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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Sep 24. 2017

카레 같은 도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딱히 특별힌 건 없는데 계속 생각나.

오스트리아는 내게 카레 같은 나라다. 엄청 특별하지는 않은데 잊을 만하면 떠올라 다시 가고 싶게 만든다. 나라 자체의 매력은 내가 방문했던 다른 나라에 비해 크게 특출나진 않았지만 아마 거기서 겪었던 에피소드들이 기억 깊이 자리하기 때문이 아닐까. 


오스트리아는 우리의 첫 유럽 여행의 첫 시작 지였다. 중간에 동선이 희한하게 엉켜 오스트리아 비엔나 > 체코 > 헝가리 > 다시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 잘츠부르크가 되어 최초로 2번 방문한 국가이기도 했다. 2번의 경유를 마치고 떡진 머리, 퉁퉁 부은 다리로 캐리어를 끌며 숙소를 찾아갔던 게 기억난다. 그때의 다짐도 기억난다. '돈 많이 벌어서 2번 경유하는 비행기표는 쳐다도 보지 않겠다.'


아무튼, 오늘이 그 날인 것 같다. 모처럼의 카레가 당기는 날. 첫 유럽 여행의 설렘과 교과서에서나 보던 걸작을 직접 마주했던 경이로움, 인생 처음으로 기차를 놓친 경험과 수묵화 같던 풍경 하나하나가 카레의 재료가 되어 내 오스트리아 추억을 완성시킨다.  




쇤부른 궁전


쇤부른에서 마주한 첫 유럽

첫날은 궁전 투어였다. 먼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이었다는 쇤부른 궁전으로 갔다. 유럽 제일의 명문가였던 합스부르크 가문이 지냈단 곳이라기에 그 규모도 남다르겠지 하는 마음에 지레 겁을 먹고 찾아갔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크게 위엄이랄 것이 없었다. 생각보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아 내심 실망하고 있던 차였다. 하지만 첫 관광지부터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들어가자!





유레카였다. 길도 영문도 모른 채 사람들이 걸어가던 울창한 숲길을 따라 그냥 걸었더니 궁전 뒤에 숨어있던 커다란 정원이 펼쳐졌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반전의 뒷모습이 나타나자 우리는 PD의 손짓에 억지 호응을 짜내는 방청객처럼 일동 와~ 하고 감탄을 날렸다. 이건 억지가 아니었다. 햇살은 두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 정도로 눈 부셨고, 공기는 양 옆으로 펼쳐진 숲 덕분에 맑기가 그지없었다. 아 이 정도면 귀족 할 만하겠다. 싶은 궁전이었다. 





꼭대기에 올랐다. 고작 언덕 높이였는데 막상 오르니 공기가 차가워진 것이 느껴졌다. 폐 틈으로 신선함이 마구 밀려들어왔다. 태양의 방해에도 포기하지 않고 오른 보람이 가득했다. 게다가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은 굉장했다.


우리 정말 유럽에 왔구나.


영화에서나 보단 주황색 지붕이었다. 그 후로 약 40일 동안 주야장천 보게 될 줄도 모르고, 그게 그렇게 신기해서 오랫동안 벤치에 앉아 그 모습을 눈에 담았다. 뜨거운 태양과 깨끗한 숨, 탁 트인 도시 경관. 그 삼위일체의 완벽한 순간을 충분히 즐기고 싶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


금빛이 내린다 샤랄라라라

다음은 벨베데레 궁전이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갔다. 그냥 클림트의 키스가 있는 곳, 그것만으로도 벨베데레는 방문할 가치가 있었다. 그런데 쇤부른 궁전에 이어, 그러나 조금 달리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궁전이 너무 예뻤다. 색색의 꽃과 잔디가 잘 정돈된 정원은 이미 보고 온 장면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분수가 쏟아지는 계단 하며, 하늘색과 어우러지는 민트색의 지붕 하며. 그렇게 궁전 앞 계단에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이 곳 유럽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구나 생각하며 또 한동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키스>를 마주한 충격은 대단했다. 아니 무슨 그림을 이렇게 그렸을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키스가 그려진 1000피스짜리 퍼즐을 사서 일주일 만에 완성시켜버릴 정도로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던 작품이었다. (정말 힘든 일이 있거나 잊고 싶은 기억이 있을 때 이 퍼즐을 추천한다. 배경을 끼워 맞추느라 정말이지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교과서에서 보았던 밋밋한 그림과는 차원이 달랐다. 금광에서 막 캐내 온 그림이 아닐까 할 정도로 번쩍번쩍거렸다. 가까이에서 봤다가, 멀리에서 봤다가. 배경도 봤다가, 두 남녀를 감싼 의상도 봤다가, 하단의 꽃밭도 봤다가. 금빛이 그득그득 묻어 있는 그 모습이 실감이 안 나서 넋을 놓고 바라봤다. 황홀한 작품이었다. 실제로 봤다는 경험 자체를 영광으로 만들어버린 작품이었다. 이후 다시 그 번쩍이는 금빛을 바라보고 싶어서 구글 아트 카메라 (세계 명화를 고화질로 보여주는 서비스)에 들어가 찾아봤지만 역시. 그 빛은 카메라 렌즈에는 담을 수 없는 것이었다. 기쁘면서도 아쉬웠다.




비엔나 구시가지


300년 전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까

벨베데레 궁 근처 식당에서 슈니첼로 배를 채우고, 비엔나의 밤을 맞이 하기 위해 시내를 찾았다. 구시가지는 관광지와 주민들로 한껏 붐볐다. 식당 앞 즐비한 야외 테이블은 저녁 손님들로 꽉 채워지고 있었고, 슈테판 성당 주변의 기념품 샵들도 여행객들의 밀려드는 발걸음에 들떠있었다. 친구들과 잠깐 떨어져 슈테판 성당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해 질 녘 하늘 위로 우뚝 솟아 붉은빛을 온몸에 감싸고 있던 그곳을 제대로 만나기 위해서였다.





구시가지의 한가운데 우뚝 솟아 올라 위용을 뽐내는 이 슈테판 성당은 빈의 혼(魂)이라 불리기도 한다. 빈 시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큰 화재로 소실되었을 때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성금 모금으로 현재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아직까지도 시민들의 성금으로 곳곳에 보수가 진행 중이며 덕분에 잘 유지되고 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도 사진 속 성당의 반대편은 공사가 한창이었다. 온전히 복원된 모습을 다 보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그만큼 사랑을 받아 8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건강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다. 





슈테판 대성당은 모차르트의 결혼식과 장례식이 치러진 곳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인물의 중대사를, 그것도 두 번이나 함께 한 곳. 알쓸신잡에서 정재승 교수님이 수학여행으로 통영을 방문했을 때, 친구들과 이순신 장군의 숨결을 우리가 느낄 수 있을까 를 두고 친구들과 계산을 해봤다던 장면이 떠오른다. 수포자인 나는 숨결을 계산할 능력까진 없었고, 다만 손길을 느낄 수 있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 슈테판 성당의 벽에 손을 맞대고 스윽 걸어나갔었다. 그것만으로 전율이었다. 제대로 배운 적도 없는 인물이었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보고, 들었던 이의 세월을 함께 했던 곳에 내가 와있다는 것, 느꼈다는 것. 짜릿한 묘미였다.




빈 호프부르크 왕궁

I’m following the map

슈테판 성당을 둘러보고 야경을 즐기기 위해 호프부르크 왕궁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셋이 쪼르르 걸으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푸르렀던 하늘에 어둠이 지기 시작했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본격적으로 빛나는 왕궁을 제대로 보기 위해 광장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곳 앞을 다녀갔다. 연인의 인생 샷을 찍어주기 위해 이리저리 다니는 남자 친구, 손자의 놀이 장단에 맞추어 주며 인자한 웃음을 띄고 있던 머리 희끗한 노부부, 이 곳의 상징으로 보였던 동상 앞에서 함박웃음을 지며 사진을 찍던 단체 관광객들. 여행의 행복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것처럼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이때 내 폰에서 흘러나온 노래가 다름 아닌 마룬파이브의 <maps>였다.





So I’m following the map that leads to you
The map that leads to you
Ain't nothing I can do
The map that leads to you
Following, following, following to you


그곳에 멍하니 앉아 되돌아보니 참 이상한 시작이었다. 내가 준비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시작된 여행이었다. 언젠가 가야지 가야지 막연히 생각해왔지만 언제, 어떻게 떠나야 할지는 전혀 몰랐다. 그냥 '나 올해 유럽 갈 거야'라고 친구들에게 내뱉은 한 마디가 '그럼 나도 갈래'로 돌아왔다. 그러고 일주일이 안돼서 티켓까지 끊었다. 어디로 IN 하고 OUT 하는 게 좋은지 제대로 찾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싼 표로 끊어서 루트가 엉키는 고생도 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정신없이 여기로 이끈 건지, 그렇게 어둠이 이끄는 밤을 따라 돌아보았다. 




정답은 당연히 나였다. 나에겐 늘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열정 비슷한 것이 있었다. 어릴 적 섬이라는 사람도, 땅도, 기회도 한정된 곳에서 자라서 그런 것일까? 스무 살부터 매년 다른 동아리를 들어 기타도 배우고 봉사활동도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렸다. 2주에 한 번 서울을 당일치기로 오가야 하는 조건에서도 대외활동을 하며 신기한 경험들을 쌓아갔다. 그 열망의 화룡점정이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것을 좇는 열정 뒤에는 늘 두려움이 따랐다. 여전히 새 친구를 사귀는 건 어려웠고, 시도하기 전 실패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유럽 여행까지 다녀오면 그 두려움이 싹 가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 기대는 무너졌다. 여전히 사람을 사귀는 건 어렵고, 잘못된 결과에 지레 겁을 먹는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게 나라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려워하는 만큼 친해진 사람과는 마음을 깊이 나누고, 겁을 먹는 만큼 신중하게 행동한다. 여행으로 나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나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Following the map. 나에게 map은 곧 나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다 보면 그 끝에 꼭 내가 원하는 답이 있으리란 보장은 없지만 그 길을 걸었단 사실을 후회하게 만들 답은 없을 거란 걸, 비엔나에서 시작했던 첫 여행을 통해 배웠다. 아마 이 때문에 문득문득 다시 비엔나가 그리워지는 게 아닐까. 


이 날, 이 광장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그 생경한 기분은 평생 다시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첫 여행의 설렘과 완벽한 이방인이 되었다는 두려움, 앞으로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그 이방인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낯섦, 지금과 여행 후는 변해있어야 한다는 강박, 좋은 사람이 되어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조바심이 버무려진 스물셋의 사춘기 고민은 이제 옛 것이 되었으니. 하지만 다시 이 곳에 가면 분명 또 다른 고민들이 밀려들겠지. 그 순간조차 벌써 그립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밤이다. 내 첫 여행의 두려움을 반쯤은 지워준 두 친구와 우리의 청춘을 흩뿌리며 걸었던 이 날의 밤거리가 떠오른다. 언젠가 갑자기 카레가 당겨 마트로 뛰쳐나갔던 것처럼 그렇게 비엔나로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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