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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Aug 31. 2021

스타트업 마케터의 3단계 성장 과정

콘텐츠부터 퍼포먼스, IMC까지. 과연 넥스트 레벨은?

며칠 전 카이스트 대학원생 중심의 예비, 초기 창업가 분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주최 측에서는 초기 스타트업 마케터가 하는 일을 주제로 잡아주셨는데 조금 광범위하고 자칫하다간 다른 책이나 강연에서도 들을 수 있는 뻔한 이야기만 하게 될 것 같았다. 이분들께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내용을 고민하다가 '스타트업 초기 마케터로 브랜드와 함께 성장한 과정과 인사이트'에 대해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이날의 강연 후기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강연을 들어주신 분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타겟이 워낙 양질의 수업을 많이 들으셨을 분들이셔서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내 개인적인 경험을 도움이 될 만한 내용으로 최대한 쉽게 전달하려 했던 의도가 잘 담겼는지 QnA 시간에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질문들이 쏟아졌고, 인스타그램 DM으로 따로 인사를 보내주신 분들도 계셨다.


혹시나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신 분들께 도움이 될까 싶어 이렇게 글로도 남겨보려고 한다.






<캐즘 마케팅>이라는 책을 보면 하나의 기술이 대중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의 과정을 나타낸 기술 수용 주기 단계가 등장한다. 하나의 새로운 기술, 시장은 Innovator(혁신 수용자)를 시작으로 Early Adopter를 거쳐 본격적인 대중 시장에 진입하게 되고 Early Majority와 Late Majority를 거쳐 서서히 Laggard(회의주의자, 말기 수용자)를 맞이한다.


나는 2014년 와디즈의 첫 인턴으로 입사해 지금까지 약 6년 동안 이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해왔다. 이 과정을 기술 수용 주기에 대입해보면 아래와 같이 3단계로 나눌 수 있었다.




Innovator


Condition

이 단계의 컨디션은 지금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펀딩 프로젝트가 한 달에 10개가 채 열리지 않았다. 와디즈는 물론이고 크라우드펀딩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시기였다. 마케팅 측면에서 보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았고, 대신 페이스북 카드 뉴스 콘텐츠와 네이버 블로그 SEO가 매우 강세였다.



Challenge

당시 스물셋 인턴이었던 내가 가지고 있던 능력은 단 2개였다. 콘텐츠 제작, 그리고 지구력. 나는 이 두 가지 능력을 콜라보시켜 와디즈의 네이버 블로그에 적게는 하루에 1개, 많게는 하루에 3개까지의 글을 올렸다. 당시 네이버 메인의 섹션에는 [공익/나눔] 주제의 판이 있었는데 이 판에 우리 블로그 글을 올리는 걸 목표로 공장에서 찍어내다시피 글을 썼다.


우리 플랫폼에 올라와있는 프로젝트만으로는 소재가 부족해서 당시의 뉴스나 트렌드와 펀딩을 엮기도 했고, 킥스타트/인디고고 같은 해외 펀딩 플랫폼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프로젝트를 공유하거나 우리 프로젝트와 비슷한 프로젝트를 엮어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그 결과, 네이버 메인에 블로그 글이 게재되었고 담당자가 해당 게시판의 주제와 우리 블로그 콘텐츠의 결이 잘 맞다고 생각했는지 이후 매주 1-2회 우리 블로그 글이 메인에 올라가며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블로그 글을 보고 실제 펀딩에 참여하는 분들도 계셨다. 처음으로 마케팅에서 콘텐츠의 힘을 느낀 순간이었다.



Insight

하나. 크리에이티브 20 : 일관성 80

특히 초기 스타트업일 경우에는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예산이 더욱 한정적이므로 크리에이티브에 힘을 싣기 어렵다. 메시지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고민을 아예 포기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 우리 브랜드의 메시지를 얼마나 꾸준히, 얼마나 일관성 있게 전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


또한 이 단계에서 우리 브랜드의 메시지에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이들과 오랫동안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둘. 현재 안에서 답을 찾자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지금의 상황 안에서 최선의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계속 고민하는 자에게만 정답이 주어진다. 시도하지 않고, 현재를 비관하고 몽상만 펼친다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Early Adopter


Condition

복학 후 다시 입사를 하고 돌아온 회사는 조금 더 성장해있었다. 마케팅팀이 별도로 만들어졌고, 퍼포먼스 마케팅을 하고 있었다. 뉴스레터, 카카오 옐로 아이디 등의 CRM 매체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시장에서는 페이스북과 네이버 중심이었던 마케팅 채널이 서서히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로 이동하는 추세였다. 보다 다양한 시도들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Challenge 1

블로그 콘텐츠만 만들면 되는 인턴 때와 달리 뉴스레터, 문자, 옐로 아이디 같은 CRM부터 SNS 채널 중심의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 시기였다.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가 조금 낯설었고, 당시 마케팅팀의 대부분이 우리 회사에 입사하신 지 오래되지 않은 분들이셨기 때문에 우리 브랜드의 본질을 제대로 잡아놓고 마케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펀딩을 너무 내부인의 시선으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대중의 시선을 이해하며 콘텐츠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걸 자각했다.


우리 브랜드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당시 펀딩 프로젝트들에 달린 댓글과 블로그 같은 SNS 채널에 올라온 펀딩 후기들을 모두 인쇄했다.


거의 몇 백 페이지의 종이를 책상에 올려두고 형광펜을 죽죽 그어가며 고객들이 우리 플랫폼, 메이커님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펀딩을 하는 이유를 분석해보기 시작했다. 파고들수록 유형이 나뉘기 시작했고 화이트보드 하나를 끌어와서 포스트잇으로 시각화해보았다.




이렇게 일주일간 댓글들을 읽고 분석한 끝에 <와디즈, 우리의 본질>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 대표님께 보고하고 팀에도 공유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지나며 내가 이 팀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명확하게 그릴 수 있었다. 이때 만든 자료는 아직도 간혹 열어본다. 놀랍게도 지금의 방향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본질을 찾는 과정을 통해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카카오 옐로 아이디, 뉴스레터를 리뉴얼하고 인스타그램/페이스북 콘텐츠를 제작했다. <좋아하는 것에 투자하세요>라는 슬로건의 유튜브 캠페인과 <새로운 시대에 투자하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와중 새로운 챌린지가 들어왔다.



Challenge 2

펀딩 프로젝트 오픈 수를 늘려라. 서포터 향 마케팅을 하던 내게 찾아온 미션이었다. 펀딩을 오픈할 메이커를 모집하는 것. 콘텐츠와 퍼포먼스 마케팅을 모두 혼자 해내야 했다. 괜찮은 광고가 보이면 닥치는 대로 캡처를 했고, 샤워를 하다가도 카피가 떠오르면 휴대폰 메모장을 켜서 입력했다. 광고 소재를 제작하고 구글과 페이스북 매체를 운영했다.




이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메이커 마케팅도 나름의 B2B 마케팅이었기 때문에 하나의 성과를 만들기까지 퍼널이 너무 길었다. 때문에 뉴스레터 구독하기, 스쿨 신청하기, 성공 노하우 다운로드하기처럼 미들 퍼널을 잘 세팅해두고 지속적인 유입을 유도하는 장치가 필요했다. 이런 장치들이 유지되려면 역시나 콘텐츠가 필요했다.


메이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매력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와디 파이>라는 성공 메이커 인터뷰 콘텐츠를 만들었고, 업계에서 인사이트가 뛰어난 분들은 따로 초청하여 영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리소스가 부족했기 때문에 영상을 편집하는 방법을 독학해서 인터뷰부터 촬영, 편집, 배포를 도맡아 했다.


다음은 퍼널 분석이었다. 중간 퍼널들을 세팅해둔 후 GA로 예비 메이커가 사이트에 유입되어 전환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이탈되는 포인트들을 찾았다. 가장 많은 유입과 이탈이 일어난 곳은 펀딩 오픈 신청 페이지였다. 메이커가 펀딩의 베네핏을 제대로 인지하고, 오픈 과정을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페이지를 리뉴얼했다.




연말이 찾아왔다. 연초는 누구든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타이밍이었기에 이때를 잘 노리는 게 필요했다. 단순 프로모션 그 이상의 무언가. 펀딩 트렌드 리포트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매년 연말연초가 되면 각종 기관에서 트렌드 리포트를 발표하곤 하는데 펀딩은 누군가가 처음을 만들어내는 곳이었기에 트렌드를 가장 먼저 발견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일 년 치 프로젝트 리스트를 뽑고 유형을 정리해 키워드를 뽑었다. 거기에 살을 입혀 <펀딩 트렌드 리포트>를 완성했다.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PR팀에서 기자 분들이 아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전해주셨다. 여러 매체를 통해 리포트가 퍼져나갔다. 펀딩 오픈 수는 팀에 합류하기 전보다 63% 증가했고, 트렌드 리포트는 슬라이드쉐어에서만 36,0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Insight

하나.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자.

이 시기에 만들었던 와디즈의 본질은 여전히 길잡이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그때의 초심, 그때의 희열, 그때의 노력을 떠올리게 해주는 건 물론이고 우리 브랜드가 막 성장하던 시기부터 함께 해준 고객이 어떤 분들인지를 알려준다. 정답을 모를 때는 고객의 목소리를 탐험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


둘. 뿌린 대로 거둔다.

당시의 나는 내가 너무 비슷한 일만 하는 게 아닐까. 늘 만들던 콘텐츠를 만들고, 늘 쓰던 카피를 쓰고, 늘 보내던 뉴스레터를 보내는 게 아닐까 불안했던 적이 있다. 그때 "언젠가 이렇게 한 일들이 도움이 될 때가 올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한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때가 왔다. 더 많은 일들을 한정된 시간 안에 해내야 했을 때, 사소하다고만 느꼈던 반복적인 업무들이 빛을 발했다. 작디작은 씨앗을 뿌려야 커다란 나무가 자란다. 최선을 다해했던 일들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





EARLY MAJORITY


Condition

회사는 지속적인 성장 곡선을 그려왔다. 브랜드팀이 만들어졌고 나는 마케팅팀에서 브랜드팀으로 이동했다. TVCF를 비롯한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실력 있는 동료들이 합류했다. 대중들에게 우리 브랜드와 펀딩을 임팩트 있게 알릴 차례였다.



Challenge

모든 업무가 그랬지만 특히 IMC 캠페인은 처음 준비할 때부터 목표 기간이 끝날 때까지 모든 과정이 챌린지의 연속이었다. 주어진 KPI인 신규 회원 가입과 앱 다운로드 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매일매일 싸우다시피 일했다. 모델 선정부터 광고 제작과 촬영은 설렘만 가득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긴장의 연속이었다.


캠페인 런칭 후에는 프로모션과의 싸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코로나19가 덮쳤다.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매달 새로운 프로모션을 런칭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로봇처럼 기획안을 쓰고, 디자인/개발팀과 함께 촉박한 일정을 요리조리 끼워 맞췄다.




퍼포먼스 마케터가 없이 광고를 운영해야 했기 때문에 데이터도 실시간으로 파악해야 했다. CPA가 들썩일 때마다 우리도 몸을 들썩거리며 공장처럼 광고 소재를 찍어내고 엑셀 시트를 두드리며 그때그때 당면한 문제들을 헤쳐나갔다. 돌아보면 정말 전투에 임하는 마음으로 일했다. 덕분에 우리는 목표를 초과 달성하고 연말에는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상도 받았다. (이 내용은 이글​에서 더 자세히 다뤘다.​)



Insight

하나. WHY를 잊지 말자.

WHY는 길이다. 아무도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묻지 않으면 산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구성원의 공감 속에서 합의된 목표를 가지고 함께 달려 나가야 더 강하게 더 빠르게 치고 나갈 수 있다.


둘. 유저의 경험을 생각하자.

유저가 우리 서비스를 사용하는 순간부터 이탈하는 순간까지의 모든 여정에서 느낀 경험과 마케팅 메시지가 상반되면 무용지물이다. 마케팅에서 전하는 브랜드 가치와 실제로 유저가 경험할 수 있는 가치를 일치시켜야 고객이 다시 돌아온다.






시장은 계속, 빠르게 변한다.

이렇게 지난 6년을 돌아보니 신기했다. 회사의 성장을 함께 한 덕분에 나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음을 느꼈다. 동시에 시장은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것도 체감할 수 있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모여 있을 것만 같았던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개인 크리에이터들의 영향력이 점점 거세져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주류 매체의 아성을 깨고 있다.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했던 사건으로 우리 삶은 180도 바뀌었고, 이는 디지털 세계의 문을 더욱 크게 열어젖혔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을 나열해보니 앞으로 찾아올 변화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우리는 앞으로 또 어떤 위기와 기회를 만나게 될까. 위기에 무너지지 않으려면, 기회를 제대로 잡으려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계속 나아가기 위해

나는 최근 경험 기획이라는 새로운 업무를 맡았다. 그렇다 또 다른 챌린지다. 내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업무는 우리 브랜드의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리는 일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는 마케팅 메시지로 현혹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유저가 우리 브랜드에서 경험하는 모든 여정에서 일관성 있는 브랜드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전히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이 글에는 나름 성공적인 경험들만 늘어놔서 그렇지 숱한 실패를 겪었다. 최근에도 뼈아픈 실패로 슬럼프가 오기도 했다. 다행히도 주변에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는 동료들이 많다. 매일 자극을 얻고 새롭게 배운다.



이 회사에 들어온 이유이자 좌우명인 문장


'나아간다'는 말을 좋아한다. 이를테면 '하다'를 '해나간다'로, '배운다'를 '배워나간다'처럼 쓰곤 한다. 나아간다에는 Go와 Better의 의미가 모두 담겨있는 듯하다. 그냥 가는 게 아니라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하며 앞으로 가는 것. 나는 앞으로도 계속 나아갈 것이다. 메신저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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