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하고 멋없어서 좋아해

by 소정



이상하게 눈에 띄는 모든 콘텐츠가 하나의 이야기를 전해줄 때가 있다. 몸이 콕 집어 무슨 음식을 부르는 느낌과 비슷하다. 임산부가 철에 맞지 않는 과일을 먹고 싶어 하는 것처럼, 몸에서 그걸 막 원한다. 최근 내 눈에는 삶에 대한 생각 하나가 흘러들어오고 있다. 그게 지금 내 생존에 필요한 모양이다.


책을 샀다. '살림 비용'이라는 수필집으로, 영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 데버라 리비가 쓴 것이다. 그는 여러 유명한 작품상에 후보로 올랐지만, 책을 통해 엿본 그의 삶은 소박할 따름이다. 남편과의 이혼 후 좁은 아파트로 이사한 그는, 딸들과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글을 쓴다. 집안에 제대로 글 쓸 공간이 없자 낡은 헛간을 구해 그곳에서 글을 쓰고, 집과 헛간을 전기자전거로 오간다. 작품의 영화화를 논하기 위해 대단한 분들과의 미팅 자리에 참석하지만, 미팅에서 뱉은 스스로의 말은 영 맘에 들지 않고, 나오고서야 마주한 거울 속엔 미처 떼지 못한 진흙 묻은 나뭇잎이 머리카락에 붙어있다. '죽은 벌레가 붙지 않길 다행이지!' 그는 나뭇잎과 함께 걱정을 툴툴 털어버리고, 빨간색 드레스 차림으로 전기자전거를 타고 파티에 간다. 그리고는 조금의 근심도 없는 사람처럼 춤을 춘다.


영화를 봤다. 제목은 '퍼펙트데이즈'. 완벽한 날들. 주인공은 이른 새벽, 비질 소리에 눈을 뜬다. 이부자리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양치와 면도를 하고, 화분을 살뜰히 보살핀 후, 걸어둔 유니폼을 입고 집을 나선다. 그의 아침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그는 자기 자신을 안다.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 쫓고, 싸우고, 욕심을 내기보다는 손에 들어오는 만큼만 쥐고, 그 아름다움을 지켜볼 줄 안다. 영화 내내 그의 식사는 가볍다. 거르지는 않지만, 너무 많은 양을 먹거나 화려한 음식을 먹지 않는다. 그의 삶에는 언제나 음악과 책이 있고, 자연이 있다. 그는 공중화장실 청소라는 고된 일 속에서도 항상 몸과 마음을 반듯이 하고, 자주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의 모양새, '코모레비'를 본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필름 카메라에 담는다. 말은 아끼지만, 웃음은 아끼지 않는다. 많은 걸 가지지는 못했지만, 가진 것을 나눈다.


마음속에 뭉툭한 회오리가 조금씩 생겨날 때 그 모양새를 들여다보고 자세히, 정확히 표현하는 일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나는 이것들을 보고 무언가를 느꼈지만 그걸 어떤 언어로 표현해야 할지 막막함을 느꼈다. 영화 중간 어느 장면에서 갑자기 눈물이 투둑 하고 떨어졌을 때에도, 이 눈물이 왜 나오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 감정을 몽타주 그리듯, 기억이 더 휘발되기 전에 갈겨써두고, 소화가 될 수 있도록 자꾸만 곱씹었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어쩌면 이런 말은 아니었을까. 죽을 각오로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게, 실은 나를 돌보고 삶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보다 못할지도 모른다. 죽을 각오, 누가 원하기나 했던가? 잠이나 잘 자고, 밥이나 잘 먹으라고. 삶을 사랑하라고. 짧은 찰나 스쳐 지나가는 아름다움과 행복을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도록, 자주 하늘을 올려다 보고, 자주 웃으라고.


삶은 원래 누구에게나 다 이렇게 질척거리고, 습하고, 끈적하게 살갗에 들러붙어 고결할 수가 없는 거라고. 그냥 원래가 그렇다고. 그렇기 때문에 삶이 마냥 아름답다는 건 거짓말이다. 살아가는 일은 힘들다. 고된 일은 그냥 고된 일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그 삶을 어떤 마음으로 지나오는지에 달렸다. 어떤 마음을 갖고 그 지저분한 진흙탕 같은, 좀처럼 품위를 지킬 수 없는 늪을 건너가야 하는지는 너에게 달려 있어. 네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네 삶의 아름다움은 오로지 너에게 달렸어. 그러니 결국 그 삶의 모든 구석이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어? 네가 너를 아는데. 네가 너를 돌보는데.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말이야. 너무 완벽하려 하지 마. 너무 아름다우려 하지 말고. 원래 삶이란 게 그렇게 초라하고 구질구질해.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 웃음을 짓고, 네 영혼을 빛내줄 선택을 이어나가. 그게 곧 네가 될 거야. 그 모든 선택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반드시 너를 구원해 줄 거야.


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 그 말에 나는 먼 길을 돌아 고단한 여행을 끝내고 마침내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어깨에 힘을 빼고, 안도의 숨을 코로 깊게 내뱉고, 나를 안아주었다. 그래, 이게 필요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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