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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Mar 01. 2020

진정한 구원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서로 도울 거니까요.

수요일부터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코로나 19의 여파였다. 이참에 좀 여유롭게 일을 할 수 있겠다 싶었던 기대와 달리 재택근무는 총성 없는 전쟁 같았다. 언제 사방에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고요한 들판을 가로지르는 병사처럼 밀려드는 메신저와 메일에 충실히 답하고 나면 해가 훌쩍 저물어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거나 커피를 마시러 사내 가페에 가는 일 없이 동선이라곤 화장실과 책상을 오가는 것뿐인데도 1000m 오래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실상이 이러니 답답함이 차올랐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겠다는 주말 계획도 자발적일 때가 좋았다. 토요일에도 꼼짝없이 집에 갇혀있으니 이건 뭐 올드보이 최민식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무기력한 토요일 오후였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다가 이러다 이불 위에 녹아져 버리겠다 싶을 즈음 겨우 몸을 일으켜 청소기를 돌렸다. 억지로 몸을 움직이니 단순한 뇌는 ‘아 얘가 청소를 좋아하는구나!’ 싶었는지 물걸레질도 하게 만들었다. 축축해진 바닥을 그냥 둘 수가 없어서 내친김에 마른 걸레질도 했다. 손을 씻으려고 화장실에 갔는데 곳곳에 낀 물때들이 보였다. 팔을 걷어붙이고 수세미를 들었다. 곰팡이들과 물때들을 벅벅 닦으며 답답해진 속이 조금씩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엄마였다. 뭐하냐고 묻길래 할 게 없어 청소를 한다고 답했다. 얘가 할 게 없으니 하다 하다 청소를 다 하는구나 싶었는지 조금 어이없어하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잠깐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신천지를 가열차게 욕하다가 마스크 이야기로 넘어왔다. ‘마침 울릉도에 마스크가 들어왔더라. 사람들이 그걸 살려고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더라. 무슨 마스크가 3천 원씩이나 하더라.’ 엄마는 특히 ‘3천 원씩’을 말할 때 유독 기가 찬다는 듯 힘을 주어 말했다. 이어서 경기도는 신천지 신도들도 많다고 하고, 마스크도 안 판다 더라며 겨우 구한 마스크들을 부쳐준다길래 우리는 면 마스크 잘 쓰고 있다고 괜찮으니 엄마부터 잘 챙기라고 말렸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신은 마스크가 영 불편해 스카프에 비닐봉지를 덧씌워 잘 쓰고 있다며 걱정 말고 잘 받기나 하라고 했다. 무슨 말을 해도 헛수고일 게 뻔해서 나는 양보하고 말았다. 양보는 내가 했는데 이익은 내가 얻고 마는 불리한 싸움에서 도통 이길 자신이 없다. 이렇게 져주는 게 효도라니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화제를 돌렸다.


이제 3월이다. 한창 봄놀이를 떠날 관광객이 울릉도로 놀러 올 시기인데 갑작스러운 바이러스 때문에 일 년 장사의 시장을 준비하던 섬사람들의 맥이 다 빠져버렸다. 엄마한테 타격이 없겠냐고 묻자 벌써 목소리가 한풀 꺾인다. 관광객 손님은 고사하고 그나마 있던 지역 손님들도 회식이 거의 금지되다시피 하는 판국이라 발길이 뚝 끊긴 것이다. 비수기인 겨울에 쉬었던 아주머니 두 분이 3월부터 출근하기로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니 인건비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단다. 그렇다고 아주머니들을 다 쉬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인 게 어려운 사정을 뻔히 다 알면서 그걸 모른 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두 분께 찾아가서 원래 드리던 월급만큼 챙겨드리기가 힘들 것 같아 미안하다고,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면서 이 상황을 버텨보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아주머니들은 사실 둘 중 한 명은 그만둬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하셨단다. 그 편이 편하니까. 하지만 모두가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아주머니들도 각자의 희생을 감내하고 함께 버텨보자고 말씀하셨다. 역시 어려운 길이 옳은 길이고, 함께 하는 길이 지혜로운 길인가 보다. 


엄마랑은 오랜만에 실컷 웃으며 떠들었지만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진다. 확진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사망자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가 바이러스 하나에 들썩이는 가운데 순진하게 마냥 낙관적인 상황만을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남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고 외출을 할 때마다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대구에 의료진이 부족하다는 소식에 자발적으로 달려가 손길을 내밀고, 또 그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선뜻 기부하고,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불철주야 일하고, 나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함께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이다. 서로가 서로의 구원이 되어주는 지금,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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