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한 문장을 쓰자.
좋은 글을 쓰는 방법을 고민하는 시간에는 끝이 없다. 직업인으로는 매일 회사에서 각종 메일과 글, 기획안을 쓰고 자연인으로는 생각을 정리하는 에세이를 쓴다. 늘 글과 가까이 있으니 이쯤 되면 눈 감고도 잘만 쓸 때가 된 것 같지만 여전히 좋은 글을 원하는 갈증은 가시질 않고, 계속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독립출판을 준비하면서 교정교열을 스스로 보다가 얻은 몇 가지 노하우가 있다. 최근 회사에서 UX Writing 가이드를 세팅하는 업무를 맡았는데 이 업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노하우라 여러모로 쓸모 있다. 뻔하지만 막상 실행하기는 어려운, 그러나 제대로 하면 문장과 글의 맵시가 확 달라지는 셀프 교정교열 방법을 정리해본다.
첫 번째 방법은 아주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글을 쓰다 보면 놓치는 때가 종종 있다. 조금의 과장을 보태어 말하면 주어와 서술어만 말해도 말이 되는 문장이 되어야 한다. ‘나는 밥을 먹었다’에서 ‘나는 먹었다’처럼 목적어가 빠져도 말이 되듯이 말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지금 우리가 밥을 제때 챙겨 먹지 않으면 나중에 배가 고플 것이다.
여기서 주어는 ‘내가’이고, 서술어는 ‘고플 것이다.’가 된다. ‘내가 고플 것이다.’로 이어 보면 어색한 문장이 된다. 따라서 이 문장은 아래와 같이 고칠 수 있다.
나는 지금 우리가 밥을 제때 챙겨 먹지 않으면 나중에 배가 고플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렇게 고치면 주어와 서술어를 이었을 때 ‘나는 - 이야기하고 싶다.’처럼 말이 되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주어와 서술어를 잘 연결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문장이 지나치게 길기 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번역투를 썼기 때문이다.
무조건 짧은 문장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긴 문장이어도 문법이 알맞고 문장 속에 담긴 의미가 독자에게 잘 전해지면 괜찮다. 그러나 전문 작가가 아닌 우리들이 쓴 긴 문장은 이런 조건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때문에 처음에 소위 ‘삘’을 받아 끊김 없는 문장을 막 휘갈겨 썼다면 퇴고할 때는 독자가 여유롭게 숨을 쉬며 전체 문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끊어주는 것이 좋다.
글을 쓸 때나 말을 할 때 생각보다 번역투를 많이 사용한다. 가장 대표적인 3가지가 ‘-적’, ‘-의’, ‘-에 있어’이다.
적극적, 습관적, 무조건적 등등에 쓰이는 접미사 ‘-적(的)’은 실제로 개화기 이전의 우리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표현이었다고 한다. 물론 오랜 시간 이 접미사를 쓰는 단어들이 고착화되어 대체하기 힘든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래와 같이 고쳐 쓰거나 풀어쓸 수 있다면 바꾸는 것이 좋다. 이렇게 바꿨을 때 훨씬 읽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이 된다.
자기 전,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봤다. -> 자기 전, 습관처럼 휴대폰을 봤다.
오늘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 오늘 열심히 이야기를 나눴다.
‘-의(の)’도 마찬가지다. 틈만 나면 썼던 이 조사가 일본식 표현이었다는 걸 알고 난 후 글 쓰는 게 녹록지 않았다. 그간 얼마나 많이 쓰고 있었던 걸까. 찾아보니 일본어에는 띄어쓰기가 없어서 쉼표와 の 로 대신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말에는 띄어쓰기가 있기 때문에 이 조사를 없앴을 때 훨씬 이해하기 쉽고 명료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예시만 봐도 확 와닿는다.
나의 살던 고향 -> 내가 살던 고향
진격의 거인 -> 진격하는 거인
한 잔의 커피 -> 커피 한 잔
내 친구의 노트북의 가격 -> 내 친구 노트북 가격 / 내 친구가 쓰는 노트북 가격
그 회사의 직원의 수 -> 그 회사 직원 수 / 그 회사에 다니는 직원 수
‘에 있어’는 자주 쓰진 않지만 종종 문장을 고급스럽거나 진중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 썼는데, 이 역시 일본 법률 문장에 많이 쓰이는 有ス’, ‘在ル’에서 나온 잔재였다.
움직임에 있어 -> 움직이면서 / 움직일 때
검사 중에 있다 -> 검사하고 있다 / 검사 중이다
나에게 있어 그는 -> 나에게 그는
이외에도 ‘-까지의’, ‘-로의’, ‘-에 의해’, ‘다름 아니라’ (‘다른 게 아니라’로 수정), ‘-의 경우’(‘-할 때’로 수정) 등 수많은 일본어 번역투가 있다. 우리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어색한, 문장을 유려하게 만드는 데 걸림돌이 되는 조사들은 한 번씩 찾아보고 고쳐 쓰는 연습을 하는 게 필요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 언어를 빨리 습득하는 능력이 있는 걸까? 우리가 자주 쓰는 표현에는 일본어식 표현뿐 아니라 영어식 표현도 많다.
대표적인 게 ‘-에 대하여/관하여(about)’와 ‘-기 위해(for)’, ‘-을 통해(through)’이다. 이런 표현은 아래 예시처럼 풀어쓰거나 다른 조사를 대체할 수 있다.
역사에 대한 지식이 깊어졌다. -> 역사 지식이 깊어졌다.
투자에 관해 공부했다. -> 투자를 공부했다.
점수를 얻기 위해 운동했다. -> 점수를 얻으려고 운동했다.
독서를 통해 어휘력을 얻었다. -> 독서로 어휘력을 얻었다.
복수 접사 ‘-들’ 역시 영어의 복수형 표현에 길들여진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다. 나도 이 표현이 잘못된 건지 몰랐는데 내가 쓴 글을 고쳐주셨던 예전 상사가 빨간 펜을 들고 아주 호되게 알려주셔서 알게 됐다. ‘많은’, ‘다양한’, ‘여러’처럼 이미 복수 형용사 또는 부사가 수식할 명사 앞에 있는 경우에는 ‘-들’을 붙이지 않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 많은 사람 사이에서
다양한 종류들이 있다. -> 다양한 종류가 있다.
영어의 완료형이나 진행형 시제에 쓰이는 ‘-ㅆ었다.’, ‘-는 중이다.’와 같은 표현도 바꿀 수 있다. 우리말에는 완료형 시제가 없다. 때문에 ‘-ㅆ다.’와 ‘-ㄴ다.’로 바꾸어도 의미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다.
샤워하고 있었습니다. -> 샤워했습니다.
어릴 때 몸이 약했었어. -> 어릴 때 몸이 약했어.
꾸준히 운동을 해왔습니다. -> 꾸준히 운동했습니다.
그 업무는 내가 담당하는 중이다. -> 그 업무는 내가 담당한다.
비가 오는 중이다. -> 비가 온다.
덧붙여 앞에서 ‘긴 문장은 한 번씩 끊어주자’라고 이야기해서 문장이 길어지면 나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번역투를 풀어쓰는 과정에서 문장이 길어지는 것은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풀어쓰는 것에 너무 겁먹지 않으시길.
도둑이 경찰에 잡혔다.
나무가 자동차에 의해 부서졌다.
<토지>는 박경리 선생에 의해 쓰였다.
위와 같이 영어를 배울 때 ‘수동태’라고 배운 표현이 담긴 문장, 즉 피동사가 서술어로 쓰인 문장을 피동문이라고 한다. 위 예시를 능동문으로 바꿔보자.
경찰이 도둑을 잡았다.
자동차가 나무를 부러뜨렸다.
박경리 선생은 <토지>를 썼다.
행위를 한 주어가 명확하게 보이므로 글에 담긴 상황을 이해하기 훨씬 쉬워진다. 생명이 없는 물체를 주어로 한 문장을 쓸 때 (위 문장에서 나무, <토지>에 해당) 피동문을 주로 쓰는데, 영어와 달리 우리말에는 피동문이 흔하지 않다고 한다. 때문에 능동문으로 바꿀 수 있다면 최대한 피동문이 아닌 능동문으로 쓰는 것이 좋다.
2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