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가 분명했다. 그것 외엔 설명할 단어가 없는 무너짐이었다. 허리 디스크로 몸이 무너졌고, 관계가 무너졌고, 연이어 마음도 무너져 내렸다. 연속된 붕괴에 안팎으로 일어나 정신 차릴 틈이 없었다. 아침 점심 저녁마다 끼니 대신 울음을 삼켰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힘들 수 있나 싶어서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새삼스레 그걸 왜 묻느냐고 답하는 것만 같았다. 그랬네. 10년 주기로 세상에게 버림받았네 나는. 돌아보니 10살에도 20살에도 인생을 흔드는 사건들이 크게 일어났었다. 반칙이었다. 이렇게 10년마다 한 번씩 빨래 털듯 누군가의 인생을 탈탈 털어서 물기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만큼 쥐어짜 내는 건 너무 불공평했다. 술이고 담배고 몸에 나쁜 건 다 찾아와서 털어 넣고 싶었다. “그걸로는 부족하겠다 그냥 마약을 해야겠어.” 걱정하는 친구에게 농담이랍시고 건넸는데 던진 나도 받은 친구도 허투루 받을 수 없는 말이었다. 친구는 알고 있었다. 10년 전 비슷한 상태로 세상과 맞짱 뜨던 나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는 자기 연민을 뒤집어쓴 채 잠들지 못하는 밤을 술로 지새우던 때를.
암흑을 더 큰 암흑으로 뒤덮었던, 서툴렀고 그래서 혹독했던 시기의 장면들을 떠올리자 절로 헛구역질이 났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는 안된다는 생존본능 비슷한 감정이 훅 파고들었다. 나를 살릴, 이 버림을 버틸 건강한 방법이 필요했다. 동료들에게 사정을 구해 휴가를 내고 고향으로 갔다. 선착장까지 마중 나온 엄마를 보자마자 굳었던 근육들이 다 풀려버렸다. 진짜, 진짜로 살 것 같았다. 삼시세끼 눈물 대신 엄마가 살뜰히 차려준 밥을 먹었다. 오래 앉아있으면 허리에 금세 무리가 왔기 때문에 대부분 누워있었다. 해가 어스름해질 때쯤 몸이 근질근질하면 부둣가까지 살방살방 거닐었다. 행복한 순간을 떠올릴 때 자주 배경이 되어준 곳이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진 못하겠지만 절로 미소 짓게 해주는 소중한 추억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했다. 여름 냄새와 바다 냄새가 섞인 짭조름한 청명을 오감으로 느끼며 안도했다. 든든한 밥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응원과 저녁의 선선한 바람 속에 답이 있었다. 10년 전과 다른 방식으로 균형을 찾을 수 있겠다는 믿음이 들었다. 다시 나로 살아갈 자신감을 얻었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고향에서 다시 나가는 날, 엄마는 내가 배를 타는 모습까지 보지 못하고 먹먹한 목소리를 애써 숨기며 돌아섰다. 늘 그랬다. 우리는 백 마디 말보다 많은 사랑을 담은 짧은 포옹을 나누고 헤어졌다. 들어올 때 탔던 그 배였는데 그 위에 탄 지금의 나는 다른 사람 같았다. 회복의 시작이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밤마다 걸었다. 짧게는 30분부터 길게는 2시간까지 엄마가 준 크록스 신발을 신고 부지런히 집 주변을 산책했다. 답답하다고 집에만 붙어있다간 관성에 의해 예전의 나로 돌아갈 게 뻔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이어폰을 꽂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다행히 걷기 좋은 날씨였다. 여전히 걷다가 울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또 웃었다. 이런 내 꼴이 우스워서 웃기도 했고, 노래가 좋아서 웃기도 했고, 길가에 핀 꽃이 예뻐서 웃기도 했다. 어쨌든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도 부족했다. 좀 더 근본적인 치유가 필요했다. 허리에 복대를 차고 정자세로 누워있으면서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지런히 검색했다. 양질의 인터뷰와 유튜브 영상들을 정독하고 중간중간 메모장에 기록하면서 나만의 솔루션을 정리해나갔다.
첫 번째, 명상을 시작했다. 1년 전쯤, 명상 수업을 짧게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어떤 수단으로써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그저 멋있어 보인다는 가벼운 호기심이자 새로운 경험 거리가 필요했던 거라 깊게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배우와 작가들이 마음을 다스릴 때 명상을 한다는 기사를 보고 나서는 이것이 솔루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마보 어플을 깔고 프로그램을 켜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호흡했다. 들숨과 날숨에 손가락과 발가락의 위치를 지각하는 것처럼 마음속에 뭉친 멍울들이 느껴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숨 한 번 쉬었다고 이렇게까지 될 일인가 싶었다. 샤머니즘에 빠지기 일보 직전이 아닌가 싶어서 명상의 과학적 원리를 찾아다니다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명상이 실제로 과거에 대한 불안과 미래에 대한 집착을 관장하는 뇌 부위의 자극을 낮추고, 현재에 집중하게 하는 뇌 부위를 자극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준다는 내용이었다. 명상이 세상의 고통, 불합리, 불안으로부터의 도피 수단은 아니다. 그리고 여전히 눈을 감고도 잡생각과 꼬리잡기를 한다. 하지만 명상 덕분에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마주하고, 존중하고, 잘 흘려보낼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비관하고 남을 비난하며 스스로를 옥죄는 행위에서 벗어나 내가 생각하는 나와 진짜 나 사이의 간극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중이다. 가끔은 더할 나위가 없다는 충만함이 들기도 한다. 왜 ‘지금’이 선물일 수밖에 없는지 명상을 통해 배웠다.
두 번째, 리추얼을 만들었다. 마침 허리 디스크가 차도를 보였고, 물리치료 선생님도 요가나 필라테스 운동을 권하셨다. 내 무너짐의 시작이 허리였기에 가장 먼저 쌓아 올려야 할 것도 허리였다. 몸이 막 아프기 시작했을 때 연이어 마음에도 금이 가는 걸 느끼면서 신체와 심리를 함께 돌아보고 치유하는 서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운명처럼 밑미를 만났다. <이브닝 요가x글쓰기> 지금 내게 딱 필요한 두 가지가 손을 잡고 다가온 것이다. 마지막 동아줄을 붙잡는 심정으로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돌아온 날에도 리추얼을 거르지 않았다. 온종일 긴장해서 굳어버린 등과 말린 어깨, 팽팽했던 관자놀이가 봄기운에 녹아내리는 눈처럼 가벼워지는 순간의 여유가 벅차오를 만큼 감사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나오면 반사적으로 매트를 폈다. 인센스를 피우고 아이패드로 요가 영상을 틀었다. 요가와 명상을 끝내고 난 후 찾아오는 공의 상태.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으니 글이 자유롭게 써졌다. 노트 위를 가로지르는 펜의 움직임이 경쾌했다. 책을 낸 후 한동안 펜이 무거워서 들지를 못했던 과거는 이제 안녕. 더 좋은 글을 써야만 한다는 압박에 둘러싸인 채 맞이한 글테기도 사라졌다. 비문도 많고 중복도 많았지만 솔직한 글이었다. 민낯같이 말간 글들이 좋았다. 부끄럽지 않았다. 이 재미에 푹 빠져서 일하느라 새벽 6시를 넘겨 집에 왔던 이틀을 빼고 매일 리추얼을 했다. 주말에도 부지런히 움직였다. 뭔가를 꾸준히 하는 힘을 갖게 되자 뿌듯함이 따라왔고, 그건 곧장 건강한 자존감으로 이어졌다. 말라버린 땅에 물이 차오르고 싹이 피어오르는 순간이었다. 올해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 그게 바로 리추얼이었다.
세 번째, 나를 찾아간다. 명상과 리추얼이 내게 준 숙제가 있었다. 나를 알아야 한다는 것. 30년 가까이 한 몸으로 지내왔으면서도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할 때 행복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하지 않은지, 왜 일을 하고 왜 어떤 일은 하지 않는지를 제대로 고민하고 돌아보지 않았다. 흐르는 대로 살아왔기에 흐름이 막혀버릴 때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구체적인 나를 알아야 할 타이밍이었다. 내가 살고 싶은 대로 흘러갈 길을 만들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스스로 질문했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인지.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이었으면 하는지. 언제 가장 커다란 기쁨을 느끼는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앞으로 또 어떤 걸 성취해나가고 싶은지.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내 앞에 하나둘 질문의 모종을 심었다. 성급하게 싹을 틔우려 하지 않았다. 자라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도 억지로 들추는 대신 위의 2가지 명상과 요가와 글쓰기를 하며 주변 땅을 다지고, 물을 주고, 양분도 주었다. 스멀스멀 질문의 답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더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금 더 선명한 형태와 빛깔을 드러냈을 때 탐스럽게 맺은 열매를 거뒀다. 언젠가 색이 변할 수도 있고, 모양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그건 중요치 않았다. 그때는 또 그때의 씨앗을 뿌리면 되니까. 지금 가장 나다운 결실을 얻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여러 개의 질문과 오랜 고민 끝에 얻은 답으로 내 인생의 3막 3장을 써두었다. 쉽지 않겠지만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순간까지 퇴고와 진보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 3가지 솔루션을 해내는 데 두 달이 걸렸다. 이제야 알았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게 아니라 구원받은 것임을. 몸과 관계와 마음의 무너짐을 겪었기에 이들의 상관관계를 알게 됐고, 그로부터 다시 쉽게 무너지지 않도록 단련하게 됐고, 혹여 무너지게 되더라도 건강하게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나를 제대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할 줄 알아야만 타인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것도 무너짐을 회복하는 기간 동안 알게 됐다. 나를 구원해준 나와 이 세계를 함께 이끌어준 모든 존재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낸다. 사는 동안 평생 나와 이들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삶을 내가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한 몸부림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길 것이다. 이 구원이 영원토록 이어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