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는 똑 닮았다. 우린 입매도 손도 복사한 것처럼 똑같다. 심지어는 검지에 난 점까지 같은 자리에 있다. 체형도 비슷하고, 성격까지 비슷하다. 엄마가 중학생 때 찍은 사진 속 개구진 모습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나랑 아주 판박이였다. 잘 웃고, 개그 욕심 있으면서, 썰렁해서 닭살이 돋는 '아재 개그'를 좋아한다는 점까지 닮았다. 일을 벌이고 나서는 걸 좋아하고 그걸 해낼 재주도 있으면서 혹시 너무 나대는 건 아닌지 종종 소심해지고, 욕심도 열정도 많아서 늘 뭔가를 공부한다. 파악한 걸 남이 이해하기 쉽게 가르쳐주는 재능 역시 엄마가 물려주신 선물이다. 말솜씨와 목소리도.
난 엄마와 내가 아주 다른 줄 알았다. 난 섬세하고, 엄마는 우악스럽고. 난 피해자고, 엄마는 가해자고. 그러면서도 진심으로 엄마를 사랑했다. 방법은 서툴렀다. 지금 돌이켜보니 엄마는 날 오냐오냐 키우셨다. 그래서 난 주제를 모르고 까불었다. 엄마더러 화도 많이 내고, 아주 엄마를 가르치려 들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이 관계가 아주 병들었다고 생각했다. 엄마를 떠올리면 괴롭고 아팠다. 엄마와 나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혼자만의 전투를 벌였다. 이건 나를 위한 거고, 엄마를 위한 거야. 난 노력하고 있어. 엄만 내 마음을 몰라주지만, 언젠가는 알아줄 거야. 아주 오랫동안 그랬다.
그러다 일단 전투를 중단하기로 했다. 엄마의 사정은 모르겠고, 스스로의 안위가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계속할 기력도 희망도 없었다. 내 마음에서 엄마를 좀 덜어내려고 했다. 엄마를 덜 사랑하자고 다짐했다. 엄마를 사랑하는 일이 나에게 고통이 되니, 나는 나를 지켜야 한다면서. 엄마도 언젠간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하면서. 내 안에는 엄마를 향한 아주 깊은 분노가 있었다. 그럴듯한 한 서린 이유도 있었다. 엄마가 내 편이 되어주지 못한 그 순간을 되새기고 또 되새기면서 분노에 합당한 이유를 댔다. 그 분노가 나까지 삼키고 태우면서 나라는 토양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는 줄도 몰랐다. 그때 내지 못한 화를 이제라도 내는 게 날 위한 일인 줄 알았다.
저한테 엄마 얘기 다 안 해주셔도 돼요. 이모에게 그랬다. 동시에 아빠한테는, 그동안 한 번도 한 적 없던 얘길 털어놨다. 나 사실 엄마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 울음이 툭 터져 나왔다. 댐이 무너지듯, 눈물이 쏟아졌다. 이제 적당한 거리를 찾았나 보다, 그 분노로부터 벗어났나 보다 했다. 물론 오랜 감정의 응어리가 쉽게 사라지진 못했다. 높은 울타리를 두르고 접근근지 팻말을 꽂아둔 채 관리되었을 뿐, 뿌리 뽑을 수는 없었다. 엄마를 떠올리면 마음이 어려웠다. 다정한 모녀의 모습을 보면, 뱃속에서 커다란 고래 같은 게 울렁거리는 게 느껴졌다. 그래도 전보다 훨씬 나았다. 내 마음속 대지는 상상 이상으로 넓었다. 내가 한 곳만 뚫어져라 바라보며 살아서, 넓은 줄 모르고 좁게 썼다. 비로소 천천히 둘러보고, 고칠 곳은 손을 좀 보고, 쾌적하고 포근한 것들로 채우면서 공간을 가꿨다.
그러다 얼마 전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만나서 저녁을 먹자는 산뜻한 연락이었다. 나는 덤덤하게 승낙했다. 약속 전날 밤엔 잠이 도저히 오질 않아서 거의 밤을 새웠다. 품 들이지 않아야지 했는데, 동선을 고려해 엄마 취향에 맞는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아 예약해 두고 태연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 어때? 괜찮은 것 같으면 예약하고." 겨울이니까 걷기엔 좀 춥겠지 하고 식당 근처에서 제일 괜찮은 카페도 찾아두었다. 그러고도 좀 아쉬워서, 약간 걸어야 하는 위치지만 엄마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예쁜 카페도 하나 더 찾아뒀다. 이건 따로 물어보진 않았다. 공들인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엄마와 마주한 순간, 신기하게 저 멀리 있는 엄마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고 주위를 오가는 사람들이 흐려졌다. 영화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운명적 장면처럼, 엄마만 보였다. 꽤 오랜만에 보는 엄마였다. 엄마는 저 멀리서부터 나를 먼저 발견하고 반갑고 애틋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몸도 표정도 굳은 채로 어색하게 다가갔다. 팔짱을 끼려는 엄마를 밀어내고 병정처럼 걸어 식당에 향했다. 종업원은 그 넓은 식당에 빈자리도 많은데 하필 사람 있는 테이블에 딱 붙여서 우릴 앉혔다. 옆 테이블도 모녀였다. 그 사람들 눈에 우리가 평범하고 화목하게 보일지 궁금했다. 이상한 경쟁심 같은 게 느껴져서 그걸 무시하려고, 엄마와의 시간에 집중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엄마한테 하고픈 말이 너무 많을 것 같은데, 나만 혼자 떠들게 될까 봐 편지를 써갔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을지 막막해서 컴퓨터 메모장에 두서없이 말을 쏟아낸 후, 전할만한 내용만 골라서 편지지에 옮겨 썼다. 쓰면서도 이 편지를 드리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 그래도 썼다. 엄마의 행복을 바라는 말로만 채우고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또 내 얘기를 썼다. 엄마는 모르는 내 근황. 얼마나 힘들었고, 어떻게 이겨냈고,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썼다. 식사를 다 마치고 카페에 도착해 편지를 건넸다.
엄마는 내 편지를 읽기 위해 안경을 꺼내 썼다. 편지를 찬찬히 읽는 엄마 얼굴이 좋아서 사진을 찍어뒀다. 엄마는 그랬구나, 힘들었겠다, 잘했다 하면서 편지 속 이야기에 답을 했다. 나는 그런 엄마 옆에 붙어 앉아서 엄마의 반응에 아주 귀를 기울이면서, 겉으로는 여유로운 척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씩 마셨다. 엄마는 현명하고 성숙한 내가 기특하다고 했다. 나는 편지를 세 장이나 써놓고, 편지에 담지 못한 말들을 더 떠들었다. 꿈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이룰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깨달은 것들에 대해서. 또, 엄마가 혹시 잊어버렸을지 모르는 엄마의 장점들에 대해서.
내가 엄마의 장점을 늘어놓자, 엄마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내가 나의 유년기를, 엄마가 내게 준 사랑과 돌봄을 이런 식으로 기억하고 있을 줄 몰랐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기억하지도 못하는 엄마의 미숙함을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더 들려줬다. "엄만 너 종이기저귀 한 번도 안 채웠어. 너 답답할까 봐. 기저귀 다 뗄 때까지 천기저귀만 썼어. 간식도 좋은 걸로 먹이고 싶어서 직접 다 만들어서 먹였어." 내가 나는 우리 이사 간 이후만 기억난다고, 그전엔 너무 어려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니 다행이라고도 했다. 그 가난하고 부끄러운 시기를 나까지 갖고 있을까 봐 걱정했다면서.
또, 내가 전학 가자마자 떡하니 반장이 된 게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나도 놀라서, 난 내 반장 욕심에 엄마가 담임 선생님 소풍 도시락까지 챙기느라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았다고, 내가 철없이 엄마 괴롭혔다 생각했는데 뭐가 고맙냐고 물었다. 엄마는 손을 저으면서 말했다. "아냐, 난 진짜 고마웠어. 너 반장 안 했으면 내가 그 낯선 도시에서 어떻게 친구를 사귀었겠니. 너 좋아하는 약국 이모도 그 반장모임에서 사귄 거야." 정말 처음 듣는 얘기였다. 물론 손도 많이 가고 힘드셨겠지만, 이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했다.
그리고 엄마가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도 들었다. 이제 막 가정마다 PC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엄마는 학원에서 제일 열심히 수업을 듣는 에이스로 활약하며 학원에서 연결해 준 일거리를 받았다고 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부담스럽다고 거절한 의사나 교수 같은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이 자기에게로 넘어오면 그냥 눈 딱 감고 해냈다고 했다. "암만 많이 배우고, '아침마당'에 나올 만큼 유명한 사람도 결국 컴퓨터 다룰 줄 모르니 부른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가르쳐드렸어." 그때 엄마는 20대 중반이었다. 엄마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지." 했고, 나는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값이 설정된 기계처럼 "아니지, 용감한 거지."하고 말을 고쳤다.
엄마는 학력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학사를 두 개나 땄고, 꾸준히 자격증을 딴 자격증 부자다. 지금도 새로운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하고 계시다고 했다. 수줍게 보여줘도 되냐고 물으시더니, 으레 두꺼운 문제집 옆에 붙어있는 핵심 요약 부록집을 꺼내 보여주셨다. 거기에는 아주 복잡한 공식이 잔뜩 쓰여있었다. "기본이 안 되어 있으니까 어려운 것보다 쉬운 문제가 더 어렵더라. 분수를 곱하고 나누는 게, 이 복잡한 공식보다 어렵게 느껴져서 그 부분은 따로 애들 배우는 강의를 보고 공부했어." 나는 엄마에게 드린 편지에서도 썼지만, 새삼 나는 평생 엄마를 사랑하고 응원하겠단 걸 알 수 있었다. 비록 엄마가 내게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나는 엄마를 사랑하는 일을 도저히 그만둘 수 없었다. 나를 사랑하게 되니 더 그랬다. 우리는 아주 닮았으니까.
한참 대화를 마친 후, 엄마는 갑자기 내게 "내가 용돈 줘도 돼?" 했다. 그때 나는 이미 경계태세가 다 풀어진 상태였고, 철없이 "응!"하고 대답했다. 돈보다 엄마가 나에게 용돈을 주는 그 상황이 좋았다. "사진 찍어도 돼?" 하고, 용돈 내민 엄마 손을 사진으로 남겨두었다. 밀린 근황도 다 나누었고, 엄마도 피곤한 기색이 보여서 슬슬 일어났다. 천천히 걸으며 엄마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속상하게 나이 들었단 소리 하지 마. 엄마 동안이잖아. 여전히 너무 이쁜데. 보이는 나이가 엄마 나이라고 생각하고 막 우겨." 엄마 타는 열차가 먼저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팔짱도 피하던 내가 먼저 팔을 벌리고 나보다 작아진 엄마를 품에 꽉 안았다.
혼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주머니가 무거웠다. 이 돈을 어떻게 쓰나. 마음도 무거웠다. 나만 아프고 힘든 줄 알 때가 훨씬 편했다. 나는 사랑받지 못했다고, 나에겐 그런 아픔이 있다고 철석같이 믿으면서 그 아픔을 이겨내는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내민 성숙한 나를 혼자 기특해하던 시기가 백번 쉬웠다. 이해하고도 미워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미워하는 일은 얼마나 쉬운지. 어른스러운 척하는 나는 얼마나 웃기는지. 엄마 앞에서 나는 영원히 어린애였다. 내가 엄마에게 상처를 참 많이 줬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은 나는, 이제 숨을 곳도 없이 부끄러운 마음을 장대비처럼 맞았다. 내가 뭐라고 엄마를 구원하려 했나. 나는 그냥 응원만 하면 됐는데. 사랑만 하면 됐는데.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다. 나는 엄마 편. 그리고 내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