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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슴농부 Sep 05. 2024

세계 최초의 진보 좌파 지도자 “칭기스칸”

칭기스칸은 초원의 혁명가이자 세계 최초의 진보 지도자였다


칭기스칸(1162 ~ 1227)은 <뉴욕 타임스>에서 선정한 “지난 천년 간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로 뽑혔으며, <포춘>에서 발표한 “세계 500대 기업 CEO들이 뽑은 밀레니엄 최고의 리더”로 뽑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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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스칸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다.

알렉산더 대왕과 나폴레옹 그리고 히틀러가 정복했던 영토를 모두 합한 영토보다 큰 영토를 정복한 정복자이나 칭기즈칸의 개인 인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칭기스칸은 우리가 어렴풋이 알거나 상상하는 인물과는 많이 다르다.

칭기스칸(테무진)은 타고난 두뇌는 그저 평균 치거나 그 이하이며, 신체적 능력이 뛰어나지도 못했고 좌중을 사로잡는 감각도 없었다.

테무진은 투르크족, 위구르족 등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평생 부대끼며 살았지만 외국어는 단 한마디도 구사하지 못했다.

그의 가족은 모두 문맹에서 벗어났지만, 그는 최고 수준의 학자에게 수년간 집중 과외를 받았어도 글자 하나 쓰지 못한 문맹이었다.

무쇠처럼 단단한 성품의 남자도 아니었으며, 판단력도 뛰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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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테무진은 개를 무서워했다.

테무진이 얼마나 개를 무서워했는지는 아버지 예수게이가 테무진을 결혼시키기 위해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사돈에게 테무진은 개를 무서워하니 개를 멀리 떨어뜨려달라고 특별히 부탁했을 정도였다.


테무진의 어머니인 헐 룬은 이런 나약한 아들 테무진의 장점을 찾지 못해 애를 먹었는데, 그래도 헐 룬은 테무진의 장점을 찾아서 칭찬하였는데 그 칭찬은 “테무진은 가슴에 재능이 있다”이다.

테무진의 어머니는 자식의 장점을 정확히 찾아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테무진이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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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몽골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었다.

초원은 워낙 척박하였기에 약탈과 습격은 일상이었다.

약탈은 사냥처럼 생계의 일부였고, 약탈을 통해 삶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약탈한 물품에 대한 분배는 달랐다.

귀족이라는 기득권 층, 왕족, 힘센 사람들은 더 많은 분배를 가져갔다.

하지만 테무진은 공정하고 평등한 분배를 지향했다.

기존의 기득권 귀족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의 초원에서는 그야말로 대혁신이었다.

원래는 계급이 높을수록 먼저 약탈품을 차지할 권리를 누렸다.

하지만 테무진은 위험을 무릅쓰고 희생을 각오하는 피의 대가를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보상했다.

사람의 가치는 누구나 다 똑같다는 신념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평등한 분배를 위해서는 먼저 약탈의 룰이 달라야 했다.

본래 약탈의 원칙은 단순 명료했다.

속된 말로 힘세고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다.


그런데 테무진은 그 방식을 완전히 바꿨다.

약탈품은 먼저 집어든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집단의 것, 즉 공공의 재산이다.

지위나 능력제가 전부는 아니었다.

물자가 골고루 모두에게 돌아가는 게 기본 원칙이다.

심지어 몸이 아파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전사나 성인 남성이 없는 가정에도 일정한 몫이 지급되었다.

테무진은 특유의 공정하고 평등 분배 정책으로 부하와 백성을 감동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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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회든 기득권은 소수다.

테무진의 정책은 소수의 기득권이 아닌 다수의 일반 초원의 대중을 자극했다.

그는 점점 기득권층을 거치지 않고 대중과 직접 관계를 맺어 나갔다.

테무진은 자기를 따르는 백성들을 귀하게 여겼다.

테무진이 자무카와 옹칸의 연합전선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퇴각을 할 때도 테무진은 부하 전사와 백성 그리고 지지세력에게 자신을 위해 죽지 말고 도망가라는 위대한 명령을 내린다.

테무진은 패배의 결과를 혼자 뒤집어씀으로써 백성과 지지자들에게 마지막 책임을 지려고 했다.

군주가 백성과 지지자들의 삶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포기한 일은 역사적으로도 드물다.

또한 테무진은 오직 능력만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대우했다.

신분과 혈통을 따지지 않는 자유로운 회의를 중시했으며 말단 병사의 의견까지도 전투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테무진은 지배자 몇 사람의 결정만으로 다수의 구성원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을 싫어했다.

노예와 포로 생활을 모두 경험한 테무진에게 신분과 계급은 무의미했다.

테무진은 재능의 천재가 아니라 “태도의 천재”였다.


그는 어머니, 아내, 노예, 동생들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테무진은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다른 이들의 의견을 물었다.

그는 “경청의 천재”였다.


테무진은 몇 명의 위대한 장수를 부하로 두었다.

그중에 수부타이와 제베가 있다.

수부타이와 제베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장수 명단에 올라있다.


수부타이와 제베가 함락시키거나 멸망시킨 국가가 32개국이나 된다.

몽골제국을 건설한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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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타이는 대장장이 출신이고, 제베는 테무진에게 활을 쏘아 맞힘으로써 죽음까지 갈 수 있는 부상을 입혔지만 그의 능력을 알아본 테무진이 부하로 삼았다.

그리고 몽골제국의 제2인자였던 젤메는 노예 출신이다.

참고로 CNN이 선정한 위대한 명장 순위에 수부타이는 6위, 제베는 37위, 이순신 장군은 54위다.

1위는 칭기즈칸, 2위는 알렉산더 대왕, 5위는 나폴레옹이다.

BBC 방송이 선정한 역사상 위대한 명장 순위 1위는 수부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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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기보다 뛰어난 인간을 동경한다.

우월한 타인의 카리스마에 의지하려는 것은 기본 심리다.

그러나 그를 사랑까지는 하지 않는다.

재능에 대한 사랑과 사람 자체에 대한 사랑은 다르다.

실력 위주의 인물은 실패를 용서받지 못한다.

반면 후천적 노력으로 품성과 세계관이 완성된 사람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

사람은 노력하는 인물에게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충성한다.


초원의 일반 대중에게 테무진은 따르고 싶은 사람을 넘어 지켜줘야 할 사람이 되어 버렸다.


테무진이 일시적으로 초원에서 사라지자 평등 정책과 복지가 사라졌다.

평민 이하 계급의 사람들은 다시 기득권 귀족에게 착취당하는 이전의 처지로 돌아갔다.

이것은 중대한 사건이다.

공정한 사회를 한번 경험하거나 적어도 구경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로 살면 세상은 원래 그러려니 생각한다.


하지만 다른 가치를 한 번 알고 나면 싸워서 얻어내야 할 무언가가 된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다.

테무진이 초원의 대중들에게 이를 깨우쳐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테무진은 여러 번의 전투에서 크게 패했지만 초원의 절대다수 대중들의 지지를 얻어 테무진은 결국 재기를 하였으며, 마침내 초원을 통일했다.


몽골 초원을 통일한 후에 법령을 만들어 테무진의 대법령을 발표한다.


테무진이 발표한 대법령의 일부 항목이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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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몽골인도 다른 몽골인을 노예로 삼을 수 없고, 어떤 몽골인도 다른 몽골인의 노예가 될 수 없다.

테무진은 노예제를 폐지했다.

2. 누구나 자신의 종교를 선택할 수 있으며 누구도 남의 종교를 간섭할 수 없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했다.

3. 여성을 빼앗거나 재물을 주고 사 와서 결혼할 수 없다.

약탈혼, 매매혼을 금지했다.

4. 가축을 훔치는 것은 불법이다.

남이 잃어버린 가축을 발견하면 반드시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 한다.

개인의 재산은 철저하게 안전이 보장되었다.

5. 초원의 모든 야생 동물은 백성의 공동 소유다.

누구도 함부로 사냥할 수 없다.

정해진 사냥철을 엄격히 했다.

6. 이제부터 몽골에 서자, 사생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테무진은 어떤 아이든 현재 속한 가정의 적자라고 못 박았다.

평등한 아이여야 평등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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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복지 정책을 실시했다.

굶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백성의 생존은 국가가 책임진다.

그 당시 몽골은 전쟁 등으로 과부, 고아, 노인들이 많았다.

테무진은 이들의 생활을 책임졌다.


테무진이 칭기즈칸으로 추대되고 수십 년 후 유럽 교황의 특사로 초원에 온 한 선교사는 몽골 조정에서 매일 아침 3만 명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장면을 기록했다.

고아들은 식사뿐만 아니라 가축이나 옷 등의 현물로 연금을 지급받았다.


800여 년 전 몽골초원에는 고아 수당이 있었다.

테무진은 초원에서 만난 여러 명의 고아를 데려다 어머니에게 양자로 삼게 하고서 보살폈고 의형제로 삼았다.

테무진은 9살에 아버지 예수게이가 죽자 예수게이를 따르던 사람들은 테무진 가족만을 남겨두고서 한밤중에 테무진의 가축까지 싹 훔쳐서 도망을 가버린다.

버림받은 테무진의 가족은 거칠고 척박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초원 북방에서 굶어서 죽은 일만 남았다.

테무진 가족은 들쥐와 들풀, 야생 열매를 먹으면서 견디었다.


역사상 최고의 정복자는 성장기에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한 결식아동이었다.

어릴 때 겪었던 자신의 고통을 알고 있기에 테무진은 초원의 고아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척박한 초원에서 나이 어린 고아는 곧바로 죽음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테무진은 군용마 퇴역 제도도 실시했다.

일정 기간 이상 전쟁을 겪거나 한 번 이상 장거리 원정에 참여한 말은 초원에 돌아와 말 그대로 “전역”했다.

거세마는 생식력이 없고 젖도 생산할 수 없기에 군용으로 쓸모가 없어지면 고기와 가죽이 재료가 되는 편이 합리적이다.

하지만 테무진은 초원에서 태어난 죄로 갖은 고생을 겪은 말을 예우했다.

전역한 군용마는 훈련과 전쟁에서 해방돼 한가로이 풀을 뜯으며 여생을 살도록 했다.

더불어 테무진은 새로운 문자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려 위구르 문자를 초원 사람들의 음운 습관에 맞게 개량한 몽골 문자도 만들었다.


13세기 몽골 초원에 복지 국가가 출현했다.

복지를 하려면 재정이 있어야 한다.

테무진의 개인의 지갑일 수밖에 없다.

몽골의 대중들은 국가라는 추상적 대상인 아닌 자신의 칸인 테무진에게 세금을 냈다.

세금은 유목민의 전통인 전 재산의 1/10이다.

테무진은 자신에게 바친 전 백성의 재산 1/10을 다시 국가 경영과 복지를 위해 사용했다.

테무진의 부가 재분배되었다.

테무진은 국가는 모두의 것이라 생각했다.


테무진은 자신이 법을 만들어 놓고, 법의 권위가 자신보다 우위에 있다고 선언했으며, 테무진은 단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었다.

테무진은 자발적으로 역사상 최초로 법의 제약을 받는 군주가 되었다.


스스로를 법 아래로 내린 테무진의 결정은 충격적일 정도로 진보적이다.

그가 평생을 추구해 온 혁명의 마침표였다.


테무진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문맹이며 갖은 고생을 겪은 그에게는 “세상은 원래 그렇고 그런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없었다.

테무진은 관습이란 별다른 실체도 없는 뜬구름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귀족은 태어날 때부터 귀족이라는 것도, 노예로 태어났으면 비천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순 허구라는 사실도 알았다.

“원래 그런” 세상은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테무진이 지도자 노릇을 하면서 깨달은 “제대로 된 세상”은 소박하고 단순하다.

테무진이 꿈꾸었던 좋은 사회란 그저 되도록 많은 사람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다.


테무진은 좋은 사회를 만들기로 했다.

초원 사람들이 보기에 테무진의 생각에 공감했다.

그리하여 그는 좋은 사회를 만들었다.

이것이 진보이자 테무진의 리더쉽이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지금의 이데올로기로 판단한다면 “칭기스칸을 세계 최초의 진보 좌파 지도자이자 사회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


칭기스칸의 삶이 그랬고, 신조가 그랬고, 이데올로기가 그랬고, 대법령이 그랬고, 복지 정책이 그랬고, 그의 정치가 그랬다.

테무진의 평생의 신조는 “공정함”과 “약속”이며, 테무진이 대변하는 가치는 “평등” “통합” “초원의 평화”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가 반드시 추구해야 할 가치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과연 지금의 우리는 테무진의 신조와 가치처럼 우리 사회에도 필요한 가치인 “공정” “약속” “평등” “통합” “평화”를 향해 올바르게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테무진은 죽기 얼마 전 유언 비슷하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다시 태어나면 평범한 집안에서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

평범한 게르에서 평범한 재산을 갖고 평범하게 살다가 죽고 싶다”

테무진은 일생을 평범한 행복에 목말라했다.

실제로 그는 사치를 하지 않았다.

일반 병사와 똑같은 음식을 먹었으며, 특별한 때가 아니면 누더기 가죽옷을 입고 생활했다.

훗날 대성공을 하고 나서 밀려들어온 막대한 재산은 국가 운영이나 복지 정책에 썼다.

서양의 역사가들은 그런 칭기스칸을 “세련된 야만인”이라 부른다.


칭기스칸의 리더십이 간절히 요구되는 위기의 대한민국이다.


“칭기스칸의 결의”

1.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아홉 살때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쫒겨났다.

2. 가난하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내 직업이고 내 일이었다.

3. 작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말라.

그림자 말고는 친구도 없고 병사로만 10만, 백성은 어린애, 노인까지 합쳐서 200만도 되지 않았다.

4. 배운게 없다고, 힘이 없다고 탓하지 말라.

나는 내 이름도 쓸 줄 몰랐으나 남의 말에 귀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5. 너무 막막하다고 그래서 포기해야겠다 말하지 말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도 탈출했고 빰에 화살을 맞고 죽었다 살아나기도 했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을 깡그리 쓸어 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참고 도서 및 발췌]

테무진 to the 칸(홍대선 지음)

몽골비사(유원수 역주)

징기스칸과 몽골제국(장폴 루 지음)

징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 (잭 워더포드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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