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연이 Jan 17. 2021

해바라기는 사람을 싣고

포항에서 울릉도 집까지 가는 길



대중교통을 타고 고향에 가는 사람들은 보통 기차나 버스 시간표를 알아보기 마련이다. 하지만 울릉도가 고향인 주민들은 육지에서 집으로   기상청을 켜고 파도 높이를 확인한다.


“3m?  높긴 한데  만하겠다.”
“2m? 완전 장판이네 누워서도 가겠구만.”


시간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 포항에서 오전 9 출발하는  하나의 , 썬플라워. 오직  배만이 날씨 좋은  우리를 울릉도로 데려다 줄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217km 거리를  3시간 만에 주파하는, 울릉주민들의 영원한 애마인  이름이  썬플라워(해바라기)인지는 아는 이가 . 사실 썬플라워라는 이름의 유래를 궁금해하는 이들보다 20년이 넘게 울릉도를 오고 가는 배가 여태껏 멀쩡하게 사람을 싣고 다니는지, 멀쩡한 겉모습과 달리 찌들 대로 찌들어버린 멀미의 주범인  냄새는 도무지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썬플라워를 처음 봤던 순간은 생생하면서도 흐릿하다. 생생한 이유는 처음  배를 탔던 ,  앞에서 신나게 웃고 있는 동생과  사진이 아빠의 카메라를 거쳐 사진첩에 고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편에 시원하게 그려진 커다랗고 노란 해바라기와 깔맞춤이라도 한듯 위아래로 노란 꼬까옷을 입은  한껏 예쁜 척하는  모습이 이제는 굳이 사진을 찾지 않아도 선명히 떠오른다.

반면 흐릿한 이유는 신나게 포즈까지 잡고 사진을 찍은  배에   얼마 되지 않아 멀미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안에서 남겨진 기억이라고는 누가 속을 박박 긁어대는 듯한 고통과 그로 인해 올라온 토사물을 담아주던 멀미 봉투의 뜨끈한 느낌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어린 나이에 자연의 위대함과 두려움을 느낄  있었는지도 모른다. 썬플라워와 나의 첫 만남은 그렇게나 대단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궂은 날씨에 배를 타도 피곤할지언정 멀미는 하지 않는다. 짓궂은 파도 놀이에 신체적 내성이 생긴 것도 있고, 나름의 노하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단 배에 타면 누울 자리부터 찾아야 한다. 그러나 부지런한 대한민국의 관광객들은 나 같은 젊은 애송이에게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1km 밖에서도 보일 빠알갛고 파아랗고 노오란 등산복을 장착하고선 니스칠한 것처럼 번뜩번뜩 빛나는 은빛의 돗자리들을 곳곳에 깔고 술판을 벌리고 앉아있다. 하지만 나는 다가올 미래를 알기에 그들의 빛나는 존재감을 애써 멀리한  자리를 잡는다.

배가 출발한 지 10 즈음되면 잠이 솔솔 온다. 그전날 아무리 숙면을 하고 와도 썬플라워 안에만 들어가면 특유의 무겁고 찝찝한 공기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수가 없다. 스르륵 감기는 눈꺼풀에 자연스레 몸을 맡긴다. 파도가 장판(너울 없이 평평한 상태)이라면 그대로 쭈욱 갔다가 도착할 즈음에야 겨우 깨지만 너울이 심할 때면 말이 달라진다. 이러다 지구 밖으로 튕겨나가는  아닐까 싶을 정도의 파도를 타면 눈이 떠질 수밖에 없는데 그럴  주변을 둘러보면 아까만 해도 한껏 흥이 올라 신나게 고스톱을 치고 고성방가를 지르던 산악회 관광객 무리들이 마취총에 맞은 것마냥 곡소리를 내며 쓰러져계신다. 멀미와 사투를 벌이는 중인 것이다.

나는 자세를 고쳐 앉는다. 멀미를 대할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의 각도와 호흡이다. 일단 가장 어지럼증이  느껴지는 머리 각도를 찾아야 한다. 그런  있을 성싶지만 분명히 있다. 샤워  온도를 맞추는 것처럼 정밀하게 왼쪽으로도 틀어보고 오른쪽으로 틀어보며 각을 맞추다 보면 느낌이 온다. 다음부터는 호흡이다. 배가 파도에 밀려 올라갈  숨을 들이쉬고, 다시 내려갈  숨을 내쉬어야 한다. 일정한 주기로 파도와 배와 , 3개의 존재가 삼위일체 되어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이곳이 천국인 것이다. -.

장장 3시간을 플라워 속에서 고군분투한 , 겨우 울릉도에 발을 디디면 새삼 다른 세계에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상관없이 섬의 건강한 기운을 듬뿍 담은 신선한 공기가 나를 감싼다. 여느 공항처럼 울릉도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커다랗게 알려주는 표지판이 있는 것도 아닌데, 상징적인 조형물 하나 없이 그저 커다란 돌산이 선착장 뒤로 보일 뿐인데도 울릉도에 왔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곳이 울릉도구나. 이래서 울릉도구나.”

힘차게  위로 오른다. 이곳에서 채워갈 시간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먹고, 놀고, 보고, 느낄 모든 것들이 어찌나 생생할까? 이미 알고 있지만 오랜 육지 생활로 인해 회색으로 뒤덮인 감각들을 하나둘 깨워갈 차례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무리의 사람들을 싣고  썬플라워가 아득히 멀어진다.  다시 만나자. 느리게 느리게 다시 만나자.



* 썬플라워는 2020 2, 운항 25년의 선령을 모두 채워 울릉도를 떠났다. 1995 8 15  취항에 나선 썬플라워는 정원 920, 최고 시속 87km로 과거 6시간이나 걸렸던 울릉-포항의 뱃길을 3시간으로 단축시키며 울릉도 여행의 전환기를  주축이었다. 그리고 무려 25년간 울릉도 주민들의 발이 되어준 고마운 수단이었다. 그동안 성실하고 안전하게 우리를 태워준 썬플라워호에게 글로나마 감사 인사를 전한다.






덧붙이고 싶은 글


고생 끝에 찾아온 섬인 만큼 기대감도 남다르다. 다른 한국의 관광지, 아니 세계의 관광지에서도   없었던 무언가를 만날  있을 것만 같다. 글쎄, 내가 가본 국내외의 다른 여행지만큼 울릉도를 재미있는 여행지, 아늑한 관광지로 소개할  있을 수는 없겠다. 물자를 들여오는 교통수단이 한정적이고,  기간 역시 불규칙적이기 때문에 물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외지인에게 어쩔  없는 경계심이 가득하므로 모든 주민에게 따듯한 친절이 장착돼있는 것도 아니다. 신식 숙소가 많은 것도,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예쁜 카페들이 널린 것도, 여행하기 편한 교통 인프라가 있는 것도 아니다. 줄이자면 가벼운 마음으로 살짝 발만 담갔다 떠날  있는 만만한 여행지가 아니다.

그러나 장담컨대 아름답다. 내가 가본 어느 여행지보다도 신비롭고 아름답다. 자연이 이토록 아름답고 장엄하고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이곳에 살면서 배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2019년 연말정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