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 탈덕합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베들레헴에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이 아니라 아삭한 콩나물이 들어간 라볶이로 유명했던 울릉중학교 뒤편 베들레헴 분식집이다. 그날도 친구들과 어김없이 베들레헴에 들러 산처럼 올려진 라볶이를 격파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가게 한편에 있던 TV에서 '너의 결혼식'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왔다. 멀미를 유발하는 화려한 카메라 워킹과 온 감정을 미간에 몰빵한 가차 없는 연기력을 뚫고 나오는 여섯 남자의 꽃미모에 무방비 상태로 라볶이를 먹고 있던 나는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덕통 사고'였다.
단지 잘생긴 미모를 갖고 있는 아이돌 가수였다면 이만큼 빠지지도 않았을 거다. 그들은 너무하게 웃겼다. 어쩌면 미친놈들이 아닐까 싶을 만큼 웃겼다. 예능에 떴다 하면 화제가 되는 건 물론이고, 아예 자기들끼리 놀고먹는 예능 프로그램도 생겼다. 아이돌에 관심 없는 내 친구들까지 '걔네는 진짜 웃기더라.'하고 한 마디 던지게 만들었고, 나는 그때마다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며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곤 했다.
그러니까 어린 내 눈에 이들은 정말 말이 안 되는 인류였던 거다. 잘생겼는데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귀엽고 웃긴데 운동까지 잘하는. 이런 인류를 처음 본 거다. 신인류를 발견한 기쁨으로 널뛰는 아드레날린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의 마음이 이런 것이었을까?
사랑에 빠진 자는 그 대상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알고 싶은 충동에 빠진다. 내 몸통 2개를 이어 붙인 부피쯤 되는 컴퓨터 앞에 앉아 가열차게 신상조사를 시작했다. 본명부터 출생연월일, 가족관계, 혈액형, 별자리, 출신 학교, 이상형까지.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모든 정보를 끌어모아 노트에 받아 적었다. 학교 시험 문제 하나 틀리는 것보다 내 오빠들에 관해 모르는 게 더 자존심이 상했다. 5초 안에 멤버들 본명 말하기, 생년월일 순서대로 이름 부르기 따위의 퀴즈를 셀프로 내면서 자신을 단련시켰다.
서울로부터 족히 300km가 넘는 거리의 작은 섬에 살고 있던 나로서는 이게 최선의 덕질이었다. 콘서트, 팬사인회, 공방은 그저 꿈같은 이야기였다. 각종 팬페이지를 들락날락하며 존귀한 오빠님들의 음성과 용안이 담긴 짤들을 모으고, 포토샵에 능한 언니들이 새 학기마다 올려주는 이름표를 인쇄해서 책상, 교과서, 필통, 볼펜을 도배하는 것. 어쩌다 한번 포항에 나가는 날이면 팬시점에 들러 명찰을 사고, 음반매장에 들러 CD와 함께 지관통에 포스터를 고이 담아와 머리맡에 붙여두는 것. 부지런히 팬픽의 txt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PMP에 고이 넣어 시도 때도 없이 읽으며 웃다가 울고, 한정판 제본집을 구하기 위해 날밤을 새는 것. 이 수고로운 일들로 수놓아진 모든 순간이 눈부셨다.
처음 상경한 후 콘서트에 갔던 날도 생생하다. 일대일 소개팅도 아닌데 손이 덜덜 떨렸다. 지하철을 타는데 다른 차원의 세계로 가는 것처럼 기분이 이상야릇했다. 아직 노래는 나오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몸이 들썩거렸고, 주황색 응원봉을 든 손에 땀이 가득했다. 웅장한 무대와 쩌렁쩌렁한 조명들, 배경음악과 팬들의 환호성으로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 그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모든 것이 한순간에 페이드 아웃되었다. '살아있길 잘했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맛을 한번 본 후로는 매년 3월마다 콘서트에 발도장을 찍었다. 목이 찢어져라 떼창을 하고, 환호를 보내고, 같이 웃고, 또 울면서 내년을 기약했다. 그들이 데뷔한 3월마다 함께 모여 우리가 만들어온 시간을 함께 축하하는 것,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컴백할 때마다 1위 하는 가수가 아니어도, 격한 춤을 출 때마다 벅차 보이는 티가 역력해도 좋았다. 이것이면 족했다.
누군가는 덕질을 일방적인 사랑쯤으로 표현한다. 덕질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니가 그렇게 해봤자 걔네는 니 존재도 모른다.'였으니까. 그건 정말이지 한 번도 누군가의 진정한 팬이 되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 내가 얼마나 많은 걸 받았는데. 사춘기에 잠깐 발을 담갔던 시절,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상념에 빠졌을 때, 세상의 모든 불행을 나 혼자 뒤집어쓴 것 같았을 때, 누구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 못할 거라고 믿었을 때 나를 구원해준 것은 그들이었다. 그들의 노래가 캄캄한 밤 소리도 못 내고 이불을 앙 물고 울던 내 등을 얼마나 많이 토닥여주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웃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날에 겨우 꺼냈던 사진과 영상을 보며 얼마나 아이처럼 기뻐할 수 있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랑이었다. 비웃음의 타깃이 되기에 참으로 적절한 마음이지만 이토록 순수하게 누구를 좋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내 행복을 조금 덜어서라도 그들이 한 번 더 웃고, 한 번 힘냈으면 하는 마음을 나도 가질 수 있다는 걸 알게 해 준 사랑이었다.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너무나 많은 걸 받았다. 잊을만하면 사고를 치고, 실검에 오르곤 했지만 그들에게 받은 위로가, 웃음이 선명해서 외면하지 못했다. 서로가 서로 덕분에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는 팬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은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절이 여전히 찬란하고 애틋하지만 더 이상 그들을 당당히 좋아하는 팬일 수 없음에 이제는 놓으려고 한다. 매년 3월에 만나자는 그 약속을.
오늘 3월 24일은 내가 오랫동안 사랑해온 아이돌 가수의 데뷔 22주년이다. 오늘 이렇게 마침표를 찍어야 비로소 탈덕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6-1=0 이라며 사칙연산의 법칙까지 무시했던 신화창조 문연이, 안녕. 이제는 구오빠들이 되어버린 내 가수도 안녕. 이제 내 몫의 행복까지 건네주진 못하겠지만 어디서든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길 바랄게.
요란했던 탈덕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