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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Sep 25. 2017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관자놀이의 경고

관자놀이가 당긴다. 귀 끝에 맞닿은 머리 속 근육이 줄다리기 하듯 팽팽해지는 느낌이 다시 찾아왔다. 이젠 어느정도 익숙해진 감각이긴 하지만 찾아올 때마다 불쾌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이건 예고이기도 하다. 컴퓨터가 과부하되었을 때 팬이 우렁차게 돌아가는 소리를 내며 '적당히 해라' 경고하는 것처럼 말이다.


식은 땀이 난다. 몸의 경고를 받았지만 여기서 일을 멈출 수도 없고, 멈추기도 싫다. 멋대로 되지 않는 머리를 가지고 계속 붙잡고 있으니 관자놀이와 내가 서로 밀당을 하는 셈이다. 몇 번이고 가열차게 돌아가는 CPU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불시에 셧다운된 노트북이 떠오른다. 내 머리도 어느날 갑자기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하는 불안과 그럼에도 이 따위 두통에 지기 싫다는 오기에 죄없는 몸뚱아리만 곤욕을 치르는 셈이다. 저도 심통이 났는지 식은 땀을 내뿜으며 나름의 반항을 하지만 두통도 나도 서로 지기 싫어 기싸움만 펼치고 있다.


어찌 되었든 지는 쪽은 나다. 모든 일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니 정확히 말해 내 의지라고 하는 편이 더 맞겠다. 이대로라면 관자놀이 근육이 끊어지고 말겠다는 망상에서 자유로워 지지 못하고 결국 목을 뒤로 휙 제낀 채 한숨을 푹 하고 내쉰다. 눈을 감고 가만히 심장 소리를 듣는다. 어린 아이가 신이 난 채 처음 만난 트램펄린 위를 마구 뛰놀듯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을 진정시키려면 몇 분의 쉼이 더 필요하다. 명치 끝에서부터 이산화탄소를 끌어 올려 내뱉는다. 조바심도 함께 내뱉는다.


지금은 쉬어야 해. 딴 생각하지 마.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 나는 욕심이 많다. '괜찮아, 천천히 해도 느리게 가도 너만의 속도로 너만의 길을 가면 돼.' 하고 의도적으로 주문을 걸지 않는 이상, 난 눈 옆이 가려진 채 질주하는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린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더 잘 읽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잘 알릴 수 있을까. 고민이 가득한 시기엔 내 부족한 능력에 대한 압박이 더욱 심해질 수 밖에 없다. 보이는 길이 없으니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인 냥 느껴진다.


이 조바심에 월요일 아침부터 내 CPU는 숨가쁘게 돌아갔고, 팬은 또다시 과부하를 두려워하며 시끄러운 박동으로 경고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에 몸부림치고 있자니 속이 답답해 나는 펜을 든다. 새로이 도전하는 인터뷰 영상을 만들기 위해 본 몇개의 레퍼런스 영상에 등장하는 성공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일을 즐기면서 해요!




내가 해내지 못한 걸 저리도 웃으면서 이야기하는 이들을 보니 약이 오르기도 하지만, 그 웃음 뒤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를 생각하니 금세 부푼 부아가 가라앉는다. 나 역시 이 일이 즐겁다. 즐거워서 시작했고, 즐거워서 다시 돌아왔고, 즐거워서 포기할 생각 역시 추호도 없다. 문제는 아직 즐거움보다 부담이 훨씬 앞선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꿈 혹은 인생이 달린 이 프로젝트들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살릴 수 있을지, 더 잘 알릴 수 있을지. 시간이 지나고 경험과 연륜이 쌓이면 조금 덜어낼 수 있을지. 그럼 쌓이는 동안 나를 스쳐지나갈 수많은 이야기들을 어쩌면 좋을지.


목을 뒤로 젖힌 채 쉬고 있는 시간, 또 다시 스멀스멀 기어오른 걱정들을 뒤로 한 채 그래도 즐기면서 하다 보면, 경험을 쌓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이 지긋지긋한 두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거란 기대로 마지막 한숨을 내쉬고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다. 막연한 나중으로 이 답답함을 미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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