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의 사랑이 듬뿍 담긴 이름
우리 아빠는 8남매의 막내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막둥이가 어여쁜 딸내미를 낳았으니 할아버지 입장에서는 내 존재가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기쁨이셨을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할아버지는 내 이름자에까지 애정을 가득 담아주셨다. 당신이 항상 애지중지하셨던 난도 담고, 반짝반짝 살아가라는 의미로 귀고리까지 담아주셨다. (아빠가 태몽으로 보석이 가득 담긴 나무를 본 것도 한 몫할 것이다.)그리하여 내 첫 이름은 난 난자에 귀고리 이자를 써 난이였다.
난이.
예쁜 이름이다. 좋은 의미를 더 갖다 붙이자면 난이는 공주의 순우리말이기도 하니 의미만 보아선 더할 나위없이 예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바로 내 성이 문 씨라는 것이다.
네? 못난이요? 이름이요?
아빠는 처음 이름을 받들고 너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고 했다. 할아버지 당신 딴에는 막내둥이를 위해 몇날 며칠을 고심하며 지으셨는데 그 앞에서 애 이름이 못난이가 뭐냐며 비웃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그 뜻을 받들자니 이 (아빠의 눈에는)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평생을 못난이라 놀림 받을게 뻔한 이름을 생에 첫 선물로 줄 수는 없었다. 난을 대신할 무언가를 찾아내야 했다.
찾아낸 것은 난 만큼이나 예쁜 연꽃이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할머니를 생각해보아도 이보다 더 적절한 글자는 없었다. 아르키메데스의 발견이 이런 것이었을까. 번뜻 연꽃을 떠올린 아빠는 듬직한 어깨에 나의 미래를 무겁게 짊어지고 할아버지를 찾아갔다. 평생 못난이라 놀림 받을 손녀의 설움을 은근히 설득하여 결국 이름을 바꾸는데 성공하였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애정과 엄마 아빠의 책임감으로 탄생한 이름, 연이를 얻게 되었다. 이 유쾌하면서도 짜릿한 탄생비화 덕분에 난 내 이름을 꽤나 좋아한다. 귀하디 귀한 막내 손녀가, 세상을 얻은듯한 기쁨을 안겨준 맏딸이 온화하면서 빛나는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 손녀 이름을 못난이로 지으랴고 했다는 할아버지가 재밌어서, 딸에게 못난이라는 낙인을 용납할 수 없어 반항 아닌 반항을 했다는 아빠의 사랑이 따뜻해서 몇 번이고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졸랐던 기억이 난다.
비록 이름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아 연희가 아니고 연 이- 요.' 하며 손가락으로 브이V 자를 그려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는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할아버지부터 아빠까지 2대의 사랑을 듬뿍이 받은 내 이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