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나쁜 버릇을 이제는 정말 고쳐야겠다.
"나는 니가 이건 꼭 고쳤으면 좋겠어. 제발 말 좀 해."
며칠 전 친구와 조금 지독하게 싸웠다. 친구가 내게 장난처럼 건넨 말이 내 심기를 건드렸고 나는 그 순간부터 묵언수행에 들어갔다. 대화를 단절한 것이다. 이런 식의 침묵을 오래 견뎌왔던 그는 이내 폭발했다. 제발 그 나쁜 버릇 좀 고치라고. 그냥 말을 하라고.
화가 날 때마다 말을 하지 않는 건 내 오랜 나쁜 습관 중 하나였다. 독수리들과 처음 유럽 여행을 갔을 때도 길을 찾느라 쩔쩔매는 나와 달리 밤거리 구경에 신이 난 친구들에게 뿔이 나서 돌아오는 길 내내 한마디 말도 없이 싸늘하게 숙소로 돌아왔었다. 처음 보는 내 모습에 당황한 친구들이 먼저 말을 건넸고 그제야 겨우 대화를 트기 시작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화를 내기 위해서 대화를 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나름대로는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막 나가려는 말을 막기 위해 입을 닫고 있었던 거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심통을 부리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싫어서 상대방에게 화가 난 만큼 나 스스로에게도 당황스러워 혼란에 빠진 상태인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도 내 입장인 것이고, 상대방의 눈으로 보자면 나는 상대방과 아무런 대화도 나누고 싶지 않다는 듯 빗장을 걸어 잠근 뿔난 소일뿐이다.
왜 말을 하지 않을까. 왜 화가 난 것을 표현하지 못한 걸까. 친구가 '나쁜 버릇 좀 고쳐라!'라고 말하는 순간, 이제는 진짜 이 나쁜 놈의 버릇의 근원을 찾아 싹을 잘라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내 기억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갔다. 여러 장면들이 스쳐 지나간다. 화가 많은 어른들 사이에서 눈치보기 바쁜 어린이, 내 어깨를 붙들고 이해를 바라는 눈빛을 하는 그들에게 고개만 끄덕거리는 꼬마.
어른들은 그런 나를 칭찬한답시고 '애가 참 어른스럽네'라고 말했다. 그 칭찬은 내 감정에 족쇄를 채웠다. 어른스러운 아이라는 멍에가 씌었다. 어른들의 무례와 몰상식을 웃음으로 대처해야 했던 아이. 울음이 나올라치면 늘 구석진 곳을 찾아갔던 아이, 무언가 갖고 싶어도 차마 사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애처로운 눈빛으로만 원하는 걸 바라보다가 이내 참고 돌아서야 했던 아이. 잘 참는 아이에게 주어진 어른스러움의 영광은 그때까지였다. 잘 참지도, 그렇다고 삼켜내지도 못한 어른으로 자란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기억의 되감기 버튼을 누른 덕분에 검은 유산을 손에 쥐었다. 문제의 원인을 찾았으니 해결할 차례다. 이제 나는 나의 감정에게, 욕망에게 입을 붙여줄 것이다. 그동안 답답한 정승처럼 말을 하지 않았던 나를 너그럽게 이해해준 이들에게 새삼 고맙다. '나쁜 버릇 좀 고치라'라고 소리쳐준 친구에게도 감사하다. 신생아의 입을 단 나의 속 좁은 참을성은 이제 옹알이를 하기 시작할 거다. 스물아홉 먹고 고친다기에는 너무나 부끄러운 버릇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어른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