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쓰케 마사노부의 강연을 듣고
우리 플랫폼에 들어오는 프로젝트가 많아지고 그 카테고리나 퀄리티도 천차만별로 다양해지면서 큐레이션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앞으로의 큐레이션은 어떻게 변할까 그 답을 듣기 위해 찾았던 강의를 간추려보았다.
#큐레이션이란?
마사노부는 큐레이션의 방식과 혁신이 브랜드를 보여줄 수 있다며 (츠타야처럼) 큐레이션의 정의부터 들려주었다.
사실 큐레이션은 미술 용어였으며 최근 정보가 넘쳐나자 양질의 정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큐레이션이란 용어가 디지털 사회에서도 쓰이게 되었다는 것. 미디어(플랫폼)의 가치를 올리기 위해서는 좋은 큐레이션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동시에 그는 큐레이션이란 즉 편집과도 같다고 말했다. 편집에는 3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건 기획과 사람 모으기, 물건 만들기였다.
3만평방미터의 땅에 건물을 세우든 책을 만들든 무엇인가 손에 잡히는 것을 만들고 그 일에 맞는 사람들을 찾아 통합하는 작업이 바로 편집이고 큐레이션이라고.
그런 의미에서 편집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 스스로는 스타일이라 할 만한 것도 없고 춤도 못추고 사진도 못찍지만 그런 일을 잘 하는 사람들을 모아 작품을 만들었다고. 결국 편집자 (큐레이터)에게 중요한 역량은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이라고 했다.
마사노부는 렉서스, 도요타, 삿포로부동산들과 함께 브랜딩 작업을 했고 각종 잡지를 직접 발행하며 편집 능력 (큐레이션 능력) 을 증명해왔다.
그는 사진, 예술을 좋아해서 늘 관련 잡지를 손에 쥐고 살았는데 어느 날 이태리 잡지 내지의 구석에 있는 한 작가의 그림을 발견하고 그녀의 작품을 담은 책을 내기 위해 뉴욕으로 날아갔다.
당시 그 작가는 다음 달 낼 방세도 없이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마사노부의 설득에 의해 책을 내고 몇 년 뒤, 작품 한 점에 5억원의 가치를 내는 작가로 성장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어렵고 무거운 문화 비평지를 팬톤 컬러를 활용해 가볍고 화사하게 만들거나 몸이 좋지 않아 식생활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비건북을 만들어 예상치 못하게 높은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고.
그의 말대로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늘 감각적으로 느끼고 실행하는 것이 결국 좋은 큐레이션을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큐레이션의 미래
<물욕 없는 시대>라는 책을 지은 이유도 언급했다. 비로소 경제의 시대가 끝나고 문화의 시대, 즉 교양의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시작으로 유럽과 아시아의 경제를 살펴보면 소득 격차가 벌어지고 금리가 낮아졌다. 열심히 일만 한다고 부를 모을 수 있는 예전의 시대와 달라진 지금, 사람들의 관심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모은 돈을 잘 써서 삶의 질을 높이는 것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뼈빠지게 일해도 집 못 살 거, 욜로 마인드로 소확행이나 누리면서 살고자 하는 최근 젊은이들의 마인드와 일맥상통하는 듯 하다.
다가올 교양의 시대에서 ‘교양’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교양은 세상으로부터 좋은 인풋을 받아서 어떻게 세상에 내놓을지 고민하는 일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교양의 가장 알맞은 번역은 liberal arts 인데 여기서 liberal은 자유를 의미하고 art는 기술을 의미한다. 즉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자유가 없다는 것은 결국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의미이며, 반대로 교양이 있다는 것은 내가 내일 무엇을 할지 고를 수 있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좋은 정보가 있어야만 좋은 선택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큐레이션이 점차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큐레이션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질까?
나는 최근 츠타야식 큐레이션으로 대변되는, 라이프스타일과 관련된 특정 카테고리를 정하고 그에 맞는 다양한 제품을 함께 추천하는 큐레이션이 처음 등장할 때는 혁신적으로 느껴졌지만 점차 진부해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다음의 큐레이션은 어떤 흐름으로 변화할지에 대한 마사노부의 고견이 듣고 싶었다. (최다 좋아요 를 받은 걸로 보아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 역시 궁금했던 듯)
그는 AI가 발달하면서 빅데이터가 모여 보다 정확한 취향 파악과 추천 알고리즘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사람의 직관’. 아마존에서도 아마존 빅데이터가 추천하는 책과 서점 직원이 추천하는 책을 동시에 알려주고 스포티파이 역시 같은 방향.
이유는 빅데이터의 추천에는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대부분 ‘의외성’이 발생할 때이고, 이 의외의 것을 사람들이 재미있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것은 사람만이 가진 능력이기 때문이다.
이런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오감을 잘 활용해야 한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먹고 손으로 만지고 코로 맡으며 모든 감각을 열어두어 세상을 더 넓은 방향으로 느끼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 대목에서 예전에 김영하 작가가 말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오감을 활용하면서 생각하고 의외의 단어들을 이어 붙이면 재미있는 글이 탄생한다는 것.
바퀴벌레는 (징그럽다.) 대신 (반짝거린다.) 라고 말하면 그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듯이.
급변하는 시대, 큐레이션의 대부분의 역할은 AI에게 주어지겠지만 정확함 대신 흥미로움을 만들고 사람을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내는 것은 역시나 사람의 몫이며, 그 몫을 다하기 위해 큐레이터는 늘 오감을 열어두고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 즉 까다로운 입맛이란 표면 뒤에 배척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은 좋은 편집자가 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서는 다양한 세상의 일들과 것들을 좋다/싫다로 재단하지 않고 늘 궁금증을 가지며 왜? 라는 질문으로 바라보고 늘 어떤 의외성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싫어 한겨울에 그걸 왜 먹어’보다 ‘난 아아는 별론데 저 사람은 왜 이 겨울에 저걸 먹을까 이유가 뭐지’ 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큐레이션과 브랜딩의 상관관계
최근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용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사람들이 개개인의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20세기 횡행하던 제품의 ‘성능’과 ‘가격’의 가치가 붕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만 봐도 제품별로 성능과 가격의 차이는 크지 않다.
이들이 비슷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을 때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하는 건 결국 브랜드. 제품의 스토리와 철학이다. (이 부분에서 어떤 희열이 느껴졌다. ‘최저가’ 대신 ‘스토리’가 주목받을 것이라는, 내가 메이커들에게 줄곧 이야기 해왔던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확신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던 대목이었기에.)
최근 현대인들의 방에는 물건이 너무 많아 더이상 ‘필요한 것’이 없게 되었다. 그런 현대인의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서는 ‘라이프 스타일’의 철학을 강조해야 한다.
즉 제품이 아닌 컨셉을 팔아야 한다는 것. 성능과 가격 위주였던 제품 소개는 이제 물건을 제공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방향으로 가야한다. ‘세계관’을 형성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애착을 느끼는 브랜드를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하냐는 클라이언트들의 물음에 자신은 늘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만질 수 있는 것을 만드세요.”
모든 포유류는 만질 수 있는 것에 애착을 느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보고 듣는 것에 애착을 느낀다고 생각하기 쉬운 영화팬들의 수집능력은 엄청나다. 이들은 영상을 손에 잡히기 쉬운 형태로 만든 블루레이, DVD 등을 수집하는 일에 상당한 집착을 보인다.
그는 앞서 CJ와 함께 기획하는 모리빌딩 도시 기획 소개 부분에서 아마존처럼 온라인 세계가 발달할수록 오프라인에 대한 향수와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대단한 통찰같아 보이지만 실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가상의 세계가 커질수록 사람들은 본능적인 이질감과 위기감을 느낄 것이고 그럴 수록 손에 잡히며 직접 체험(경험)할 수 있는 아날로그적인 것에 더욱 열광할 것이다.
이외에도 그의 작업 과정을 보면, 그리고 편집의 요소에 관해 언급한 것을 보면 꼭 ‘물성이 있는 것’이 들어있었다.
앞으로의 큐레이션에서 살아남는 브랜드는 아마 온라인의 편리함과 오프라인의 경험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저만의 스토리로 사람들의 감성을 터치하는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