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츠에서 다녀온 아쉬움 가득했던 오스트리아 수도 빈(Wien)
그라츠의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기차역으로 향했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은 아직 잠들어 있었고, 가벼운 설렘이 차창 너머로 스며들었다.
당초 계획엔 없던 빈(Wien)으로의 짧은 여정이다.
오스트리아에 있으면서 빈을 외면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웠다.
빈에 도착하여 트램을 타고 국립 오페라극장 인근에서 내렸다.
겨울 아침의 도시는 고요했고, 오래된 건축물들은 마치 오랜 시간 속에서 숨을 쉬고 있는 듯, 말없이 우리를 맞았다.
길을 걷다 문득 길게 늘어선 줄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머무는 그곳은 다름 아닌 ”카페 자허“였고, 자허 토르테를 맛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한겨울 아침부터 줄을 서 있었고, 특히 한국인 여행객들이 많이 보였다.
궁금했지만, 줄이 너무 길어 포기하였다.
근처 카페들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카페에는 여행자들로 북적였다.
대신에 주변의 고즈넉한 알베르티나 현대 미술관으로 향했다.
알베르티나 현대 미술관. 잠시 들여다본 내부에서는 샤갈의 전시가 열리고 있었지만, 빈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 역시나 포기하였다.
알베르티나 현대 미술관에서 오페라 하우스를 가보았다.
오페라극장 주변에는 붉은 외투를 입은 이들이 음악회 티켓을 팔고 있었는데 정식 판매처인 줄 알았으나 나중에 듣자니 그들은 암표상들이었다.
낯선 도시의 낯익은 속임수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왕궁정원을 지나 합스부르크 왕궁에 다다랐다.
한때 유럽의 역사를 쥐락펴락했던 명문 가문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곳으로 수백 년의 위엄이 건물 곳곳에 깃들어 있는 듯했다.
Sisi 박물관, 스페인 승마학교,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지만, 시간 때문에 그저 눈으로만 바라보았다.
왕궁을 뒤로하고 걷다 다시 자허 카페 쪽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긴 줄이 서 있었다.
다만, 그 옆의 작은 공간 ”자허 샬롱“이 눈에 들어왔다.
조용하고 아담한 다행히 줄이 길지 않아 약 10여분을 기다린 뒤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자허 토르테, 비엔나커피, 그리고 비엔나소시지를 주문했다.
달콤한 초콜릿이 입 안에서 천천히 녹았지만, 기대했던 감동은 생각보다 덤덤했다.
지나치게 달았고, 어쩌면 줄을 선 시간만큼의 맛은 아니었다.
한국의 카페에서도 더 섬세하고 깊은 디저트를 맛본 적이 많았기에, 유명세와 만족도는 항상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자허 샬롱을 나와 그라벤 거리로 발길을 옮겼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 거리 곳곳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어깨를 맞대고 있었다.
그 길목에서, 바닥에 분필로 세계 각국의 국기를 그리는 거리 예술가를 만났다.
여행객들은 자신의 국기를 찾으면 조심스레 동전을 내려놓았다.
태극기를 찾지 못해 잠시 머물렀다가 슈테판 성당을 향해 걸었다.
성당 앞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티켓을 팔던 암표상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우뚝 선 슈테판 성당은 웅장하였다.
고딕의 화려함과 세월의 무게가 겹겹이 쌓인 벽은,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성당 안에 들어서자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성당 안을 둘러보는데 어린이 성가대가 나타나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는 낯설었지만 아이들의 목소리는 너무나 맑았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은 천사같았다.
성당을 나와 트램을 타러 걷는데 다시 거리 예술가를 만났다.
그리곤 많은 국기들 사이에 드디어 태극기를 발견하였고, 반가운 마음에 동전을 올려놓고서 벨베데레 궁전으로 향했다.
궁전 앞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었다.
잠시 둘러보고서 궁전 내부에 들어가기 위해 매표소 앞에 가자 당일 입장권은 이미 매진이었다.
클림트의 ”키스“를 포함해 여러 작품들을 눈앞에 둘 수 없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다. 미리 예매하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었다.
궁전 앞 정원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야외라고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보기가 좋지 않았다.
벨베데레 궁전을 마지막으로 그라츠로 돌아가야 한다.
쇤브룬 궁전, 박물관 지구 등을 가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다음을 기약해야만 할 것 같았다.
잘츠부르크를 떠날 때엔 아쉬움이 없었는데, 빈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서 그라츠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