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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Oct 24. 2024

올해의 기쁨, 유도

2023 마우스 북페어 앤솔로지 <올해의 기쁨 혹은 슬픔> 中


유도를 배우고 있다. 내가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올림픽 경기를 보며 환호했을 뿐,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도복이 매번 흐트러지는데도 계속해서 옷매무새를 고치는 선수들의 모습이 갈고닦은 마음까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직접 해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몇 년이 지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올해 가을, 나는 새로 시작할 운동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누군가 유도를 하며 좋았던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생각이 단순해져서 좋다.’ 생각이 너무 많은 탓에 머릿속이 발 디딜 틈 없는 정글 같았던 나에게는 그 말이 다른 어떤 말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늘 멋지다고 생각했던 그 운동, 직접 하는 건 왜 안 되겠어? 나는 용기를 내 유도관에 전화를 걸었다.


유도가 시작됐다. 온 세상이 내가 결심하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모든 게 수월했다. 운 좋게 집 근처에 쾌적한 유도관이 있었다. 게다가 나 말고도 여자 관원들이 많은 편이었다. 기뻤다. 소속한 집단에서 내 성별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편안했다. 몸에 꼭 맞는 도복을 맞췄다. 며칠 후 내 이름 석자가 새겨진 도복을 입고 첫 시간이 시작됐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제 도복 좀 보라고 아무나 붙잡고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 실력도 체력도 형편없었지만, 유도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내 발걸음은 날아갈 것 같았다.


한 달이 지났다. 숨이 차고 땀이 흐르도록 뛰고, 기고, 구르고, 운동을 다녀온 다음 날이면 있는 줄도 몰랐던 근육이 구석구석 쑤시고 아팠다. 저 혼자 서있을 듯 각졌던 도복은 점차 부드러워졌고, 초등학교 이후로 해본 적 없던 앞 구르기도 했다. 비가 오든 날이 춥든 묵직한 도복을 둘둘 말아 들고 유도관으로 가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한 기쁨이었다. 용기를 내 시작하면, 갈망하던 세계가 내 것이 된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애정하는 책방 '엠프티폴더스'를 통해 부산 마우스 북페어를 알게 되어, '당신의 첫 책을 만들어드립니다' 프로젝트를 통해 쓴 글입니다. 올해의 기쁨 혹은 슬픔을 주제로 정해진 분량의 글을 써내면 책으로 발간해 주신다고 해서, 2023년 가을, 유도의 매력에 빠져 옆구리만 찔러도 유도 이야기를 하던 저는 고민 없이 유도가 느끼게 해 준 기쁨에 대해 썼습니다. 


거창한 글을 써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에 완성하지 못한 글을 혼자서만 보고 넣어두곤 했는데, 글을 완성해 세상에 내보내고 책으로 받아볼 수 있게 되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책의 뒤표지에 제 글이 실린 것을 보고 쑥스럽고 뿌듯한 감정을 느끼며, 계속해서 다음 글을 쓸 용기를 얻었답니다. 


1박 2일의 부산여행이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느끼게 해 주었던, 제가 얼마나 책을 사랑하는지 느끼게 해 주었고 부비프 서점의 글 모임 분들을 만나게 해 준 마우스 북페어에 감사한 마음을 느낍니다. 

(2025 마우스 북페어에는 창작자로 참가하고 싶다는 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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