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돌보기 연습

by 소정


아무 소음도 시선도 없이 혼자 고요한 방 안에 오도카니 있으면, 나는 나와 낯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가족이나 친구일지라도 의외로 서로를 알지 못하는 것처럼, 나는 나면서 나를 잘 모른다. 나와의 관계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다. 내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내가 타인처럼 다를 때 놀랐던 일을 계기로, 나를 마비시켜 두었던 술과 소음, 게임, 짤막하고 자극적인 영상들을 하나 둘 걷어나갔다. 나를 좀 만나기 위해서였다. 취해야만, 여럿 속에 묻혀야만 놀던 친구와 단 둘이 목욕탕에 간 것처럼 어색하고 심심한 시간이 쌓였다. 심심해지니 자연스럽게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됐다. 그게 나의 자연스러운 생태인 듯했다. 글을 쓰는 나는, 도파민 중독에 맥을 못 추고 숨어있던 나였다.


외계인과 소통하듯 더듬더듬, 내 속에 도대체 뭐가 있는 건지 들여다보는 일에도 연습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감시자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지나친 교훈으로 마무리되거나, 자기 연민으로 흘러가 축축하고 재미없는 글이 되기도 했다. 쓰다가 취한 문장은 아까워도 벅벅 지웠다. 마음속에 있던 문장들을 어렵게 꺼내놓다 보면 보여주기 위해 지어낸 문장이 어울리지 못하고 둥둥 떠다녔기 때문에, 그런 문장을 지우는 일이 점차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속에 있는 말을 꺼내는 일은 콱 막힌 걸 뚫어내는 것 같기도 하고, 안경 없이 눈살을 찌푸리고 작은 글씨를 읽는 것 같기도 했다. 진이 빠지도록 속엣말을 꺼내고 나면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후련했다.


나는 심한 운동부족이라 근육량 적은 것을 농담 삼을 정도였다. 콜라를 즐겨 먹고, 스트레칭도 없이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게임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슨 계기였는지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엉망으로 운동해도 되나 했다. 그러다 뭐, 누구 보는 사람도 없는데 어떠냐 하고 내 마음대로 운동을 했다.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돈도 들지 않았다. 집에 5천 원짜리 요가매트를 펼쳐두고, 무료 운동 어플이 알려주는 대로 운동을 했다. 부족하더라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아무도 나를 보고 판단하지 않았다. 나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했다. 외면하고 있었던 일을 해치웠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대단한 운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귀찮음도 덜 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꼬박 빼먹지 않고 엉터리 운동을 했다.


체력이 좋아졌다.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매일 운동하는 습관이 생겼다. 오늘은 하체 위주로 이런 동작들을, 이 정도 양으로, 이 순서로 해야지. 단 5분이라도 좋으니 하루도 빼먹지 말자는 목표로 시작했기에, 여행에 가서도 잠깐이라도 했다. 그런 내가 좋았다. 이 선택을 통해 건강해지는 게 느껴지니 좋았다. 내 몸을 점점 잘 알게 되었다. 내 몸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니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숨통이 트였다. 타인의 평가에 너무 큰 에너지를 쏟고 있었다 보니, 그 공백이 주는 여유가 상당했다. 나를 사랑한다는 건, 나를 해치는 행동까지도 모두 수용하는 게 아니라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끄는 것이란 걸 그때 배웠다.


한강 작가의 단편 소설인 <철길을 흐르는 강>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사람을 냉혹하고 비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주 간단해. 몇십 년이 걸릴 것 같지? 최소한 오륙 년은 걸릴 것 같지? 그렇지 않아. 이삼 년이면, 빠르면 육 개월이면..... 사람에 따라 서는 집중적으로 두세 달이면 끝나. 어떻게 하느냐면, 그를 바쁘게 하는 거야. 당장이라도 수십 년 동안의 잠에 곯아떨어지고 싶어 할 만큼 피로하게 하고, 그러나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게 하는 거야, 쉬더라도 고통스러울 만큼 아주 조금만 쉬게 하고,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끊임없이 굴욕 당하게 하고, 자신을 미워하게 하는 거야. 그렇게 수백만의 불행을 만들어내는 도시, 수백만의 피로한 인간들을 뱉어내는 도시에 대한 영화야. 제목은 ‘서울의 겨울’이라고 붙이겠어. 겨울뿐인 도시...... 내가 목숨을 걸고 사랑하려 했던 도시를 위한 영화야.


나는 이 글을 보고 뜨끔, 했다. 서울에서 혼자 돈을 벌고 인파 속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찔리면서 조금씩 냉혹하고 비정한, 마음이 삭막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음을 돌보지 않는 사이, 조각글조차 쓰지 않고 일에 매달려있는 사이에. 정말 겨우 두세 달 사이에, 다른 사람처럼 변한 내가 낯설고 겁이 났다. 누군가는 마음이 삭막해지는 이런 일을 '철이 든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남들만큼 비정해지는 게 사회성이고 철이라면 난 철없이 살고 싶다.


그날로 집에 돌아와 거울에 이런 글을 썼다.

- 친절했나요?

- 성실했나요?

- 나를 돌보고 있나요?(마음, 몸, 집.)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기 위해 귀찮음을 이겨내고 원래 있던 곳에서 벗어나는 일이 주는 상쾌한 만족감. 처음에는 어려울지라도, 아주 조금씩이라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깨닫게 된다. 원래 머무르던 곳이 지금 서 있는 자리보다 썩 좋지 못했단 걸. 변화를 거부하는 일은 나를 진창에 버려두는 일이라는 걸. 모두가 행복해지고 싶다고 한다. 또, 행복은 마음먹기 달렸다고도 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 마음을 돌보는 것이 삶의 궁극적인 목표라면, 매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속엣말을 꺼내는 일, 그러니까 글을 쓰는 일을 해야만 한다. 운동과 마찬가지다. 단 5분이라도, 정말 흉내만이라도, 실행한 하루와 그렇지 않은 하루는 다르다. 0과 0.1은 분명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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