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키 크룸로프의 크리스마스이브 풍경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체스키 크룸로프를 둘러보기 위해 밖을 나섰다.
하늘은 잔뜩 흐렸지만, 우뚝 솟아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 성탑은 여전히 위풍당당했다.
겨울의 동유럽은 해가 짧다.
일출은 오전 8시경, 일몰은 오후 4시 무렵으로 하루가 금세 저물기 때문에 겨울철 여행을 계획한다면 이 점을 고려해야 한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을 오르기 위해 골목길 계단을 따라 걸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성탑의 뒷모습이 고풍스럽다.
성안으로 들어서자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전혀 짐작이 되지 않는 건물 정문 앞에는 근위병이 서 있었고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손짓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 물었지만, 고개를 저었다.
호기심을 뒤로 한채 성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체스키 크룸로프의 멋진 빨간 지붕 모습들이 천천히 시야에 들어왔다.
한동안 풍경을 바라보고선 성 뒤편으로 걸음을 옮겨서 “망토다리(Cloak Bridge)”로 가보았다.
다리는 마치 어깨에 망토를 두른 듯한 형상에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그 높이가 만만치 않았다.
망토다리를 건너 블타바 강변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강 위에는 뗏목을 타고 투어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였다.
체코의 도로는 대부분 돌로 포장되어 있어 여행 가방을 끌기에는 불편했지만, 체스키의 골목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운치가 있었다.
체스키의 거리는 고즈넉한 매력을 품고 있었다.
곳곳에서 단체 여행객들이 보였고, 대부분은 주변 국가에서 온 듯했다.
지역 역사박물관 마당에 이르자, 흐렸던 하늘 사이로 해가 나오면서 체스키 크룸로프의 아름다운 전망이 펼쳐졌다.
한동안 마을을 둘러본 후, ‘에곤 실레 미술관’을 찾았다.
에곤 실레는 구스타프 클림트와 함께 20세기 오스트리아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다.
그의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중 하나로 꼽힌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그의 외할머니의 고향이기도 하다.
미술관에는 에곤 실레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고, 기념품도 판매하고 있었다.
동유럽 여행을 시작했을 때쯤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클림트와 에곤 실레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이 있다.
미술관을 나와 다시 거리를 거닐었다.
체스키의 골목은 같은 길을 두 번, 세 번 걸어도 색다른 느낌을 주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쌀쌀한 날씨였지만, 발걸음을 옮길수록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의 체스키 크룸로프는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그럼에도 차분하고 조용했다.
고요한 거리 속에서, 겨울 유럽의 낭만이 온전히 스며드는 순간이었다.