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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Jul 02. 2018

우리들의 치유하는 시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바닷마을 다이어리>


출처 : 네이버 영화

어릴 적 쓴 일기장을 들춰보는 느낌이었다. 남쪽으로 넓게 난 창에서 얼굴을 고스란히 비추는 햇살이 들어오고, 그 틈에 바다 냄새를 품은 바람이 밀려 들어와 무딘 아침을 깨운다. 바닷마을 특유의 습함은 어찌할 도리가 없어 애꿎은 선풍기만 분주하게 돌려본다. 울릉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와 가마쿠라에 사는 네 자매의 아침이 어딘가 닮았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는 세 자매가 오래전 엄마와 헤어진 후 다른 곳에서 가정을 꾸린 아빠의 장례식에 찾아가는 여정으로 시작한다. 아빠를 향한 미움이나 미련 따위의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 그저 딸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찾아간 그곳에서 뜻밖의 인연을 만난다. 이복 여동생인 스즈다. 세상에서 가장 질긴 인연으로 묶였기 때문일까 세 언니는 아빠의 장례식 이후 혼자 남겨질 여동생이 마냥 안타깝기만 하다. 헤어지는 기차역에서 언니들은 동생에게 터를 잡고 있던 바닷마을에서 함께 살기를 권유한다. 외로웠던 스즈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하지만 ‘이복’이라는 관계의 이질감은 쉽게 넘을 수 있는 벽이 아니었다. 스즈는 언니들에게 옅게 드리워진 아빠의 그림자를 마주하고 죄책감을 느낀다. 언니들 역시 점점 움츠러드는 스즈를 발견한다. 그래도 그들은 한 식탁에 둘러앉아 아침밥을 차려 먹는다. 출근 시간을 바투하고 전차 역으로 뛰어가 언니는 출근을, 동생은 등교를 한다. 해가 질 때쯤엔 집으로 돌아와 술을 나눠 마시곤 다시 아침을 맞는다. 아버지의 끝을 시작으로 새롭게 이어진 네 자매의 인연은 수많은 아침을 함께 보내며 더욱 짙어진다. 하루 동안 생겨난 생채기는 깊은 밤을 지나 아침이 되면 사라진다. 어떠한 상처라 할지라도 그렇게 몇 번의 아침이 지나고 나면 치유된다. 언니들과 스즈가 그러했고, 내가 그러했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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