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연이 Oct 21. 2017

갑자기 집이 그리워서

사실 집보다는 엄마가 그리웠다.

회사에서 판교역 쪽으로 걸어오는 길에는 50m 정도 되는 구불한 나무다리를 건넌다. 밑으로는 잔잔히 흘러가는 탄천과 규모는 작지만 꽤 다부지게 우거진 숲이 있다. 눈 따가운 네온 공해와 시끄럽게 오가는 자동차들의 매연 틈에서 거의 유일하게 흙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다. 바깥공기가 쐬고 싶어 터벅터벅 걸어오다 별 생각 없이 다리를 건넜는데 흙냄새가 화살처럼 스쳐갔다. 아주 잠시였지만 한 장면이 강하게 떠올랐다. 고향 집이었다. 뒷산 때문인지 문을 나서면 옅은 흙냄새가 느껴지는 우리 집. 아 그립긴 한가보다. 판교에서 울릉도가 떠오르다니 말이다. 




우리 집 앞은 아니고, 내가 울릉도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한 곳.


엄밀히 말하면 내 고향은 아니다. 엄마의 고향이지. 10살 때 우리 가족은 부산에서 울릉도로 이사를 갔다. 꼬박 10년을 채워 산 첫 동네라는 이유로 고작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로는 반증할 수 없게 이 곳을 내 고향으로 삼기로 했다. (사전적 의미에 맞는 내 고향은 경주다. 경주에선 2년 정도 살았고 당연히 기억은 없다.)


찰나의 흙냄새에서 뿌려진 고향의 향수는 이렇듯 재채기처럼 갑자기 찾아온다. 한 여름날, 아스팔트 길을 걷다 너무 더워 그대로 뛰어가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을 때, 저녁 메뉴를 고민하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할머니의 오징어 된장찌개 맛이 떠오를 때, 아침에 눈을 떴는데 기름값을 아끼느라 보일러를 틀지 않아 이불 밖 공기가 얼음송곳처럼 날카로울 때. 번뜩 여름에도 찬 데서 자면 안 된다며 보일러를 틀어주던 엄마가 떠오른다. 그럴 때면 인생이 참 부질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엄마 품에서 벗어나 이 고생을 하고 있는지. 


지난 5월에는 가정의 달답게 적절히 찾아온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집에 갔다. 엄마에겐 비밀로 하고 어버이날에 맞춰 배를 탄 것이다. 생각해보니 6년 만이었다. 어버이날을 엄마랑 보낸 게. 만약 내가 그때 마음을 돌리지 않았더라면 아마 9년 만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아찔해졌다. 


야심차게 용돈박스도 준비했다.




울릉도는 포항에서 217km, (지방 사람들은 자기 지역과 연관된 이런 정보에 훤하다.) 배로만 육지와 3시간 떨어진 곳이라 특히 교육환경이 열악하다. 고등학교에선 문과 밖에 선택할 수 없고, 배울 수 있는 사회 과목 역시 정해져 있다. 수학 선생님이 미술을 함께 가르치실 정도니 말 다했다. 아무튼 이런 곳이라 중학교 때 성적이 좋았던 나는 경주여고로 진학하려고 했었다. 엄마의 제안이었다. 선생님도 그 편이 좋을 거라고 하셨고 차근차근 진학 절차를 밟고 있었다. 진학과 동시에 집을 떠날 마음의 준비도 해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들어와 보니 엄마가 울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더니 안 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품 안에 계속 두려고 해도 스무 살이 되면 어차피 떠나보내야 하는데 3년이나 일찍 나를 떠나보낼 자신이 없다며 엄마는 내 앞에서 엉엉 울었다. 복잡한 집안 사정을 구구절절 읊지 않아도 그 자체로 슬픈 일이다. 엄마가 딸을 떠나보낸다는 건. 




내가 졸업한 울릉초등학교. 처음으로 엄마랑 같이 투표도 했다.


결국 나는 울릉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엄마의 후배가 되어 엄마와 같은 교복을 입었다. 딱 3년 후, 수능을 거하게 말아먹었을 때 엄마는 다시 나를 안고 그때처럼 울었다. 미안하다고. 엄마 때문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을 결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아직도 밤이면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우는 난데 어느 때보다 촉촉한 감수성을 지녔던 여고생 시절, 엄마가 곁에 없다는 공허함보다 더 가슴 에이는 아픔은 내 삶에 없었을 것이다. 용기 내어 날 붙잡아준 엄마가 난 너무 고맙다. 


원래는 엄마 이야기를 쓸 요량이 아니었다. 울릉도 이야기나 하면서 고향의 추억을 떠올려볼 참이었는데, 아까 마신 장미향 짙게 베인 만천 원짜리 맥주 한 잔 덕분인지 장미를 닮은 엄마가 계속 떠오른다. 이럴 땐 그립단 이유로 무턱대고 전화하면 안 된다. "응 딸~" 하는 엄마의 다정한 목소리가 어김없이 눈물을 불러낼 것이다. 




언젠가 엄마가 그립지 않을 날이 올까? 만 번을 불러도 고스란히 내 눈가의 우물로 남을 당신. 바라건대 남은 평생을 가까이 있진 못해도, 함께 존재하는 시간만큼은 멀어지지 않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