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은 단점이 아니다, 좀 무거울 뿐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스스로를 미워해본 이 구역 권위자다. 자신을 미워하는 일은 타인을 미워하는 일과 같은 원리를 가지고 있다. 사실 상대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마치 그런 것처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이유 삼는다. 사람의 뇌는 단순하다.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지면 더 쉬운 것을 고른다. 자기 안에 있을 미움의 진짜 원인을 찾는 일보다, 자기 밖에서 미움을 합리화하는 이유를 지어내는 일이 훨씬 쉽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움에는 가짜 이유가 덕지덕지 붙기 마련이다.
내가 나를 미워한 100가지 가짜 이유 중 하나는 내가 너무 섬세하고 예민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말은 내 것이 아니다. 나의 가족. 나의 선생님. 나의 연인. 나의 친구. 아주 가까이에 머물다 조금은 멀어진 얼굴들이 뱉고 간 말이 내 안에 남아있었던 것 같다. 물론 사실이기도 하다. 나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예민하다는 걸 안다. 나에게는 너무 선명해서 모른 척하기 힘든 누군가의 감정이나 상황을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은 모를 때, 내가 예민하긴 한가 보다, 한다.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날부터 많은 것들이 파도가 이어지듯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나를 고쳐야 할 무언가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게 될수록, 오랜 시간 겹겹이 쌓인 오해를 걷어내고 나를 진짜로 알아갈수록,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했다. 나의 본질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먼저라는 것을 알았다. 더 나은 내가 되려면, 우선 내가 분명히 존재해야 했다. 내가 나를 알아야 했다. 나는 어디부터가 뼈고, 어디부터는 살이고, 어디부터는 조금 잘라내도 되는 부분인지도 모르고 성급하게 칼부터 대려 했었다.
지금도 아직 다 알지는 못한다. 어쩌면 평생 다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절대 잘라내서는 안 되는 곳이 어딘지는 알 것 같다. 거긴 내 뼈고, 내 영혼이고, 내가 타고 태어난 나의 기둥이었다. 남이 쉽게 지적해서도 안되고, 미워할 수도 없고, 미움을 받는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내 소중한 본질이었다. 나의 예민함은 내 본질에 속했다. 나는 예민하게 태어났고, 그래서 쉽게 공명하고, 쉽게 울고 웃는다. 그것이 타인과 나를 구분 짓는 내 가장 바깥 울타리였고, 내가 나를 나라고 느끼게 하는 내 가장 안쪽에 있는 것이었다.
그러니 더는 미워할 수가 없었다. 고쳐야 할 무언가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내가 바꾼 것은 단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그런데 그 변화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예전이라면 누가 핀잔주기 전에 방어적으로 웃으며 둘러댔을 말을 삼켰다. 핀잔줄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나 예민한 사람 맞으니까. 그런데 그 예민함이 가진 장점도 있다. 나는 내 예민함이 '무거운 프로그램' 같다. 이게 돌아가느라고 내 메모리를 다 잡아먹고, 사양 낮은 컴퓨터에선 아예 돌아가지도 않는 프로그램. 누군가는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하다고 쉽게 말하는 그런 프로그램.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탑재된 덕에 내 세상은 더 고화질로 보인다. 남들은 쉽게 지나친 뭔가를 나는 포착할 수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의 한숨, 건너편 앉은 사람의 눈빛 같은 사소한 정보들이 내게는 보였다. 내가 충분히 자라기 전까지 그 수많은 정보는 내게 폭포처럼 쏟아졌다. 다 처리하기 벅찼다. 그러니 사람 많은 곳이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 피곤함을 이해해 주는 사람도 잘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 평생 고화질의 영상이 상영될 거라면, 이걸 잘 써먹고 싶었다. 여기에 잡아먹히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하게 되어 가장 좋은 점은 내가 나의 아군이라는 것이다. 아군과의 회의는 건설적이다. 자책 같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흘러가지 않고, 해결책을 도출하는 이성적인 회의가 열린다. 회의 내용은 이런 식이다. 섬세함과 예민함은 사실 다른 건데. 섬세한 사람은 메모리가 남아나질 않아서 지치고 날카로운 상태구나. 그러면 이 섬세함을 쓰기 위해서는, 메모리를 키워야겠군. 쓸데없는 용량은 비워야겠고. 또, 이걸 쓰기로 한 건 내 선택이니 인내심도 길러야겠다. 무엇보다, 누가 함부로 내 섬세함에 태클을 걸면 나 한 명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을 꾸려 대응하겠어.
그래서 나는 체력을 기르기로 했다. 일단 잠을 충분히 자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심야 라디오를 듣고 책을 읽으며 새벽 시간의 고요함을 즐기던 나지만, 즐거움을 뒤로하고 밤 열한 시가 되면 잘 준비를 모두 마치고 무조건 침대에 들어간다. 그리고 밤 열두 시가 되면 자동으로 불이 모두 꺼지고, 핸드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는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간단하게라도 아침밥을 꼭 먹는다. 비록 붐비는 지하철 안이지만, 업무에 관련된 뉴스레터를 매일 한 편씩 꼭 읽는다. 커피는 되도록 먹지 않지만, 일부러 너무 참지도 않는다. 쉴 때는 제대로 쉰다. 해야 하는 것은 바로 한다. 불필요한 에너지는 삼간다.
이 모든 약속을 지난 한 달간 매일 지켰다. 하루도 빼먹지 않았다. 불필요한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고민인 '나 오늘 잘했나?', '오늘 타인과의 관계는 어땠지?'에 대해 퇴근길에 회고록을 작성하고, 지하철에서 내리면서 딱 덮었다. 물리적으로 생각을 글에 옮겨두고 머리를 비웠는데, 그게 아주 유익했다. 불필요한 생각이 가시화되니 마음 고생할 일도, 지인에게 하소연할 일도 줄었다. 퇴근 후에는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양질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일도 인간관계도 더 잘 풀렸다. 힘을 좀 빼고 꾸준히 유지하니, 나에게 탑재된 프로그램이 드디어 빛을 보기 시작한 거다.
물론 여전히 오래된 습관이 불쑥 틈새를 파고드는 날도 있다. 면역력이 낮아지면 감기에 걸리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타인을 위한 노력도, 잠깐의 암기로 습득한 지식도 아닌, 스스로 얻은 진리에는 탄력성이 있다. 절대 잃어버릴 수 없다. 그러니 괜찮다. 하루쯤 흔들려도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고화질 사람들이 스스로의 섬세함을 탓하지 않고 잘 써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들이 아직 그 가치를 몰라도 스스로만큼은 그 가치를 알아주었으면. 그리고, 잘 먹고 잘 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