』를 보고 눈물 흘린 집단의 교집합이 점차 넓어지지 않을까. 그렇게 폭력과 합리화의 굴레를 벗어나 사랑을 행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 송영창 배우, 미성년자 성매매 유죄 판결

** '오징어게임' 감독 인터뷰

*** 텍스트힙, 유행 넘어 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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