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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슴농부 Sep 03. 2024

스물두 번 방문했던 베트남 사파(Sapa)

사파는 나에게는 연민의 여행지이자 퀘렌시아다


베트남 수도인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자동차로 약 6시간을 달려가면 라오까이성(Lao Cai Province)의 해발 약 1,500m 고산지역에 소수민족들의 삶의 터전인 사파(Sapa)가 있다.

사파(Sapa)는 몽족 언어로 지명을 말한다.

사파는 몽족이 살고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는 불어의 “S" 발음이 "Ch"와 거의 유사해서 차파(Chapa)로 불렸다.

지금도 하노이에서 라오까이를 운행하는 기차 중에는 “Chapa Express Train”이 있다.

참고로 라오까이(Lao Cai)는 몽족 언어로 올드 마켓(Old Market)이다.

사파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은 몽족(Hmong), 자오족(Dzao), 타이족(Tay), 사포족(Xa Pho)이며, 몽족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다.​

사파의 방문 횟수를 세어보니 스물두 번이다.

첫 방문은 베트남 현지인 추천으로 단순한 호기심에 끌러서 갔다.

호기심에 찾았던 사파는 그 이후로 트레킹을 하기 위해 갔었고,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도 갔었고 봉사활동을 위해서도 갔었다.

대부분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가고 싶어서 갔다.​

사파 방문이 잦아지자 조금씩 지리와 마을을 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알아보는 마을사람들도 생겼다.


사파는 나름 구석구석 다녔기에 지금은 사파를 방문하여도 특별히 하는 일없이 라오짜이(Lao Chai) 마을 단골 몽족 민박집에서 빈둥거리며 지내다 돌아온다.

몽족 단골 민박집 입구 담벼락 앞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우뚝하니 서있어 큰 나무 민박집(Big Tree H’mong Homestay)이라 부른다.​

언젠가 책에서 읽었던 퀘렌시아(케렌시아, Querencia)라는 스페인어가 생각났다.


퀘렌시아는 투우장 안에서 투우가 투우사와 싸움 중에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영역으로 투우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 곳이다.

투우가 퀘렌시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것처럼, 나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었을까?​

스물두 번의 사파 방문은 나도 모르는 무의식적인 퀘렌시아로 느껴졌기에 발길이 잦아진 것은 아닐까? 아니면 여행 관성의 법칙이 작용한 것일까?

분명한 것은 사파에 오면 마음이 편안했기에 방문 횟수에 특별한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사파의 한적한 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한번 걸어본 길은 해외여도 낯설지 않아서 좋다.


사파에서는 조금이라도 걸어야 한다.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원초적인 이동방법은 걷기다.


걷기는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는 유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흘러가는 구름, 뺨을 스치는 간지러운 바람, 가볍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풀 향기, 닭 훼치는 소리, 논물 흐르는 소리 등에 끝없이 자극을 받으며 마음을 뺏기기도 하는 것이 사파의 걷기다.


사파를 천천히 걷다 보면 도시화된 문명과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알 수 없는 도시의 문화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좋다.


걸었던 기억 속에는 사진보다 더 강렬한 이미지가 저장되기도 한다.

사파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노라면 때론 먼 과거의 정지된 세계 속으로 나를 빠져들게 만들곤 한다.

사파를 스물두 번 방문토록 만든 여러 이유 중 하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사파여행의 백미는 트레킹과 소수민족 집에서 숙박하는 홈스테이이다.


사파를 여행하고픈 분들에게는 2박 3일 혹은 3박 4일 트레킹으로 사파 깊숙이 들어가 소수민족들의 삶을 경험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잠자고 먹으면서 사파를 느껴보길 권하고 싶다.


트레킹을 하면서 바라보는 사파의 자연은 아름다우며, 가끔씩 만나는 소수민족 마을 사람들은 참 따뜻하였다.

베트남의 중부와 남부 지역은 일 년에 2 기작 또는 3 기작 농사를 짓지만 사파는 산악 고산지대로 평지가 부족해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층층이 좁고 작은 다랑논을 만들었고 물이 부족해 빗물에 의지해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하늘바라기 다랑논으로 일기작 농사를 짓는다.


참고로 모작은 같은 경작지에서 다른  작물을 짓는 것이며, 같은 경작지에서 같은  작물을 짓는 것은 기작이라고 한다.

2 모작은 벼+보리 등으로 짓는 것이고, 2 기작은 벼+벼로 짓는 것이다.

사파의 농작물은 하늘이 심고 하늘이 거둔다.

다랑논(Rice Terraces)은 수백 년을 거쳐 만들어진 식량을 생산하는 유일한 농토이며 열악한 농기구와 맨손으로 산을 깎고 돌을 치워가며 수많은 땀과 눈물이 땅속에 스며든 처절한 삶의 역사가 녹아있는 생존의 현장이자 삶의 터전이다.

다랑논은 형태와 위치 때문에 트랙터나 농기계를 사용할 수 없기에 지금도 물소를 동원하여 쟁기질을 하고 수백 년 동안 사용해 온 곡괭이와 괭이, 손 도구를 사용하여 손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대규모 다랑논을 보면서 규모와 장관에 탄성을 자아내며 많은 사진을 담곤 했지만 다랑논에 대해 내용을 알고부터는 사파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도 생겼다.

다랑논은 그들의 삶의 흔적을 지구 표면에 새겨 놓은 생존의 기록이자 살아있는 조각이다.

사파는 수년 전부터 사파 타운과 호수 주변, 사파의 깊숙한 곳까지 여러 신축 호텔이 새롭게 들어서고 지속발전 가능한 개발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난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사파의 여러 소수민족들은 외부에서 투입된 자본의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개발로 발생되는 경제적 혜택에서는 소외되고 수백 년에 걸쳐 생존을 위해 맨손으로 만든 다랑논과 꿋꿋이 살아온 삶의 터전들은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외지 자본가들에 의해 상품화되고 더 많은 부를 축척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파 여행은 시설 좋고 전망 좋은 곳 또는 수영장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고서 SNS에 올리며 하룻밤을 지내고 바쁘게 떠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스물두 번을 다녀 보니 이제야 조금씩 사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스물두 번 사파를 방문하면서 느끼고 알게 된 사파는


사파는 눈물과 땀이 있는 곳이었다.

사파는 아픔이 있는 곳이었다.

사파는 어둠이 있는 곳이었다.

사파는 가난이 있는 곳이었다.

사파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사파는 빛이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곳이었다.

사파는 그런 곳이었다.

이런 사파를 생각하면 때론 먹지도 않은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 있는 기분이 느껴진다.​


나는 기회가 되면 또다시 사파를 갈 것이다.​


​사파는 방문 횟수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기에 나에게는 연민의 여행지이자 베트남의 퀘렌시아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스물세 번째 방문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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