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마케터에게 필요한 역할
“마케팅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강연을 할 때마다 종종 받는 질문이다. 마케팅 방법론이 과거보다 훨씬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마케팅 영역에서 마케터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듯하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이 있었다. 앞으로의 마케터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시장에서 임팩트를 만들어낼 마케팅을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빅데이터와 머신러닝이 계속해서 고도화되며 퍼포먼스 마케팅의 파워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측한다. 또 누군가는 수많은 브랜드 사이에서 우리 브랜드를 돋보이게 하고 오래 기억에 남게 해 줄 브랜드 마케팅의 중요도가 더욱 높다고 말한다.
한 가지 마케팅 방법론만이 정답이라기보다 퍼포먼스 마케팅과 브랜드 마케팅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만 치열한 시장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 조화의 핵심에는 콘텐츠가 있다.
퍼포먼스 마케팅만 운영한다면 마케팅 예산이 빠르게 소진되고 장기적인 성과를 바라보기 어렵다. 브랜드 마케팅에만 신경 쓴다면 기본적인 매출 방어가 쉽지 않고, 아무리 좋은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도 효과적으로 확산시키기 힘들다.
계속해서 새로운 브랜드들이 탄생하고 성장하며 한정된 광고 인벤토리 내의 경쟁이 심화되어 광고비가 점차 오르는 추세이다. 데이터 분석과 동선 개선 및 적절한 CRM을 활용해 캠페인 성과를 최적화시켜나갈 수는 있지만 목표가 높아질수록 예산의 벽에 부딪힐 확률이 높다.
때문에 퍼포먼스 마케팅의 한계를 보완해줄 브랜드 마케팅이 필요한 것이다. 브랜드 마케팅은 광고가 아닌 자연 유입으로 우리 브랜드에 유입되어 성과를 만들 팬덤을 형성하는데 기여한다. 정리하자면, 우리 브랜드 또는 캠페인의 메시지를 잘 전달해줄 크리에이티브를 제작하여 다양한 매체로 확산시켜 우리 브랜드 이미지를 공고히 하고 팬덤을 형성하는 것과 동시에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확실한 매출 성과까지 올리는 구조이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일관성 있는 마케팅, 진정성을 기반으로 임팩트를 줄 콘텐츠 세팅을 위해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공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잠재) 유저에게 메시지를 각인시킬 임팩트 있는 크리에이티브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부터 만들어진다.
그 뒤로는 (잠재) 유저에게 캠페인을 인지시키기 위한 매체와 더욱 관여도가 높은 액션 (회원 가입, 구매 전환 등)을 유도할 매체 세팅이 필요한데, 이때 확실한 목적과 목표 세팅과 각 업무를 맡은 담당자들 간의 원활한 소통이 탄탄하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좋은 콘텐츠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나. 컨셉
먼저 우리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줄 수 있는 명확한 컨셉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컨셉을 잡으려면 우리 브랜드가 유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고객 페르소나는 어떤 모습인지, 유저가 우리 브랜드를 통해 느끼고 싶어 하는 경험을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가 바탕에 깔려있어야 한다.
'콘텐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중 하나인 29CM. 이들은 ‘고객의 더 나은 선택을 돕는다 Guide To Better Choice’는 미션 아래 각 브랜드만의 고유한 가치를 매거진을 보는 느낌으로 전달한다. 기존 커머스와 차별화된 컨셉으로 월평균 10만 이상의 MAU와 3년 연속 거래액 100% 성장하는 성과를 만들고 있다.
둘. 메시지
메시지를 도출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만 담는 게 아니라 (잠재) 유저가 우리 브랜드에게 듣고 싶어 하는 말을 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줄곧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듯이 타겟이 될 유저가 듣고 싶어 하는,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뽑는 것이 포인트다.
우리가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고, 유저가 듣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는 무엇인지 고민해본 후 그 사이 어딘가에 놓여있을 핵심 메시지를 발견해보는 것이다.
이 파트에서는 윤여정 배우를 필두로 한 지그재그 캠페인을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준비 당시 지그재그의 누적 다운로드 수가 약 3천만을 웃돌고 있었기 때문에 브랜드 인지를 넘어 임팩트 있는 방식으로 지그재그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 캠페인의 목표였다고 한다.*
그들이 전하고 싶었던 가치관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좇다 보면 언젠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를 ‘니 마음대로 사세요’라는 메시지로 정리하여 윤여정 배우의 목소리로 전했다. 개인적으로 시기와 모델, 메시지 삼박자가 딱 떨어져서 대박이 난 케이스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미원 출시 65주년을 맞아 만들어진 “내 서사에서조차 나는... (조연이었다)”는 메시지가 가미된 광고 영상도 고객들의 공감과 웃음 포인트를 함께 끌어낸 크리에이티브였다.
셋. 매체
마음에 드는 메세지를 도출했다면 목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활용할 매체와 그 매체에 보여줄 콘텐츠 방식을 고민할 차례다. 바로 여기서 브랜드 마케팅과 퍼포먼스 마케팅의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처음부터 하나의 콘텐츠 형식에 꽂혀 있으면 다양한 변주를 주며 각 매체에 어울리는 콘텐츠로 베리에이션 하기가 어렵다. 때문에 콘텐츠만 고민하거나 매체만 고민하기보다 브랜드 마케터와 퍼포먼스 마케터가 매체와 콘텐츠를 함께 고려하여 매체별 성과를 최적화해나가면 훨씬 편하게 캠페인을 운영할 수 있다.
효율적인 매체 관리를 위해서 테스트를 먼저 진행해보는 것도 좋다. 비교적 테스트가 용이한 DA나 페이스북 광고를 활용하여 소재 테스트를 진행한 후 성과가 잘 나온 소재를 기반으로 다양한 매체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때 어떤 포인트 때문에 성과가 우수한지에 대한 인사이트 분석이 잘 되면 이후에 추가 소재를 기획할 때 활용하기 좋다.
영상의 경우에는 짧은 기간 노출이 많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만큼 피로도도 빨리 쌓일 수 있어서 다양한 소재가 필요하다. 그러나 제작 기간이 길기 때문에 매번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만들기 어려우므로 템플릿을 만들어두면 좋다. 테스트로 검증한 와우 포인트는 그대로 살리면서 컬러나 카테고리, 제품 이미지 등만을 교체하면 새로운 소재를 빠르게 투입하여 효율을 방어할 수 있다.
넷. 광고 이상의 커뮤니케이션
퍼포먼스 광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팬이다. 우리가 광고를 하지 않아도, 프로모션을 열지 않아도 우리 브랜드를 아껴주고, 써주고, 퍼뜨려줄 팬. 이들은 단순 광고 그 이상으로,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말하고 또 귀 기울여 들어주는 커뮤니케이션 속에서 만들어진다.
한때는 중고거래 플랫폼에 지나지 않았던 당근마켓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놀면 뭐하니?>를 통해 단순한 중고 거래 플랫폼의 이미지를 탈피해 ‘지역 기반 커뮤니티 플랫폼’의 가치를 알린 당근 마켓은 거래할 상대를 찾기 어렵다는 유저들의 피드백을 듣고 한정판 장바구니를 만들었다. 준비된 물량은 금세 동이 났고, 팬들의 추가 요청 끝에 지금은 당근마켓 공식 스토어의 굿즈로 판매되고 있다. 이 당근마켓 공식 스토어 역시 장바구니의 인기로 인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최근 슬리퍼까지 추가되며 앞으로 더 많은 굿즈가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며칠 전 넷플릭스 브라질에서 만든 매거진 Tudum을 알게 되었는데 이는 넷플릭스를 켤 때 나는 따단- 소리를 그대로 옮긴 메시지였다. 넷플릭스 콘텐츠의 캐릭터들이 그대로 살아 숨 쉬는 듯한 강력한 색감, 역동적인 일러스트의 매거진을 기본으로 이런 요소들을 디지털 콘텐츠에 적용해 팬들과 인터랙션을 주고받고 소셜 버즈를 일으켰는데 이 Tudum이 글로벌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전 세계 넷플릭스 시리즈의 스타, 크리에이터가 가상의 공간에서 모이는 이벤트라고 하니 벌써 기대가 된다.
광고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자극적인 광고 소재들이 자주 눈에 띈다. 브랜드 가치를 전달하기보다 빠르고 쉽게 전환을 이끌어내는 시도 끝에 만들어지는 콘텐츠는 앞으로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극을 좇으면서도 그 자극에 쉽게 무뎌진다. 짧은 순간 흥미를 끌 수는 있겠지만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 브랜드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진정성을 담은 콘텐츠가 빛을 발하지 않을까. 차별화된 컨셉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로 콘텐츠를 만들어 적재적소의 매체에 노출하고, 거기에 반응하는 유저들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브랜드는 탄생하기 어려운 만큼 거부하기도 어렵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쉽지 않은데 최근 들어 하나의 관문을 더 발견했다. 바로 콘텐츠와 연결된 ‘경험’이다. 마케팅을 하면서 마케팅 메시지와 고객이 느끼는 서비스, 브랜드 경험에 일관성이 없으면 지속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마케팅의 주 역할은 우리 브랜드의 잠재 유저를 발굴하고, 그들이 앱을 다운로드하게 하거나 회원으로 가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타이밍이 잘 맞아 타겟이 정말 원하는 바로 그 제품을 추천하는 데 성공했다면 즉각적인 전환까지 바로 유도할 수 있지만 사실 이런 굿 타이밍을 마케팅만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좋은 콘텐츠와 적절한 마케팅을 통해 우리 브랜드에 높은 호감도를 가지게 된 유저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팬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상의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최근 내가 마케팅팀에서 서포터경험팀으로 팀을 옮기게 된 이유도 이것이다.
마케팅을 하고 싶었고, 마케팅 업무가 즐거웠던 이유는 우리 브랜드가 가진, 내가 좋아하고 공감하는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마케팅에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 브랜드 메시지를 고객들의 경험 여정에 적용해 매 순간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느끼고 함께 응원하도록 만들고자 한다. 기존에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 유저들에게는 로열티를, 신규 유저들에게는 신선함을 바탕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전달드리고 싶다.
*10월 7일에 열리는 <Facebook Marketing Summit 2021> 에서 '오늘의 마케터'로 참여해 브랜드 마케팅과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다. 관심 있다면 여기에서 등록해보시길 :)
참고1. 리프트오프 모바일히어로즈 인터뷰
참고2. 지그재그, 미원 캠페인 비하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