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은 독.
언젠가 뜨거운 여름날, 신이(남동생)가 친구들과 바닷가에 수영을 하러 간다고 했다. 한창 피 끓는 이팔청춘이라 괜한 객기 때문에 사고가 날까 무서워 조심하라는 당부를 했다. 그러니 '내 수영 잘한다이가, 개안타' 라는 답이 화살처럼 돌아왔다. 아찔했다. 잘하는 것, 아니 잘한다고 믿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에겐 오래된 친구들이 여럿 있다. 14살 때부터 알고 지내 어느덧 13년 지기가 된 고향 친구 무리들. 그리고 스무 살의 시작부터 함께 해 내 20대의 증거가 되어 가고 있는 대학 친구들. 못해도 7년은 같이 한 친구들이라 때로는 가족보다 그들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스스럼없는 세월을 보냈으면서 그들을 모른다는 것이 우리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문득문득 낯선 모습이 보일 때마다 머릿속에서는 작은 빅뱅이 일어났다. 그 새로운 세상은 내가 그들에게 무관심했다는 반증처럼 느껴져 전혀 달갑지 않았다. 피하기에 바빴다.
It ain't what you don't know that gets you into trouble.
It's what you know for sure that just ain't so.
곤경에 빠지는 건 무언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무언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이 명언은 영화 <빅쇼트>의 인트로 부분에도 나와 2008년 미국발 경제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꼬집는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파탄 내버린 이 경제 위기의 원인은 당시 월가의 비정상적인 인센티브 구조로 인해 무직업, 무소득자에게도 모기지론을 팔아댄 은행가들의 도덕적 해이 (모럴 해저드)와 거품이 가득했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채무 불이행률이 결코 8%를 돌파하지 않을 것이라 예측했던 착각과 오만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었다. 그 오만은 결국 수백만 미국 시민의 집과 직장과 은퇴자금과 연금을 한순간에 공중분해시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아직 배움도 짧고, 가진 것도 적어 '잘 안다'는 믿음으로 겪은 실패라고 해봤자 어떤 질문에 당당히 오답을 말해버린 망신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 느끼는 이유 모를 배신감쯤이 전부이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고 자연스레 듣고 배우는 것이 많아져 '잘 안다'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의 범위가 넓어지고 깊이가 깊어질수록 그 반대급부로 오는 착각과 오만의 크기도 더 커질 것이다. 신이의 경우, 운이 좋게도 사고가 나진 않았지만 우리는 안다. 물놀이 사고 피해자의 비율은 수영을 못하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높다는 것을. 언제 다리에 쥐가 날 지, 큰 파도가 덮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믿음에는 추진력이 없다. 이미 확신하게 되면 작은 가능성이라도 조심하는 신중함도, 몰랐던 것을 새로이 발견하는 환희도,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바로잡는 반성도 얻을 수 없다. 앎 속의 무지 無知 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믿기보다 한 번 더 의심하고, 꾸준히 관심을 가지기로 했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믿었던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하니 배워야 할 것들이 더 늘었다. 잠들기 전 책을 읽고, 출근 길엔 뉴스를 보고, 일주일에 꼭 영화 한 편을 챙겨본다.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한 마디로 끝낼 메시지도 길게 써보고, 절대 누르지 않았던 통화 버튼도 누른다. 더불어 새로운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되었다. 낯선 것에서 탄생했던 새로운 세상은 더 이상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릴 적 넋을 놓고 들여다봤던 신기한 유리구슬처럼 관찰해보고 싶은 작은 우주가 되었다.
아는 것, 아니 안다고 믿는 것은 나를 자만하게 만드는 독 poison 이자 나의 성장을 가두는 독 pot 이다. 믿음으로 눈을 가리지 말 것, 무지로 끊임 없이 탐구할 것. 이제 모르는 것이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