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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Oct 01. 2018

책을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런 일은 디테일에서 승부가 난다.'

올해 1월쯤인가 회사 구석에 있는 소파에 앉아 겨울스럽지 않게 따뜻한 볕을 맞으며 일하고 있을 즈음이었다. 대표님이 스윽 오시더니 '문연이 책 프로젝트해볼래?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하고 물어보셨다. 사실 담당자가 따로 있었는데 어찌어찌한 사정으로 인해 홀딩되고 있던 프로젝트였다. 그렇게 마케팅실 실장님과 함께 책 프로젝트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가끔 원고를 보다 '아 그때 그 소파에 앉아 있는 게 아니었는데..' 생각하기도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 거기 앉아있길 참 잘했다 싶다. 아 거창하게 시작했지만 원고를 직접 쓴 건 아니었고 어느 정도의 뼈대가 완성된 상태에서 좀 더 보기 좋게, 깔끔하게 빚어내는 것이 나의 업무였다. 




어쩌면 우리 시대 크리에이티브의 시작일지도 모를 러브장..


사실 초딩 때 유행하던 러브장(...)을 제외하곤 내 손으로 책 한 권을 만들어 본 기억이 없다. 책 읽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니 내 이름이 적힌 버젓한 책 한 권 만들어보는 것이 늘 로망이긴 했지만 책은 내게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사리 도전하기 힘든 분야였다. 실제로 책을 만들어보니 역시나 예상대로. 하지만 다음에도 기회가 생긴다면 그땐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또다시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위해 지난 9개월간 책을 만들며 느낀 점을 기록해두려 한다.






첫 번째, 첫 틀을 잘 만들자.


무슨 일이든 첫 단추를 잘못 끼면 개고생 한다. 책 역시 마찬가지. 책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보니 일정이 뒤죽박죽 섞이기도 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을 때도 있었다. 덕분에 다음엔 어느 정도의 이슈에 대비할 수 있는 현실적인 타임라인 틀을 미리 짜두고 시작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피드백 할 때마다 인쇄해서 보느라 종이를 많이 써서 나무에게 미안했다..


미리 준비한 타임라인에 맞게 원고를 작성한 후, 피드백을 주고받고, 완성된 원고에 걸맞은 디자인을 뽑아내는 것. 이렇게 텍스트로만 보면 한 문장 안에 담기는 간단한 과정이지만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이 과정에 1년 여의 시간을 들여야 했다. 일단은 투자 트렌드를 담은 책이었기 때문에 '트렌드'에 뒤쳐져선 안됐다. 그만큼 빠른 진행이 중요했지만 첫 틀을 잘 짜두지 못한 탓에 예상보다 출판 일정이 많이 지연되었다. 이 과정에서 트렌드를 뒷받침하는 프로젝트 사례가 몇 번 수정되었다. 


편집자와의 피드백은 족히 스무 번은 오갔고, 대부분의 피드백이 영양가 있는 것들이었지만 미리 준비를 잘 해두었더라면 생략할 수 있는 과정도 분명 있었다. 책 만들 때의 시간은 물리적 시간에 비용과 에너지까지 포함된 것이라 첫 틀을 잘 만들어 비효율적인 과정에 허튼 힘을 쏟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두 번째, 삼백 번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디테일, 디테일, 디테일.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스스로에게 가장 실망한 부분이기도 하고, 가장 크게 얻은 부분이기도 하다. 일단 이 책은 와디즈의 '투자' 비즈니스에 관한 책이고, 나는 '리워드' 비즈니스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이 책에선 크게 현재의 투자 트렌드와 그 트렌드를 뒷받침하는 투자 크라우드펀딩 사례를 보여주고, 각 트렌드 소개가 끝날 때마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의 특징들을 짧게 소개한다. 


더 선명하게 보고 싶으시다면 직접 구매를 추천합니다 :) 


투자 마케팅을 담당한 적이 있긴 했지만 짧은 시간이었기 때문에 혼자 피드백을 진행하는 것에 한계가 있어 투자 업무를 하시는 프로님들께도 피드백을 요청드렸었다. 문제는 거기서 끝냈다는 점이다. '나는 투자 쪽은 잘 모르니까' '투자 업무 하시는 분들이 알아서 잘 봐주시겠지' 했던 안일함. 어찌 되었든 나는 이 책의 출판을 맡았고, 책임을 지게 된 이상 책 속의 내용은 따로 공부하고, 찾아보고, 물어보면서 끝까지 팩트 체크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트렌드와 사례 파트만 챙겨보았고,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을 소개해주는 부분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결국 대표님께서 펜을 들고 일일이 잘못된 점을 찾아주시고, 수정해주셨다. 피드백 말미에 '결국 이런 일은 디테일에서 승부가 난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머리가 띵했다. 부끄럽기도 했고. 덕분에 그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 문장이면 괜찮겠다' 했던 것들도 일일이 찾아내 더 잘 읽히는 문장으로 수정했다. 원고 피드백 마지막 날에는 여기서 더 틀린 게 있으면 망신 망신 대망신이다 싶어 퇴근하는 길, 지하철 안에서 원고를 확인하다가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치기도 했다. 디테일에는 단위가 없다. 한계도 없다. 더 많이 보고 고치고 물어뜯는 것만이 능사다.




세 번째, 예상치 못한 일은 예상치 못하게 온다. 


메일을 열어보기가 두려웠다. 카톡창을 여는 것도. 오늘은 또 어떤 문제가 있을까, 또 무엇을 고쳐야 할까. 출판 준비 과정에서 기업 인터뷰를 다시 진행하고, 원래 기획했던 원고의 순서를 바꾸고, 기업에게서 받았던 이미지가 원고와 어울리지 않아 다시 요청해 바꾸고, 폰트 사이즈와 여백을 조절하고, 페이지 수를 맞추는 일. 애초에 틀을 잘 짰더라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예상치 못한 일이 숱하게 일어났다. 


아주 사사롭고 사소해 보여도 완성도를 결정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도 없다. 다시 여기저기 연락을 돌리고, 컨펌을 받고, 에디터와 수정을 거듭해야 하는 일이지만 나는 이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정의하기로 했다. 




최종 원고 수정 직전 발견한 이미지 사이 여백. 컴퓨터로 볼 땐 잘 안보여서 아찔아찔


글과 사진은 프로그램으로 편집하지만 실제로는 물성을 띈 종이에 인쇄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괴리를 줄이는 일은 사람이 직접 꼼꼼히 살피고 고치기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표지까지 인쇄한 버전을 받았는데 표지 색이 너무 보라색 빛이 나 당황했고, 이미지 사이에 여백이 보여 움찔했다. 이보다 더 아찔한 순간도 몇 번 있었고. 


세상에 예상대로 잘 풀리는 건 휴지 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예상치 못한 일은 늘 예상치 못하게 오는 법이니까 그럴 때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경험을 많이 쌓아두어야겠구나 하고도 생각했다.




강남 교보에서 발견! 겉표지가 위로 올라가 있길래 다시 예쁘게 입혀주고 왔다 뿌듯 v^-^v


무사히 나오기만 해라 생각했던 책이 막상 나오니 '이제 드디어 끝이구나! 그동안 즐.. 거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싶기보다 '어이구 이케 이쁘게 잘 나와쩌 오구오구'하는 벅찬 감정이 먼저 들어 신기했다. 며칠 전에는 회사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께 판매하려고 반신반의하며 10권만 챙겨갔는데 무려 8분이나 사가셨다. 너무 감사해서 내 카드로 결제해드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번 프로젝트로 크게 디테일을 놓치지 말자는 책임감과 일정은 예상보다 늦어졌지만 차라리 잘 된 일일 수도 있다는 전화위복의 긍정력을 함께 얻었다. 책을 만드는 사람에 대한 동경은 존경에 가깝게 커졌고, 언젠가 내 책을 만들 수 있겠단 자신감도 조금 얹어졌다. 


개인적으로는 '시대를 바꾸는 투자' 서문을 좋아하는데 피드백하느라 열 번을 넘게 보면서도 늘 정독한 부분이다.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한 이유, 크라우드펀딩이라는 비즈니스를 믿는 이유, 더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모두 담긴 글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다시 처음 와디즈에 왔을 때의 초심을 바라볼 수도 있었다.


이 모든 생각들이 책 한 권을 만들며 나온 것이라니 역시 책은 지혜의 샘물이요, 경험의 에스컬레이터다. 처음부터 참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다음에도 기회가 생긴다면 더 잘 해내야지 하는 다짐으로 오늘의 소회를 갈음한다.  









막간 홍보) 원고 피드백하면서 스무 번도 넘게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나름 재미있었다..! 변화하고 있는 투자 트렌드는 물론 비즈니스 흐름까지 살펴볼 수 있는 기특한 책이니 관심있으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길 :D




@door__ope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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