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마케터였는데 상은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받았다..?
엉겁결에 퍼포먼스 마케팅을 혼자 떠맡았던 적이 있다. 이것저것 다 해봐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 자괴감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불에 타는 꿈을 꿀 정도로. 이후로 퍼포먼스 마케팅은 주사 같은 존재였다. 본능적으로 피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최선을 다해 피해보고 싶은. 그러다 IMC 캠페인을 하면서 월 n억을 파딱파딱 쓰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시간이 찾아왔다. 돌고 도는 인생..!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보자 싶었다. 마케팅 활동의 주 무대가 디지털이 되어버린 오늘날, 브랜드 마케터라고 해서 퍼포먼스 마케팅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타겟이, 어떤 경로와 어떤 이유로 우리 브랜드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지를 볼 수 있는 채널이 있는데 이걸 무시하고 정성적인 성과만 보겠다고 하는 건 직무 유기일 수 있겠다 싶었다. 마침 열정 뿜뿜하는 팀원들도 있으니 하늘이 주신 기회라 믿고 해 보는 수밖에.
퍼포먼스 마케팅이란,
데이터를 활용해 측정 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마케팅 활동
예산도 있고, 매체도 있다. 총도 있고 총알도 있으면 과녁을 향해 쏠 일만 남았다. 그럼 어디로 쏴야 할까? 목적과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목적(purpose)은 홍보하고자 하는 서비스를 통해 우리가 실현하고 싶은 것. 목표(goal)는 구체적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지표이다.
상반기에 진행한 IMC 캠페인을 예로 들 때, 전사적으로 캠페인을 진행하려는 목적과 이를 통해 마케팅팀이 얻고 싶은 구체적인 목표 숫자는 다음과 같았다.
- IMC 캠페인(마케팅) 목표 : 브랜드 인지도 증대, 회원가입 월 n명 달성
하나의 예를 더 들어서 <스타트업 찾기>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마케팅하는 업무를 맡았을 때, 해당 서비스로 우리 팀과 회사가 실현하고자 하는 목적과 얻고자 하는 목표를 아래 같은 방식으로 설정했다.
- 스타트업 찾기 (마케팅) 목표 : 한 달 평균 CPA n원 기준으로 n개의 스타트업 등록 유치하기
목표는 구체적일수록 좋지만 너무 타이트하거나 루즈하면 안 된다. 터무니없이 이상적이지 않은 달성 가능성과 마케팅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예산 효율성을 고려하여 정해야 한다.
목표를 정할 때 메인으로 봐야 할 지표를 정한다. 이때 고려할 것은 크게 아래와 같다.
하나. 목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
일단 목표와 관계없는 지표는 삭제하는 게 좋다. 괜히 봐야 헷갈리기만 한다. 검색 쿼리량을 지표로 설정해둔 적이 있었는데 볼수록 목표와 연관성이 떨어져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지금 단계에서 집중해야 할 지표를 우선순위로 나누어 확인하는 것이 업무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다.
둘. 효율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설계되어 있는가?
아무리 좋은 지표라도 측정이 불가능하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내부 개발팀, 외부 대행사에 확인하고자 하는 지표를 공유하고 측정 방법을 미리 숙지해두어야만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퍼포먼스 체크가 가능하다.
셋. 전사적으로 얼라인된 지표인가?
단어가 비슷한데 서로 생각하는 개념이 달라서 커뮤니케이션에 오류가 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지표로 '버튼 클릭' 수를 보려고 하는데 누군가는 (처음) 버튼을 클릭한 수를 보고 있고, 누군가는 '버튼 클릭 (완료) 수'를 보고 있을 수 있다.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지표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공유가 필요하다.
퍼포먼스를 하기 전에는 내가 얼마나 광고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피부로 느끼기 어려웠는데 세상에는 정말이지 많은 광고 매체가 존재하고 우리는 하루 종일 그들에게 둘러싸인 채 살고 있다. (갑자기 분위기 호러) 그만큼 마케터에게는 활용할 수 있는 매체가 많다는 뜻이다.
우리의 경우, 인지-확장과 전환 즉 목적별로 매체를 달리 사용했다. 이 안에서도 앱 랜딩, 웹 랜딩에 활용할 수 있는 매체가 나뉜다. 전략에 따라 매체별로 예산 및 예상/목표 CPA를 세팅해 목표 수치에 맞는 미디어 믹스를 확정한다. 이 미디어 믹스가 중요한 이유는 이걸 잘 짜면 캠페인이 이대로 능숙하게 흘러가기 때문만은 아니다.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면 정말이지 다양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다. 어느 날은 안정적이었던 CPA가 머신러닝의 변덕으로 갑자기 훅 오르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매체에서 성과가 쑥 좋아지기도 한다. 미디어 믹스는 한여름 날씨처럼 짓궂게 변하는 매체별 성과 속에서 기준을 잡아준다. ‘성과가 낮은 이 매체의 예산을 다른 매체로 전용해야겠구나!’와 같이 예상을 빗나가는 상황에서 중심축 역할을 해내는 셈이다.
IMC캠페인을 하면서 여러 매체를 활용해보니 매체별로 특징이 명확했다. 어떤 매체는 LTV가 높은 타겟이 많이 유입되고, 어떤 매체는 리마케팅에 탁월한 성과를 보이며, 어떤 매체는 체리피커의 습격을 불러온다. 예산 대비 효율이 좋지는 않지만 규모감을 강조하기 위해 활용해볼 법한 매체들도 있고.
더불어 매체별로 광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예산 범위도 있다. 그 범위를 넘어서는 순간부터 효율이 떨어지므로 미디어 믹스에서 짰던 예산이 효율적 사용이 가능한 예산 범위보다 높을 때는 그 차이만큼의 금액을 다른 우수 성과 매체에 투입하는 것이 좋다.
이렇게 매체를 운영하다 보면 각 매체별로 효율적인 타겟과 소재가 드러난다. 우리 브랜드가 목표하는 방향과 적합한 매체를 활용해서 타겟과 소재를 최적화해나가는 게 남은 과제다. 이건 꾸준히 가설을 세우며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증명해 나가는 정공법이 정답이 아닐까 싶다.
상반기 IMC 캠페인을 진행할 때는 회원가입 중심의 캠페인을 진행했다 보니 타겟군이 워낙 넓었다. 카테고리로 나누는 것도 방법이지만 다른 커머스나 쇼핑몰에서도 진행할 법한 플레이 대신 우리 브랜드만의 장점을 알리려면 다른 플레이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낸 가설이 '우리 브랜드의 신박함과 유용함을 전달하는 공감/호기심 유도 소재가 일반적인 카테고리 소개 소재보다 성과가 더 높을 것이다.'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처음 퍼포먼스 마케팅을 할 때는 타겟을 세부적으로 다 쪼개어 테스트를 했었다. 카테고리별로 쪼개도 보고, 성별별로 쪼개도 보고, 연령대를 좁혀도 보고. 하지만 최근 광고 알고리즘은 러닝 머신이 웬만한 최적화 타겟에게 알아서 노출되기 때문에 무작정 타겟을 쪼개는 것은 정답이 아닐 수 있다. 처음부터 좁게 타겟을 설정했다가 넓히는 것보다, 오히려 구분을 큰 범위로 쪼개어 2-3그룹으로 운영하다가 성과를 지켜보면서 조금씩 줄여나가는 것이 더 적합한 프로젝트도 있다.
위에서 언급한 <스타트업 찾기> 캠페인은 B2B 마케팅에 가까웠기 때문에 크게 열어놓고 리타겟팅, 관심사 타겟팅, 유사 타겟팅으로 테스트를 진행했다. 만들어진지 한 달도 안된 서비스였기 때문에 리타겟팅과 유사 타겟에게만 의존하기는 어려웠고, 관심사 타겟팅에서 생각보다 성과가 좋지 않았다. 다른 타겟을 고민하다가 아래와 같은 추측을 해봤다.
- 이미 서비스에 등록해 반응을 얻고 있는 스타트업과 비슷한 분야의 스타트업이라면 관심을 갖지 않을까?
- 기업의 투자 유치에 관심이 많은 직무라면 클릭해보지 않을까?
- 등록된 스타트업이 위치한 지역을 타겟팅해볼까?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스타트업이 많은 비즈니스 분야와 해당 서비스에 관심이 많은 직무, 국내 스타트업이 많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 타겟팅을 추가했고, 보다 유의미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해보니 이게 어려운 이유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라는 들었다. 도무지 뭘 배우는 건지 모르겠는 머신러닝과 반복되는 최적화와의 길고 긴 싸움..! 정답이 없는 이 세계의 유일한 정답은 여러 가설을 똑바로 세우고 검증하고 검증해가는 것뿐이 아닐까.
이 마인드로 2020년 상반기 캠페인을 하는 동안 팀원들과 똘똘 뭉쳐 일한 덕분에 퍼포먼스 마케터는 한 명도 없었지만 설정했던 캠페인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었다. 연말에는 2020년 대한민국 온라인 광고대상 퍼포먼스 부문에서 우수상 수상을 수상하는 영광까지 얻었다. 세상에 수포자가 수학경시대회에서 상 받은 느낌..!
이제는 든든한 퍼포먼스 마케터 분들도 계셔서 옆에서 더 많이 배우고 있다. 데이터를 보고 성과를 개선시키는 건 여전히 복잡하고 쉽지 않지만 세상에 의미 있는 일 중 쉬운 건 없으니까 계속 공부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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