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년생 이정경 씨의 지혜
68년생 이정경 씨는 우수에 찬 눈빛을 하고서 촉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70살까지는 일해야지. 몸을 움직여야 된다. 가만히 있으면 뭐하노.” 그러나 지금 운영 중인 횟집은 고된 육체노동이 집약된 곳이므로 3, 4년 정도만 더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핵심은 다음부터였다. 돈을 더 모아서 3층짜리 집을 사겠다는 것. 잠들 때면 머리맡에서 파도소리가 들리던 돌아가신 엄마의 집처럼 바다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겠다고 했다. 3층 중 1층에는 횟집보다는 손이 덜 가면서 정갈하게 만들 수 있는 요리 몇 개를 내건 식당을, 2층에는 고소한 원두향이 7080 노래 선율을 따라 퍼지는 카페를, 3층에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에 빠질 수 있는 가정집을 꾸릴 거라고 보다 구체적인 꿈을 술술 늘어놓았다. 3층 집은 딸이나 아들이 가족과 함께 왔을 때 편히 쉴 수 있게 커다란 침대가 들어갈 수 있는 방이 필수이기 때문에 지금 집보다는 조금 더 커야 한다고도 말했다. 그래야 아들딸이 오래 편하게 머물다 갈 수 있다고.
그러니 그 3층 집의 커다란 방은 내 것이기도 했다. 간만에 찾아와 작은 방에 이불을 펴고 자는 게 안쓰러웠는지 아니면 본인의 큰 집 욕심에 감동 코드를 넣고자 나를 이용한 건지는 몰라도 나는 아직 생기지도 않은 3층짜리 집의 꼭대기층, 큰 침대가 놓인 방에서 새하얀 이불을 폭닥하게 덮고 있는 것처럼 벌써 마음이 몽글거렸다. 소녀처럼 옅은 미소를 입에 띠며 야무지게 꿈을 읊조리는 이정경 씨, 그러니까 우리 엄마가 부럽기도 했다. 3층 집도 멋있고, 주름진 피부를 꿈으로 리프팅하는 것도 멋있고, 꿈을 이루려고 새벽부터 밤까지 부산하게 일하는 것도 멋있었다. 엄마는 말끝마다 ‘-싶다.’라며 조곤히 말했지만 거기엔 확신에 찬 강단이 담겨있었다. 여러 번의 담금질로 단단해진 쇠처럼 잦은 되뇌임 끝에 현실로 굳어진 듯한 꿈이 거기 있었다. 엄마가 부지런한 실천가라면 지금의 나는 상상 속에 사는 몽상가에 불과했다.
꿈을 꿔본지가 언제였더라. 대충 그려본 몇 가지는 있었는데 선명한 그림이 되지는 못했다. 빠르게 변하는 도시의 불확실성 앞에 ‘꿈’이라는 단어는 금세 증발했다. ‘지금 상상해봤자 어차피 또 바뀔 텐데.’ 꿈이 가진 당연한 변화의 낭만은 현실 속에서 거추장스런 장식에 지나지 않았다. 당장 내일도 가늠하기 힘들다는 투정이 앞서 꿈은 한 발짝 물러서야 했다. 굳이 따져 묻는다면 내 꿈은 성장이었다.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더 성장해서 깊은 통찰력과 빠른 실행력을 갖춘 더 나은 일꾼이 되는 것. 빌딩도 사람도 빽빽하게 들어선 도시에서 열심히 콩나물이 되고 싶었다. 검은 천에 덮여 더 먼 미래를 바라보지 못한 채 얼른 자라나기만을 바랐다. 다 자란 콩나물의 넥스트 스텝은 뭘까. 공기 좋고 물 좋은 양지에 옮겨져 콩나무가 되는 것? 잭과 함께 하늘 높이까지 승천하는 것? 참기름과 고춧가루에 무쳐지거나 주취자의 숙취해소제 될 뿐이다. 목표 없는 성장의 끝이 콩나물국이라니 아찔했다. 현재에 만족해도 될 만큼 잘 살고 있으면서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엄마의 꿈을 듣고 난 다음에야 정신이 들었다. 성장이란 무엇인가. 아니, 나는 무엇을 위해 성장하려고 하는가.
올해 내 인생 최고의 화두는 속도였다. 제 속력을 잃은 폭주기관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를 놓쳐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지는 장면이 간혹 머리를 스쳤다. 내가 그 꼴이 날 것만 같았기 때문일까. 몸과 정신 곳곳이 경고음을 냈다. 브레이크를 밟아야 할 타이밍이야! 다시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찾기 위해 지도를 펼쳐야 할 때다.
여기서 글을 맺은 지 3개월이 흘렀다. 8월 7일 2시 34분. 길 잃은 아이의 마음으로 이 글을 썼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새 많이 아팠고 많이 울었고 혼란스러워했고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끝내 붙들었다. 외로운 이 도시에 여전히 두 발을 딛고 살아가려는 이유, 그 욕망의 근원. 검은 천에 덮인 채 자라는 콩나물이 아니라 정확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사람이고 싶었다.
돌아보니 성장하고 싶은 이유는 명확했다. 지금 하는 일이 너무 좋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었다. 머릿속에 방대하게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고 적재적소에 꽂아 넣어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고 선보이는 일이 재미있다. 그렇게 나온 아이디어를 누군가 알아봐 주고 공감해주고 즐거워해 주는 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더 많은 사람과 이 기쁨을 나누고 싶다. 다양한 이들과 연결되어 우리가 함께 사랑하고 즐기고 기뻐하는 아이디어들을 만끽하고 싶다. 단절이 익숙해지는 세상에 익숙해지지 않고 꾸준히 유대감을 쌓고 싶다. 슬픈 건, 그리고 날 혼란스럽게 했던 건 이 일이 내 속도를 자꾸만 제어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거다.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하고 다수와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을 하면서 자주 조바심이 났다.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지, 뒤쳐지면 어쩌지, 반응이 없으면 어쩌지, 다음엔 얼마나 더 빠르게 더 잘해야 하지. 미디어와 SNS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면서 디지털 세계에 질식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 딜레마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거리다가 이제는 인정하기로 했다. 재미와 안정,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걸. 한계를 인정하고 마음을 내려놓고 즐기면서 하되 언젠가 조바심이 턱끝까지 차오를 때를 대비해 잘하고 좋아하는 또 다른 일을 고민해보는 것이 더 건강한 방법임을 알았다.
그래서 부지런히 찾고 있다. 기타도 배우고, 무용도 배우고, 글도 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더 열심히 찾으러 다녀야지.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희망적인 몇 가지 그림들이 잔잔하게 그려지고 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걸 모두 이른 다음에는 나도 엄마를 따라 바닷마을로 가련다. 어릴 적 할머니 집에서 나를 재워줬던 파도소리를 들으며, 꽃에 물 주는 걸 하루도 빼먹지 않는 엄마를 따라 하며 자연에 둘러싸여 살고 싶다.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좋겠다. 해가 떠있을 땐 차와 운동과 요리를, 해가 질 땐 술과 글과 영화를 가까이하며 남은 여생을 포근하고 지루하게 보내도 좋겠다. 그때는 또 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돈벌이가 있지 않을까?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겠지만 계획마저 없으면 더 덧없이 흐르겠지. 어떤 모양으로 살던 지금에 최선을 다하면서 또 더 나은 사람이 되길 꿈꾸면서 그것에 만족하며 사는 게 제일이라는 68년생 이정경 씨가 92년생 문연이에게 선물한 이 지혜를 평생 잊지 않아야겠다.
202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