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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보 시내에서 만난 식민의 그림자

이리저리 잠시 둘러본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시내 풍경

by 머슴농부


낮잠에서 깨어나니 창문 너머로 다시 쏟아지는 열기 속에 공기가 묵직했다.


숙소 직원에게 콜롬보 시내에서 가볼 만한 곳을 묻자 강가라마야 사원(Gangaramaya Temple)을 추천해 주었다.


툭툭 기사와 잠시 흥정을 마친 뒤 사원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지만, 도착하자마자 사원 앞은 이미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사원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첫인상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장식은 많았지만 어딘가 정리되지 않은 듯 어수선했고, 조화보다는 혼잡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콜롬보에서 가장 유명한 사원이라지만 내 눈에는 왠지 허술하게 느껴졌다.

사원을 나와 숙소 쪽으로 걸어가며 도시의 공기를 다시 느꼈다.


의외로 콜롬보의 대기오염은 심했다.


오래된 버스와 자동차, 그리고 끊임없이 오가는 툭툭이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이 도시를 덮고 있었다.


이제 여행의 필수품은 마스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끗할 것이라 막연히 기대했던 스리랑카도 동유럽이나 인도 못지않게 오염의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걷던 중, 한 간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Police Station Slave Island”

뜻밖의 단어 조합이었다.

섬뜩한 느낌이 들었고, 자연스레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숙소로 돌아와 물어보니 ‘Slave Island’는 지역 이름이라고 했다.


17~18세기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끌려온 노예들을 가두고 통제하던 곳에서 비롯된 이름이라 했다.


지금은 평범한 지역 이름이 되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비극과 식민의 상흔이 깊게 새겨져 있었다.

스리랑카의 역사는 곧 식민의 역사다.

1505년, 포르투갈이 처음 콜롬보를 점령하면서 이 땅의 이야기는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그들은 계피무역을 독점하고, 로마 가톨릭을 전파하며, 불교 사원을 교회로 바꿔버렸다.


그들의 지배는 153년간 이어졌다.

뒤이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138년간 이 땅을 지배했다.


계피와 커피, 설탕을 재배하며 무역을 확장했지만, 그 또한 착취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국이 들어왔다.


영국은 스리랑카 전체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영국령 실론이 되었으며 152년간 지배하였다.


영국은 홍차 재배, 커피 플랜테이션, 철도 등 인프라 건설을 위해 인도에서 타밀인을 데려와 노동자로 고용하였는데 이는 훗날 영국이 유입한 타밀계와 싱할라인 간의 갈등으로 이어져 26년간 내전으로 이어지는 원인이 되었다.

영국은 중동지역,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등 세계 곳곳에서 현재 분쟁이 되고 있는 원인 제공국가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영국은 신사의 나라가 아니라 민폐의 나라이자 약탈의 나라라 생각한다.


그들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분열이라는 유산을 남겼다.


스리랑카는 이렇게 유럽 열강들에 의해 443년간 갖은 수탈과 온갖 억압을 받으며 식민지배를 당했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스리랑카는 유럽열강들에 의해 식민지배를 당한 아픈 역사도 함께 공존하고 있었다.

긴 세월 동안 빼앗기고 억눌렸지만, 그 속에서도 이 나라는 여전히 자신들의 문화와 신앙, 그리고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지금 콜롬보 거리를 걷는 수많은 서양인들 중에는, 어쩌면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온 이들도 있을 것이다.


거리에는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들도 눈에 띄었다.

이 나라의 인구 중 약 10%가 이슬람교도라 한다.

문화와 종교가 섞인 이 복잡한 도시 위로 해 질 녘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으며, 콜롬보의 상징인 “로터스 타워(Lotus Tower)”가 도시 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저녁은 숙소 근처의 Sea Fish 식당에서 먹었다.

추천받은 Seer Fish(고등어과 생선) 요리를 시켰는데,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러웠다.

기름기도 없고, 냉동 생선을 삶아 표면만 그을린 듯한 맛이었다.

아침에 먹은 단순한 볶음밥이 훨씬 맛있었다.


콜롬보의 첫날밤은 무더웠고, 매캐하게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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