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기오염 도시인 자그레브와 블레드 호수

최악의 대기오염 도시인 자그레브와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

by 머슴농부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를 거쳐 블레드 호수(Lake Bled)를 다녀오기 위해 이른 아침에 버스터미널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자그레브의 아침 거리는 앞을 보기 힘들 정도로 온통 뿌옇게 뒤덮여 있었다.

처음엔 아침 안개라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매캐한 냄새가 코끝을 찌르기 시작했고, 이내 그것이 단순한 안개가 아니라 스모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색해 보니 자그레브의 대기질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마스크를 챙기지 않은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여러 도시를 여행해 봤지만, 자그레브의 대기오염은 단연 최악이었다.


버스가 출발해 도심을 벗어나자 서서히 스모그가 걷히기 시작했다.

잿빛 하늘이 서서히 맑아지는 것이 마치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그러나 류블랴나에 도착하자, 같은 풍경이 다시 펼쳐졌다.

이곳 역시 스모그에 잠겨 있었다.

도시는 눈에 덮여 있었고,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매캐한 현실이 느껴졌다.


잠시 류블랴나 시내를 둘러보며, 왜 이 지역들이 겨울마다 심각한 대기오염을 겪는지 찾아보았다.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1. 저품질 연료의 사용


많은 가구에서 난방을 위해 석탄, 갈탄, 나무, 심지어 생활 폐기물을 태운다.

특히 저소득층 지역에서는 저렴한 연료를 사용하다 보니 오염이 심각해진다.

2. 노후된 발전소와 산업시설


여전히 석탄 발전소에 의존하는 국가가 많고, 오래된 산업시설에서는 오염물질 정화 장치가 부족하다.

3. 자동차 배출가스


중고 디젤 차량이 많으며, 배출가스 규제도 서유럽보다 느슨하다.

4. 지리적·기후적 요인


겨울철 기온 역전 현상으로 오염물질이 지표면에 머물며, 분지 지형은 공기 흐름을 막는다.

5. 정부 정책과 인프라 부족


친환경 에너지 전환이 더디고, 대기오염 모니터링이나 대응 투자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동유럽의 겨울은 종종 회색빛 스모그에 잠기게 된다.


동유럽의 낭만적인 겨울 여행도, 이런 현실을 감안해 계획해야 함을 실감했다.


류블랴나의 중심인 프란치스코 광장에 도착했다.

도시의 첫인상은 다소 쓸쓸했다.

건물은 낡고 거리는 활기를 잃은 듯 보였다.


크고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지만, 류블라니차 강을 가로지르는 트리플 브리지와 드래건 브리지, 도살자의 다리는 도시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시간이 부족해 류블랴나 성은 포기해야 했다.

곧 블레드 호수행 버스에 올랐다.

한 시간에 세 번꼴로 출발하는 만큼 교통은 편리했다.


약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블레드 버스 정류장에서 조금만 걸으면, 마침내 블레드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관광지인 블레드 호수는 알프스 자락에 있다.


북쪽 절벽 위에는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성 중 하나인 블레드 성(Bled Castle)이 자리하고 있다.

햇살이 따스한 덕분에 호숫가의 카페는 사람들로 붐볐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모두가 여유로웠다.

호수를 따라 걷는 산책로는 평탄하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호수 중앙엔 슬로베니아 유일의 섬인 블레드 섬(Bled Island)이 있다.


섬 위에는 성모승천교회가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고, 배를 타고 섬을 찾는 이들도 많다.

포토존에서는 교회를 배경으로 추억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호숫가에는 간단한 먹거리를 파는 시장도 열려 있었다.

짧은 산책을 마친 뒤, 다시 류블랴나로 돌아왔다.

자그레브행 버스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버스터미널 근처를 둘러봤다.


버스터미널은 류블랴나 기차역 바로 옆에 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한국 음식점도 있었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지 현지인이 운영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기오염이 짙게 깔린 자그레브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크로아티아 수도 자그레브(Zagre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