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상을 지나며

by 소정


우리 동네에는 성당이 있다. 성당 앞 작은 정원, 수풀 속에 서있는 마리아상을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 새라 짧게 흘깃 쳐다보고 인사도 없이 지나다니는 게 나의 일상이다. 복도에서 마주친 선생님을 모른 척한 학생처럼 마음이 찔린다. 우리 외가댁은 모두 성당에 다니시고, 외할머니께서는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다른 노인을 돕기 위해 늘 봉사를 하고 계시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는 그가 세례 받을 수 있도록 열심히 도우셨고, 할아버지는 멋진 세례명을 품고 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러기를 참 잘하셨노라고 이야기 나누는 이모들의 말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할아버지의 영혼이 어느 따스한 품 안에, 권속 있는 누군가의 보살핌 아래에 계실 것이라 믿으면 어쩐지 마음이 놓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종교를 갖고 싶어 했다. 뭔가를 철석같이 믿고 따르면서 불안을 잠재우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교리도 나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전도사 선생님은 내가 자신을 놀리려 드는 줄 알고 화를 낸 적도 있다. 억울했지만 그분의 마음도 이해가 됐다. 타인의 믿음을 조롱거리로 삼는 짓궂은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나를 믿게 해 줄 무언가를 바랐다. 성당에도, 교회에도, 절에도 가보았다. 여전히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지만,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돌봐주신다고 생각하니 성당을 지날 때마다 마음에 떨림이 있었다. 믿음을 갖고 성당에 다녀야 하는데. 교리 공부를 듣고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외할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실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미루고 피해 다니기만 했다.


일상은 반복됐다. 어느 퇴근길, 나는 여지없이 마리아상을 지나갈 참이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기도가 하고 싶었다. 지금 우뚝 멈춰 서서 성호를 긋고 마리아상에 대고 정중한 인사를 드리고,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 안부를 여쭙고 싶었다. 하지만 부끄럽다는 이유로 어색하게 마리아상의 눈을 피한 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리아상을 떠나 집으로 향하는 길. 나는 방금 느낀 감정을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왜 기도를 하고 싶었을까. 그러다 문득 깨닫게 됐다. 나는 지저분하고 낮은 곳으로 흐르려는 마음을 붙잡아 깨끗이 하고 싶었다는 걸. 그리고 알았다. 신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누구나 신을 품을 수 있구나. 우리는 신을 마음에 품기 위해 기도하고 수행하는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됐다. 신이란 곧 진리이므로, 신을 마음에 품고 오랜 시간 수련하고 깨달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 인간보다 신의 면모가 더 많이 자리하고, 그런 삶을 보고 배우기 위해 성인이나 보살이라 부르며 칭송하는 거구나. 그러나 그들이 곧 신은 아니다. 많은 종교에서 '신은 하나'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우리가 칭송하는 것은 진리와, 진리를 따르기 위해 어려움을 감내한 청렴함이지, 그것을 담은 그릇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에 담겨있든 진리의 가치는 변하지 않지만, 달을 보라고 하니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것처럼, 그릇을 바라보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자신을 신이라 칭하는 사람들 역시 어리석겠다. 마음에 신을 품으면 품을수록 그렇게 말할 수 없을 테니까. 그 얼마나 '인간적인' 행위인지.


세상의 진리가 유일한 것이라면, 어떤 길을 따라가든 같은 곳으로 통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로소 성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중학교 때 친구들을 따라 간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할 때는, 내가 알고 싶은 건 신인데 왜 신을 믿은 사람들, 예수의 아들들과 제자들의 족보와 역사를 알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건 원리를 깨닫기 위해 문제를 풀듯, 신을 품기 위해 앞서 걸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배우는 거였나 보다. 사람들은 신을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구나. 지금 이런 깨달음을 갖고, 내 그릇에 담겨있던 것을 비워 자리를 만들어두고, 성당에 가서 수녀님들께 가르침을 받는다면 나는 그 자리에 무엇을 담게 될까.


이 깨달음을 옳다 하실까? 내 마음에도 신이 깃들 수 있을까? 내가 이제는 마리아상을 지나는 길에 그를 모른척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게 되고, 내 마음에 집중하여 잠시 멈춰서 기도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될까? 옳고 어려운 것으로부터 도망친 대가로 느꼈던 죄책감을 덜 수 있을까? 거리에서,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남몰래 타인을 미워하고, 욕심을 내고, 못된 마음을 품는 일을 그만둘 수 있게 될까? 해야 하는 일을 함으로써 부끄러움을 덜 수 있을까? 우리 동네 성당 청년부 교리공부반은 매주 수요일 저녁. 교중미사는 일요일 오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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